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학생들은 감정조절과 감정표현에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사회 관습과 인식에서 오는 요인은 둘째 치고라도 학생들이 자라온 물리적 환경과 한국의 교육환경은 자신을 솔직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데 장애가 돼 온 것 같다.
낯선 미국에 와서 공부 따라가랴 친구 사귀랴 너무 힘들고 고달프고,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텅 빈 것 같고 쓸쓸하단다. 혹여 친구의 맘을 상하게 할까봐 노심초사하며 우울한 마음을 털어 보려고 명랑한 척하지만 그런 솔직하지 못한 자신이 싫단다. 타인종 학생들을 맘먹고 사귀려 노력도 해 보지만 언어장애로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는커녕 혹여 실수할까봐 영 자신도 없고 두렵단다. 타인종 학생들의 단순하고 솔직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으며 ‘그 놈의 영어’ 때문에 사는 게 정말 고역이란다.
얼마 전 사회과목 교사가 사무실로 찾아와 한인 학생이 가끔 수업시간에 운다며 한번 불러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기에 다음 수업에 가서 볼 기회를 가졌다.
가냘프고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앉아서 그룹토의를 하던 중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 너무나 착한 친구들인데 그동안 자신이 이 친구들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파서 운다며 자신의 이런 마음을 아무도 이해 못할 거라고, 너무 외롭다고 털어놓는 것이었다.
과연 무엇이 이 여학생을 그렇게 힘들고 외롭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이 어린 15세 소녀가 다른 문화에 섞이지 못하고 친구들에겐 죄책감을, 또 부모에겐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감정상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 불안해하는 그녀의 모습이 영 안쓰럽다. 그녀의 텅 빈 마음과 학교 또는 친구 관계에서 오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표현할 길 없는 그녀는 계속되는 긴장과 불안감으로 감정조절은 점점 힘들어진 것이다. 결국 우울증으로 그늘진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했다.
어른들도 누구나 크고 작은 어느 정도의 속앓이는 하면서 사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은 정 많은 민족’임을 자부하면서 타인종 주민들과 푸짐한 한국음식을 나누며 친해지려 애써 노력하면 상대방도 열심히 먹어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번씩 어쩌다 그들의 감정이 뒤틀리기라도 하면 바로 폭발하는 그들의 모습에 당황했던 경험, 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또 많은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던 경험들. ‘도대체 저들의 내심은 뭔가’하며 수없이 의문했던 적 또한 없지 않다.
한번 좋으면 웬만한 섭섭함은 참고 지내고, 여간해선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는 정 많은 우리는 반대로 자신의 감정에 너무 충실해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 타인종과의 인간 관계가 자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학생들에게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행여 몰라서 실수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을, 그들처럼 더 이상 맘에 두지 말고 어제 일은 묻어두고 오늘에 충실하며 살아갈 것을 말해주고 싶다. 너무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마음을 쓰다보면 자신이 위축되어 누가 내 마음의 주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너무 상대방을 의식해서 자신에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매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해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또 미주알 고주알 속마음을 늘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이웃, 혹은 정신적 스승을 만들어 순간의 감정이 극에 치닫지 않도록 ‘넉넉한’ 인간 관계를 형성해 보라고도 권하고 싶다.
카운슬러로서 때로는 학생의 사진이 신문지상 현상수배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그의 근황을 알게 되기도 하고, 엄마와 부적절한 감정처리로 격리생활 하던 중 결국 엄마는 추방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여학생의 소식 역시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적도 있다. 또 마약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는 한 남학생의 얘기를 들었을 땐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건전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무겁고 쓸쓸하다.
그래도 오늘은 뒤늦게 철난 기특한 녀석이 졸업 필수과목을 이제야 끝내고 넉 달이 지난 오늘에야 졸업장을 받았다며 씩 웃었다. 그 순진한 모습에 쓸쓸한 마음이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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