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마켓에 갔다가 우연히 클로 드 부아(Clos du Bois)의 97년 빈티지 메리타지인 ‘말스톤’(Marlstone)을 발견하고 가격도 체크해보지 않고 하나 집어들었다. 대형마켓에서 가끔 2000년, 1999년 빈티지 뒤에 먼지를 뽀얗게 쓴 채 숨어있는 98년이나 97년 빈티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캘리포니아산 카버네 소비뇽과 멜로는 1997년이 특별히 뛰어난 빈티지로 꼽히기 때문에, 2000년 빈티지 가격에 97년을 얻는 것은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다.
똑바로 세워진 채로 1~2년 보관되었으니 코르크가 말라서 와인이 혹시 상하지 않았을까 약간 걱정이 되어서, 해물 파스타와 소비뇽 블랑을 마시려던 그 날 저녁 계획을 수정해서 스테이크와 함께 말스톤을 마셨다. 다행히 와인은 상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약간 밋밋하게 느껴지던 맛이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도 부드럽고 입안에서 달콤한 맛으로 녹아들면서 스테이크의 맛 또한 황홀하게 바꾸어 놓았다.
클로 뒤 부아는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의 북쪽 알렉산더 밸리에 자리한 와이너리이다. 저렴한 가격의 클래식 시리즈부터 병당 50달러에 달하는 와인메이커스 리저브 시리즈까지 다양한 레벨의 와인을 고른 품질로 생산하는데, 그 중 말스톤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인 레드 와인 메리타지는 특별히 유명하다. 1997년 말스톤은 카버네 소비뇽 52%, 멜로 44%, 쁘티 베르도 4%를 혼합하여 만들었다.
이처럼 보르도 스타일 카버네 소비뇽 블렌드 적포도주를 레드 메리타지라고 하는데, 미국 내 여러 와이너리들은 각기 자신을 대표하는 메리타지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중 많은 곳이 클로 뒤 부아의 말스톤처럼 따로 이름을 붙여서 판매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나파의 세인트 수퍼리(St. Supery) 와이너리에서는 카버네 소비뇽 67%, 멜로 26%, 페팃 베르도 4%, 카버네 프랑 3%를 혼합한 1999년 메리타지를 그냥 ‘레드 메리타지’라고 부르는데 반하여, 같은 나파의 플로라 스프링스(Flora Springs) 와이너리에서는 자사의 메리타지에 ‘트릴로지’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2000년산 트릴로지는 카버네 소비뇽 47%, 멜로 38%, 말벡 8%, 카버네 프랑 7%를 혼합하여 만들었다.
메리타지(Meritage)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 merit 와 heritage를 합친 것이다. 1988년 미국에 메리타지 협회가 만들어졌는데,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을 무엇이라 칭하여야 할 것인가를 공모하여 약 6천개의 응모된 명칭 중 선택된 이름이 메리타지이다. 이를 통하여 미국 메리타지 협회 회원들이 원하는 메리타지 와인이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다. 품질이 우수하고 뛰어나며, 전통적인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와인 레이블에 포도의 품종이 적혀 있는데, 표기된 품종이 적어도 75% 포함되어야 한다는 룰이 있다. 예를 들자면 카버네 소비뇽이라 표기된 와인이라면, 그 와인의 최소한 75%는 카버네 소비뇽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75% 룰은 각 와이너리와 포도밭에서 최고로 맛있는 와인을 생산해 낼 때 걸림돌이 되는 수가 많았고, 결국 와이너리들은 한가지 품종이 75% 미만이 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이같이 메리타지 협회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메리타지 와인은 각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여겨지며, 그해그해 날씨와 여러 주변 환경에 따라 블렌딩하는 포도 품종과 비율을 바꾸어가며 좀 더 자유롭게 만드는 와인으로 이해되고 있다.
메리타지 와인은 꼭 레드 와인에만 국한된 명칭은 아니다. 보드로 스타일의 적포도주, 백포도주에 모두 메리타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데, 메리타지 협회에서 정한 룰은 다음과 같다. 레드 와인이 메리타지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카버네 소비뇽, 멜로, 카버네 프랑, 말벡, 쁘티 베르도, 세인트 마케르, 그로 베르도와 카망메르 중 두가지 이상을 혼합하여 만들어야 하며, 한가지 품종이 90%를 넘어서는 안 된다. 화이트 메리타지는 소비뇽 블랑, 세미용, 소비뇽 베르 중 두가지 이상을 혼합하여 만든 와인으로 역시 한가지 품종이 90%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단일 브랜드로서는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오퍼스 원’도 메리타지라고 할 수 있고, 조셉 펠프스의 와인 중 가장 큰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인시그니아’도 메리타지 와인이다. 참고로 조셉 펠프스의 인시그니아의 경우 1999년 빈티지는 카버네 소비뇽 71%, 멜로 21%, 쁘티 베르도 6%, 말벡 1%, 카버네 프랑 1%로 만들어졌고, 1998년 빈티지는 카버네 소비뇽 78%, 멜로 22%로 만들어졌으며, 1997년 빈티지는 카버네 소비뇽 83%, 멜로 14%, 쁘티 베르도 3%로 만들어졌다.
그 외 잘 알려진 메리타지 이름으로는 콘 크릭(Conn Creek) 와이너리의 Anthology, BV 와이너리의 Tapestry, 로버트 크렉(Robert Craig) 와이너리의 Affinity, 저스틴(Justin) 와이너리의 Isoceles 등이 있다.
<최선명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