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진 찍기는 정말 쉽다. 디지털 카메라가 엄청난 속도로 보급되면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사진작가’로 변신하곤 한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찰칵찰칵’ 셔터만 누르면 카메라가 알아서 순간을 포착해주니 사진 찍기 자체가 훨씬 쉬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최첨단 기술로 누리는 가벼운 행위, 디지털 사진 찍기에 만족하지 않고 인생의 무게를 싣고 직관과 생각을 담아 뷰파인더로 보이는 나만의 세상에 심취하는 중년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수동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나만의 세상은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좋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는 것. 사진 찍기로 내 안에 있는 예술가 기질을 들춰내고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렌즈 속에 담는 여성들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사진 찍기에 몰두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생각과 주관을 주입시켜 변형하는 순간입니다. 뷰파인더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예요. 사진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세상을 보는 거죠. 포커스를 이리저리 돌려 맞추다가 제일로 선명해지는 순간 사물들이 또렷해지듯 사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더욱 명료해지고 근본적인 것에 관한 사색에 빠지게 됩니다. 사진을 통해 세상을 보면 자신이 변화되고, 변화된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아니겠어요
금요일 오전 사진작가 함철훈씨의 강의실에 모인 7명의 중년 여성. VW 인스티튜트 18기생들이다. 함씨가 나눠준 인쇄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노트에 열심히 필기를 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날카롭게 질문도 하면서 강의에 열중하는 이들의 눈빛은 뜨거운 열정으로 빛난다.
오랜 세월 여행을 다니며 스냅사진을 찍어오다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달리 배울만한 장소가 없어서 갈피를 못 잡고 카메라 셔터만 눌러 댔다는 손명진씨, 척추수술을 받고 암울하기만 했던 시절 친구들의 권유로 사진을 찍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이영옥씨, 자연이 좋아서 카메라를 들기 시작해 자연의 수많은 모습을 담았고 그러다 보니 카메라 렌즈로 보이는 세상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김승자씨 등… 미술 전공자도 있고 비디오 아트 전문가도 있으며 사진을 찍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은 경력자도 있다.
바람도 찍고 싶고 빛과 소리도 찍고 싶고 냄새도 찍고 싶어요. 창작이 욕구와 향기, 내 속에 있는 예술가를 발견한다는 확신을 갖고 카메라를 잡습니다
보고 느낀 대로 사진 찍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원하는 사진이 나오지 않으면 불만도 생기고 더 잘 찍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발명품 중 가장 예술적인 기계라는 카메라를 도구로 뒤늦게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싶어 사진작가의 길로 접어든 이들은 자신도 몰랐던 예술가적 기질에 불씨를 붙이며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인생의 희열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칼스테이트 롱비치 대학원에서 비디오 아트를 전공한 홍경자씨는 비디오 아트 작업을 해오면서 사진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수강했는데 사진에 대한 본질적 접근으로 상식의 폭을 벗어나게 되었다며 그 동안 인간의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표출하는 작업을 해오다가 인간이 아닌 다른 사물을 통해 감정을 더욱더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느껴져 비디오 아트의 범위도 더욱 확장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들이 만지작거리는 카메라는 최첨단의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라 찾아보기 힘든 구형 수동카메라다. 1년6개월 동안 수동카메라를 들고 포커스도 내 손으로 직접 맞추고 노출, 조리개, 셔터 스피드 모두 손수 작동시켜 원하는 이미지를 정확하게 재연하는 연습을 하고 나면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을 뷰파인더를 통해 발견하고 그 때 맛본 감동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든다.
단지 취미활동이 아닌 예술활동을 추구하는 중년 여성들이 많아진 것에 대해 함철훈씨는 젊은 층은 기술 습득이 빠르긴 해도 뛰어난 사진기술에 비해 ‘무엇을 이야기할까’라는 의식이 부족하지만, 인생의 지혜가 가득한 중년의 나이에 사진을 찍으면 표현하고 싶어하는 주제 자체가 다르다. 이들이 찍은 대상들은 그들이 늘 생활하던 공간과 시간 속의 자연스러움이 베어있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다가가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삶의 앙금을 표현해도 대상과 조화를 이루고 어울리도록 표현한다고 말한다.
함씨가 운영하는 VW 인스티튜트는 정식 학교허가를 받았지만 옛날 서당식으로 소수인원이 모여 이론과 실기를 공부한다. 사진이란 게 개인적인 터치가 필요한 전문교육이기 때문. 과정은 1년 6개월. 적게는 3명, 많게는 12명까지 전 과정을 수료하면 기수 별로 졸업작품 전시회를 하는데 수료자가 12기에 달하니 함씨의 제자만도 100명이 넘는 셈이다.
함씨가 강조하는 카메라를 배우는 순서는 쉬운 카메라부터다. 매뉴얼로 작동되는 수동카메라로 시작해 자동카메라, 디지털카메라로 작품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설명하는 함씨는 수동 카메라로 빛을 이해하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자동 카메라로 날개를 달고, 최첨단 기술인 디지털 카메라에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흔히 초보자가 그렇듯이 사진보다는 카메라에 관심을 갖는 시기를 겪는데, 비싸고 좋은 카메라가 전부가 아니라 ‘자신의 손에 들어온 카메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라’는 것. 작품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카메라’가 아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 사진 찍는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론으로 철저히 무장한 후 현장실습을 나가는 날이면 이들은 새벽부터 잠을 설친다. 트라이 포드, 카메라, 각종 렌즈를 넣어 큼지막해진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근교를 찾는다. 가장 자주 찾는 실습 장소는 데스칸소 가든, 헌팅턴 라이브러리, 마운틴 하이 등이지만 졸업작품을 위해서는 장거리 여행, 해외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깊은 숲과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 심연의 물살과 눈부신 햇살, 나뭇가지의 흔들림, 시냇물 소리 등 자연의 숨소리가 이들의 변하지 않는 주된 소재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나뭇잎을 찍기 위해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숲 속을 찾고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한참을 꽃잎만 응시해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무한한 자연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민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사진의 세상에 드러냈던 미국의 여류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을 꿈꾸고, 사람이 없는 뒷골목을 위주로 사라져 가는 파리와 사람들을 찍어 ‘카메라의 시인’으로 칭송 받는 프랑스 사진작가 앗제가 되는 이들이 바로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진작가들인 것이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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