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엄마도 우리 아가 속마음을 금새 알아요. … ”
아기의 울음소리를 분석해 아기가 왜 우는지를 알려준다는 ‘아기 울음 번역기’선전 문구이다.
첫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들에게 가장 답답한 경험은 아기가 정신없이 울어대는 데 왜 우는 지를 모르는 것이다. 아기가 배고픔도, 아픔도, 졸림도 모두 울음 한가지로 표현을 하니 경험 없는 초보엄마들은 그 울음의 암호를 풀 길이 없다.
아기와 의사소통 하고 싶은 엄마들의 심정을 스페인의 한 전자공학자가 간파하고는 4년여 연구를 해서 지난해 울음 번역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울음의 강도, 패턴, 간격 등을 분석하면 아기가 우는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한 장난감업체는 지난해 ‘애견 소리 번역기’를 개발했다. 개 짓는 소리가 들리면 ‘배고프다’‘기분 좋다’‘안녕하세요’‘외로워 울고 싶어’‘싫어. 옆에 오지마’등 사람의 말로 표현을 해주는 기계라고 한다.
안아줘도 흔들어줘도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 절절 매는 초보 엄마들, 애완견이 가족처럼 사랑스러워서 아까운 게 없는 사람들은 구매 충동이 일 만도 하다. 소통되지 않던 소리들의 암호를 풀어서 나와 너 사이에 이해의 다리를 놓아주는 기계 - 번역기들은 말하자면 코드를 맞춰주는 도구이다.
한국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코드’라는 단어처럼 유행을 타는 말도 없다. 한국어 대사전에도 안나오던 ‘코드’라는 말이 ‘코드론’ ‘코드 인사’식의 표현으로 등장하더니 이제는 ‘코드 독재’로까지 발전하면서 ‘코드’ 전성시대를 맞았다.
코드란 간단히 말하면 ‘열려라, 참깨’같은 것. 육중한 바위 문 앞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문은 열리지 않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문은 기적처럼 열린다. 닫혔던 문이 열리는 신비로운 소통의 기쁨이 바로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누리는 짜릿한 친밀감, 동아리 의식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많은 부분이 ‘열려라, 참깨’같은 기호로 움직인다. 예를 들어 한 남성이 어느 여성에게 장미꽃을 보냈을 때 그 여성이 받는 것은 단순히 꽃이 아니다. 장미꽃을 매개로 사랑의 마음이 전달된다는 것을 보내는 남성도, 받는 여성도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사회의 문화 코드이다.
열 마디 말이 필요 없이 한마디면 척척 통하는 경제적이고도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기본이 코드인데, 요즘 내 주위에는 “코드가 안 맞아서 속이 탄다”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대학 입시생 부모들이다.
‘입시’하면 당장 ‘스트레스’가 떠오르는 것이 우리 이민 1세들의 코드. 한국의 고3 엄마들은 이때쯤이면 수험생인 자녀의 스트레스, 그런 자녀를 걱정하는 자신의 스트레스로 “차라니 내가 대신 시험 보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입시란 ‘체력 싸움’이자 ‘엉덩이 싸움’이어서 아이가 책상 앞에 앉고 서는 것까지 일일이 감시 아닌 감시를 하게 되는 것이 고3엄마들이다.
스트레스를 못 이겨 자녀들이 때로 반발도 하고, 탈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입시’에 관한 한 부모와 자녀의 코드는 딱 맞아 있는 것이 한국 이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 돼도 ‘입시’ 하면 일단 긴장하게 되는 것이 1세 부모들. 반면 입시지옥이란 것을 모르는 이곳의 많은 아이들은 너무 태평해서 부모를 초조하게 만든다. 12학년생 엄마들이 모이면 하는 푸념들.
“아이가 도무지 스트레스라도 걸 안 받아요. 아무 데나 합격되는 대학에 들어가면 될 것을 왜 걱정하느냐는 거예요”“SAT학원에 보내려고 했더니 아이가 그건 ‘속임수’라는 거예요. SAT는 평소 실력으로 보는 시험이라는 것이지요”“시험이 코앞인데 (아이는) 매일 저녁 TV 보랴 컴퓨터 게임 하랴, 눈이 모자랄 지경이에요”- 한마디로 코드가 안 맞는다.
길 없는 황무지처럼 막막한 저 존재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어야 오고가듯 존재와 존재 사이에도 의미 전달의 길이 필요하다. 어떤 길이든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덤불을 헤치고 자꾸 다니다 보면 길이 생겨난다. 대화로 길 뚫는 노력을 계속 하다보면 ‘열려라 참깨’ 같이 문이 활짝 열리는 계기가 오지 않을까.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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