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만큼 세대 차가 뚜렷한 것도 드물다. 보릿고개를 지나온 부모 세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삼촌이나 이모의 연애 얘길 들어보면 불과 10~20년전 단골 메뉴는 짜장면, 돈까스다.
500원짜리 짜장면 먹고 골목길 외등 밑에서 뽀뽀하는데 양파 냄새가 확 끼쳐오더라는 둥, 최고 예우가 돈까스 아니면 비후까스라 경양식 집에서 칼질은 해야 폼이 났다는 둥…
뿐이랴. 문병 갈 때나 사는 줄 알았던 바나나는 가장 값싼 과일로 전락(?)한 지 오래고, 배곯으면서 된장 넣어 지져먹었다던 장떡은 이제 귀해져 부러 찾는 음식이 됐다.
그럼, 불고기는? 한때 집들이 손님상에서 최고 메뉴로 각광받던 쇠고기 불고기는 흔해빠진 저녁 반찬이 됐다. 배즙을 고루 섞은 양념에 충분히 재웠다가 보들보들 볶아내도 손님 대접하는 식탁의 메인 디시로 내기에는 어딘가 성의 없어 보이고, 손이 무안해지는 것이다.
고기가 빠지기는 서운한데, 너무 손 타지 않으면서 특별한 요리 뭐 없을까? 때는 마침 가을, 제철인 밤과 대추와 잣을 웃기로 뿌려 분위기도 물씬 내면서 말이다.
요리전문가 이인애씨가 추천하는 ‘견과를 곁들인 꼬치 불고기’와 ‘오징어 명란젓 무침’, ‘라이스 페이퍼 쌈’ 등은 이런 ‘세대 차’를 업그레이드로 상쇄한 메뉴들.
조리법만 조금 바꿨을 뿐, 우리가 늘 먹는 재료들이라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맛과 멋은 한결 살아나 결과가 특별해진다.
’꼬치 불고기’는 평범한 불고기를 연기에 살짝 그을리고 꼬치에 끼우는 것만으로 보기에 정갈하고, 맛이 여문 효과를 낸다. 또 먹기 좋게 흐드러지는 고기 위로 견과나 채 썬 파, 통깨를 뿌리고 은행을 곁들여 시각적으로 풍성하다.
’오징어 명란젓 무침’은 단조롭기만 하던 명란젓의 알을 훑어내 데친 오징어와 버무린 뒤 무채와 무순, 레몬으로 색을 더해 퓨전 요리처럼 다채롭다.
갖은 야채와 고기를 넣고 돌돌 말아내는 ‘라이스 페이퍼 쌈’은 아이들 간식이나 별식으로도 안성맞춤.
주말에 연습삼아 해보고 손님상에 단박 생색내기 좋은 이들 요리법과, 스피드 쿠킹의 필수품인 ‘다마리 간장’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글·사진 김수현 기자>
■다마리 간장
뭘 만들든 양념이 필수인 한식에선 때마다 양념 만드는 것도 번거롭다. 다마리 간장은 이런 수고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전천후 양념. 고기 잴 때부터 생선이나 우엉·오뎅 조림, 멸치 볶음, 장조림 등 웬만한 조림과 볶음에 두루 쓰여 편할 뿐 아니라 요리할 때 한결 잔손을 덜어준다. 또 맛술과 사과, 레몬 등이 들어가 급한 대로 설탕과 간장만 넣은 것보다 맛이 깊다. 이인애씨는 한번 만들어 두면 김장 김치 담근 것처럼 든든하다고 강조했다.
▲재료: 물 1컵, 간장 5컵, 설탕 1.1파운드, 맛술 1/2컵, 정종 1/2컵, 사과 1/2개, 레몬 1/2개
▲만들기: 냄비에 간장, 설탕, 물을 넣어 끓이다가 설탕이 녹으면 맛술과 정종을 넣고 더 끓인다. 충분히 끓으면 불을 끄고 사과와 레몬을 얇게 썰어 넣는다. 뚜껑을 덮어 12시간쯤 두었다가 사과와 레몬은 건지고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다.
<견과를 곁들인 꼬치 불고기>
쇠고기 불고기의 업그레이드 버전. 맛과 모양이 살면서 평범치 않아 손님상에 내기 좋다. 풍요로운 가을 분위기를 내려면 대추와 밤 등 견과를 웃기로 얹고, 깔끔하게 가려면 통깨와 송송 채 썬 파를 뿌린 뒤 파채 무침을 곁들여 내도 어울린다. 고기는 프라이팬에서 다 익히지만 석쇠에 다시 구워주면 연기 맛이 배어 더 맛있다.
▲재료(4∼5인분): 쇠고기 불고기 1파운드, 밤, 대추, 잣, 은행 약간씩, 배 또는 배즙.
▲양념장: 간장 4큰술, 설탕 2큰술, 맛술 1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후추·깨소금 또는 통깨 약간(이 때 다마리 간장이 있다면 간장과 설탕을 빼고 대신 다마리 간장 4큰술을 넣는다)
▲만들기: 쇠고기는 양념장에 30분∼1시간 재워둔다. 밤과 대추는 채 썰어둔다. 바짝 달군 팬에 쇠고기를 굽는다. 이때 너무 바짝 굽지 말고 국물을 조금 남긴다. 다 구워지면 긴 꼬치에 먹기 좋게 꽂은 뒤, 망이 촘촘한 석쇠에 얹는다. 고기 국물을 끼얹고 다시 살짝 굽는다. 구운 꼬치를 그릇에 담고 채 썬 밤과 대추, 잣을 고명으로 뿌린다. 은행은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살짝 뿌려 볶아낸다. 뜨거운 채로 페이퍼 타월에 싸서 비비면서 껍질을 벗겨낸다. 은행을 이쑤시개 길이의 꼬치에 3개씩 꽂아 불고기 꼬치와 곁들여 낸다.
<오징어 명란젓 무침>
먹기 심심했던 명란젓이 특별해지는 방법. 기껏 명란젓 위에 참기름 쳐서 송송 썬 파를 얹어 먹는 게 보통이지만, 오징어와 무를 곁들여 버무리면 맛깔스런 별미가 된다. 평소 밥반찬으로 무난하고, 손님상에 내도 좋다. 명란의 붉은 색, 오징어의 흰 색, 레몬의 노랑색, 무순의 초록색이 어우러져 보기에도 즐겁다. 냉동 명란을 쓸 때는 충분히 녹여 물기를 없애야 흐물흐물하지 않다. 일반 오징어도 괜찮으나 맛내기에는 갑오징어나 한치회가 낫다.
▲재료(4인분): 명란젓 0.2파운드, 갑오징어 또는 한치회 2마리 분량, 무 5cm, 무순·파·참기름 약간, 레몬 1개
▲만들기: 명란젓은 껍질을 벗겨낸다. 얼지 않은 명란을 가운데 칼집을 내 칼로 쫙 밀면서 알을 건져낸다. 냉동 명란은 찬물에 살살 씻으면 껍질이 쉽게 벗겨진다. 갑오징어는 안쪽에 가로 세로 칼집을 넣고 1cm 폭으로 썬 뒤,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낸다. 무는 채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뒤 물기를 꼭 짠다. 파는 송송 썬다. 껍질 벗긴 명란젓에 데친 오징어와 무채의 2분의 1을 넣어 버무린다. 참기름과 레몬즙을 약간 넣고 무친다. 그릇에 나머지 무채를 편편히 깔고 명란젓 무침을 얹은 뒤 무순을 올려 장식한다. 이 때 무순을 바닥에 충분히 깔아도 좋다.
<라이스 페이퍼 쌈>
일명 ‘월남 떡 보쌈’이라고 하는, 종잇장처럼 얇게 민 쌀 떡을 이용해 만드는 건강식. 쌀 떡이 투명하고 하얀 데다 안에 넣은 재료의 색깔이 알록달록 비쳐 시각적으로도 맛있다.
특히 다음의 재료가 아니어도 잡채를 넣고 말거나 남은 불고기를 활용하는 등 응용이 쉬워 아이들 간식이나 주말 별식으로도 만점이다. 불고기를 쓸 때는 다시 바짝 볶은 뒤 스프링 믹스와 잘게 썬 양파를 넣고 함께 말면 영양과 맛 모두 조화롭다. 손님상엔 말아낸 롤 5-6개를 긴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파슬리나 민트 2-3개를 얹어 멋을 내면 좋다. 라이스 페이퍼는 한국마켓이나 중국마켓에서 살 수 있으며 밀가루로 만든 것도 괜찮지만 쌀로 만든 것이 더 투명하고 찰기가 있다.
▲재료: 라이스 페이퍼 10장, 오이 2∼3개, 당근 1/2개, 마른 표고버섯 10개, 쇠고기 0.4파운드, 달걀 3개, 샐러드용 스프링 믹스,
▲쇠고기 양념장: 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맛술 1/2큰술, 참기름·파·마늘·후추 약간씩(이때 다마리 간장이 있다면 간장과 설탕 대신 쓴다)
▲겨자장(튜브겨자·간장·식초·설탕) 또는 진저 소이(ginger soy) 샐러드 드레싱(트레이더 조)
▲만들기: 쇠고기는 채 썰어 갖은 양념을 해둔다. 오이는 돌려 깎은 뒤 곱게 채 썰어 소금에 절였다가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짠다. 당근을 채 썰고, 표고버섯은 물에 불렸다가 꼭 짜둔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센 불에서 오이, 당근, 쇠고기, 표고버섯 순으로 볶는다. 이 때 고기는 바짝 볶는다. 달걀을 지단 부쳐 채 썬다. 라이스 페이퍼를 따뜻한 물에 약 30초간 불린다. 이 때 한 장씩 떼어 넣어야 붙지 않는다. 라이스 페이퍼를 건져 페이퍼 타올 위에 깔아 물기를 뺀 뒤, 모든 재료를 넣고 돌돌 말아 싼다. 모양이 긴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겨자장이나 진저 소이 소스와 함께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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