동화가 현실과 다른 것은 이야기의 절정이 곧 종결이라는 점이다. 못된 왕비에게 쫓겨나 난쟁이들 틈에 살던 백설공주도, 계모의 구박 속에 하녀처럼 살던 신데렐라도 왕자를 만나는 클라이맥스의 순간, 한 문장으로 그들의 여생은 정리된다 - “그리고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
인생이 절정과 함께 끝이 난다면 삶은 얼마나 단순할까. 그러나 현실은 클라이맥스 이후로도 수십년의 여생이 주절주절 계속되고, 우리는 절정 지난 후의 지루한 세월을 충실하게 다 살아내야 한다.
왕자의 눈에 들어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맞았던 신데렐라가 왕궁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되돌아 나온 사건이 며칠 전에 있었다. 인기 탤런트였던 고현정씨의 이혼 소식은 한국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큰 화제이다. ‘모래시계’의 여주인공 역으로 인기 절정일 때 그 여세를 몰아 재벌가문에 입성, 미스 코리아에서 인기 탤런트, 거기서 재벌 3세의 아내로 이어진 그의 신분상승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전형이다.
그런 그가 “왜 이혼을 하게 되었을까”“그 부부를 둘러싼 소문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요즘 한인들이 둘러앉은 자리에서는 화제가 궁하지 않다.
고씨의 이혼은 60년대 인기가수 배인숙씨의 자전적 소설이 출간된 지 불과 며칠 후의 일이기도 해서 유사 성격의 두 케이스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호 상승작용 까지 하고 있다. 펄 시스터즈로 명성을 날렸던 배씨도 인기 절정일 때 재벌기업 회장과 결혼해 20여년을 살다가 지난 97년 이혼했다. 그의 소설은 전 남편이 여성 연예인들과 벌인 애정 행각을 폭로해 좋은 가십거리가 되고 있다.
현대판 신데렐라와 왕자인 연예인과 재벌의 결혼이 십중팔구 파경을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기 보다 서로의 ‘상품 가치’에 끌린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주위 동료들의 생각이다.
“여자는 인기를 이용해 부를 사들인 행위이고 남자는 소장품 고르듯 여자를 고른 게 아닐까”“사랑의 결합이라고 보기 어렵다. 재벌이라 해도 인기 없는 2류 탤런트와 결혼한다면 순수한 만남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한창 뜨는 여성을 찍어서 결혼한다면 그건 소유욕 혹은 과시욕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
아울러 결혼은 결혼식과 동시에 끝나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되는 과정이라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 결혼생활은 복합적 관계의 구조물이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의 사이, 그리고 남편의 가족, 아내의 가족 등 여러 가족들과의 관계가 편안하고 긴밀해야 결혼이라는 구조물은 탄탄해진다.
연예인과 재벌의 결혼은 그런 면에서 구조적 불안정을 갖고 시작한다. 아는 분 중에 한국의 재벌집안 출신이 있는데 그의 가족 중에도 여자 연예인과 결혼해 이혼한 케이스가 있었다.
“가족들 사이에 항상 팽팽한 역학관계가 있습니다. 새 사람이 가족 구성원으로 들어오면 기존의 역학구도에 변화가 오면서 재편이 불가피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 출신이면 가족들이 드러내놓고 배타적이 되지요”
그래서 남편 혼자 연예인출신 아내를 보호하려 애쓰는데, 그것이 오히려 다른 가족들의 시기심을 유발해서 결과적으로 관계의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그는 말했다.
아울러 스포트라이트 받는데 익숙하던 연예인이 재벌집안의 구중궁궐에 갇혀 자기를 완전히 죽이고 사는 것도 어려운 일로 꼽힌다. 개인보다는 집안, 개성보다는 품위를 우선으로 하는 분위기에서 “재벌가 사모님이란 이런 건가 보다 ”하고 얼마간은 견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과 분노가 쌓이게 마련이다. 최근 배인순씨도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연예인들은 자아가 강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인데 재벌 집안에 들어가면 그런 끼와 개성을 다 감춘 채 살아야 하지요”
결혼은 장기전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왕자도 신데렐라도 아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다행인가. ‘상품’ 가치가 별로 없어서 ‘내 모습’ 그대로 만나고 ‘내 모습’ 그대로 살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