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사에는 나이 50을 전후한 중견 여기자들이 몇 명 있다. 그중 한명이 8-9년 전 갓 입사한 후배로부터 ‘충격적’인 칭찬을 들었다.
당시 20대였던 남자 후배는 그 여성 선배가 이모와 여고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고 특별히 찾아가 인사를 했다. 신문사의 대 선배이자 이모의 친구 - 그는 아마도 뭔가 호의를 담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말이 “참 곱게 늙으셨네요”였다.
“40살 겨우 넘었는데 곱게 ‘늙으셨다’니… ”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그때 당사자는 물론, 동년배 여기자들 모두가 심란해했었다. ‘곱다’를 칭찬으로 받기에는 ‘늙었다’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평소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어느 순간 나이가 느껴지는 계기들이 있다. 중년이 되면서 대개 한두번씩 듣는 말,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가 그렇고, 한국 방문시 지하철에서 학생들이 벌떡 벌떡 일어나 자리를 내어 줄 때가 그렇다.
어느 모임에서 나이 듦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분이 재미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담당 의사나 담임 목사가 나 보다 어리면 그땐 정말 나이 든 것이에요”그런가 하면 여자 의사들은 남성환자들의 태도를 보며 나이를 느낀다고 한다.
“젊어서는 진찰을 하기 위해 옷을 벗으라고 하면 남성환자들이 좀 당황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환자들이 내 앞에서 무덤덤하게 옷을 내리더군요”
나이 듦은 그런 사사로운 느낌들로 찾아와서 우리를 노년이라는 기나 긴 여정으로 몰고 간다.
지난 한주는 노인들을 생각하는 주였다. 10월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날’이었고, 2일은 한국에서 ‘노인의 날’이었다. 유엔이 올해로 13번째, 한국은 7번째 ‘노인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단순히 경로사상 때문은 아니다. 엄청나게 길어진 노년기, 엄청나게 늘어난 노인 인구가 어느 국가에서나 큰 사회적 숙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60세 이상 연령층은 6억500만명. 이 인구가 2025년이면 12억, 2050년이면 20억이 되면서 노인이 어린이(0-14세) 보다 많은 기현상이 벌어질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는 현재 3,500만명이고, 30년 사이 두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인 1세들에게 비슷하게 적용될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2001년 현재 76.5세(여성 80세, 남성 72.8세)로 30년 전과 비교해 15년, 10년 전과 비교해서는 4-5년이 늘었다.
한편 현재 65세인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면 여성은 84세, 남성은 81세가 평균 기대 수명이고 보면 오늘의 노인들은 앞으로 무난히 20년은 더 살게 될 전망이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 사망률이 가장 낮은 연령 집단은 85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100세 넘은 노인들의 사망률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은퇴 후 20-30년, 혹은 40년의 여생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노년기 삶의 질을 위해서는 남에게 짐이 되지 않고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선은 육체적 독립이다. 남의 도움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이 필요하다. 다음은 경제적 독립.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
아울러 필요한 것은 혼자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본다. 노년에 이르면 부부 중 한사람은 배우자 없는 여생을 보내야 하는 데 특히 한인남성들은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하지가 않다. LA의 한 주부가 얼마전 부인과 사별한 친지를 방문한 후 가슴이 아파했다.
“한국 남자들은 평생 자기 손으로 집안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입으로 ‘물’하면 물이 대령되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지요. 요리를 해본 적이 없으니 음식은 모두 마켓 반찬들이고, 접시는 손을 대면 찐득찐득 하고, 냄비는 새카많게 타고… 너무 불쌍해서 볼 수가 없더군요”
장수의 나라 일본에서는 50대에는‘홀로 서기’ 준비를 시작한다고 한다.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하는 등 집안 일을 익히는 것은 기본. 취미나 봉사활동 등 홀로 즐길 일거리를 찾는 것도 기본에 속한다.
‘노인의 날’ 서울에서는 ‘노인 체험’이라는 이벤트가 있었다. 젊은이들이 시력 감퇴 안경, 납이 든 묵직한 조끼 등 특수 복장을 착용하고, 거동 불편한 노인의 삶을 체험하는 이벤트였다. 노인은 젊은이의 미래이다. 노년의 삶을 나의 삶으로 끌어안는 풍토가 필요하다.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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