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끼리 가까이 지내는 집 아이 중에 ‘노래방에서 큰 아이’가 있다. 지금은 의젓한 중학생인 아이가 기저귀 찼을 때부터 노래방을 드나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30대의 맞벌이 부부인 아이의 부모는 사람을 좋아해서 늘 모임이 잦았다. 모임은 대개 식당에서 시작돼 노래방으로 이어지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마땅치 않으니 부부는 항상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처음 노래방 소파에서 새근새근 잠만 자던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어른들 틈에 끼여 마이크를 잡고 신나 하더니, 이제는 부모와의 나들이를 사양할 만큼 자랐다. 마침내 부모는 베이비시터 찾는 부담에서 졸업했고, 아이는 노래방을 졸업했다.
미국에서 맞벌이하며 어린 자녀를 키우는 일은 하루하루가 곡예이다. 아침마다 우유병·기저귀 가방 챙기고, 잠에서 채 깨지도 않은 아이를 씻기고 옷 입혀 베이비시터 집에 데려다 주고, 교통지옥 뚫고 출근해 하루 근무를 마치면, 다시 허겁지겁 달려가 아이를 찾아 귀가하는 일과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 기르는 부모들에게 힘든 것은 베이비시터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경우이다. 최악의 상황이 지난주 LA에서 일어났다.
지난 17일 LA에서는 7개월된 한인 유아가 베이비시터 집에서 사고를 당한 후 뇌 손상으로 사망했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부모들은 누구나 가슴 철렁했을 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극히 예외적인 불행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베이비시터를 잘못 만나 마음 고생을 한 경험들은 심심찮게 들린다. 주부들의 경험을 토대로 하면 베이비시터를 구할 때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심성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6살, 4살 두 아이의 엄마인 M씨는 말한다.
“아기 봐주는 아주머니들을 보면 두 부류가 있어요.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보는 사람, 그리고 아기를 원래 좋아하기 때문에 돈도 벌 겸 베이비시터를 하는 사람이지요”
6년전 그가 첫 아이를 맡겼던 5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전자에 해당되었다. 90세 가까운 시어머니를 모시고 김치 담아 팔며 어려운 생계를 잇던 베이비시터는 아기를 맡기만 했을 뿐 돌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보니 아이를 유모차에 앉혀 묶어 두고는 울거나 말거나 내버려 둔 것 같더군요. 기저귀를 너무 갈아주지 않아서 오물이 옷은 물론 유모차 시트에까지 묻을 정도였어요”
아기를 너무 여럿 보는 베이비시터도 피하는 것이 좋다. 우리 신문사의 한 여직원은 아기가 너서리 스쿨 갈 때까지 직접 키우느라 1년반을 휴직했다. 생후 2개월 되면서 아기를 베이비시터에게 보냈는 데 사고가 생겼다.
“2살짜리 아이를 키우던 엄마였는데 처음에는 우리 아기만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 보니 아기들을 더 받아서 4명이 된 거예요. 혼자 돌보기 벅찬 인원이지요. 결국 그중 한 아이에게서 문제가 생겼어요. 머리가 부어 올라 병원에 데려 갔더니 안에서 혈관이 터져 피가 고였다고 하더군요. 불안해서 다시는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어요”
부모들의 이런 조마조마한 마음을 헤아려주는 회사가 있다면 그 직원들을 얼마나 행복할까?
IBM, 마이크로 소프트, 제너럴 밀스, 패니 매, 하버드 대학, 레고 시스템, 엘리 릴리, 혹은 액센처 등이 그런 기업이라고 한다.
월간잡지 워킹 마더가 미국의 기업들 중 일하는 엄마들에게 가장 좋은 100대 기업을 선정해 10월호에 발표했다. 이들 기업이 자녀 키우는 여성들의 사사로운 어려움에 기울이는 관심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어린 자녀들을 위해 직장 내 너서리 스쿨을 운영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일이고, 그 보다 큰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 여름방학동안 서머 캠프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있고, IBM은 아이들 방학 후 서머스쿨 개학까지, 부모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 데 아이들은 갈 곳이 없는 기간을 위해 캠프를 운영하기도 한다. 아울러 퇴근 후 그대로 먹을 수 있도록 가족의 저녁식사를 싼값에 제공하는 회사, 지압 서비스를 해주는 회사도 있다.
이런 배려를 통해 기업이 기대하는 것은 직원들의 행복이다. 직원이 행복하면 능률이 오르고 능률이 오르면 기업의 이윤이 올라간다는 논리이다. 행복의 씨앗을 뿌려서 이윤을 추수하는 기업들이다. 한인사회에는 언제나 이렇게 행복을 심는 기업들이 나올까.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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