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2주기를 맞아 추도행사가 열린 미국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붕괴현장 `그라운드 제로’에는 이른 아침부터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모여들었다.
저마다 숨진 가족의 사진이나 꽃을 들거나 추모의 글귀와 사진, 그림이 새겨진셔츠를 입은 유족들은 묵념, 기도를 하거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의 모양을 따 만든 연못에 헌화하면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행사는 어린이 합창단이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르는 가운데 `그라운드 제로’ 현장에서 발견된 성조기가 입장하면서 시작됐고 이어 백파이프의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이 연주됐다.
계속해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조지 파타키 뉴욕주시사,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의 연설과 추모음악 연주, 피랍 여객기의 WTC 공격 및 쌍둥이 빌딩 붕괴 시간에 맞춘 묵념 , 자녀들의 희생자 호명 등으로 진행됐다.
자녀들을 비롯한 유족 200명이 차례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은 3시간여에 이르는 행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은 다른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른 뒤 부모나 형제, 친척 등 자신과 관련된사망자를 마지막으로 호명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의 이름을 부르면서 숨진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거나 그립다는 말을 곁들이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숨진 아버지 리처드 앤서니 아세토씨의 이름을 부른 크리스티나 마리아 아세토양은 아빠 사랑해요. 너무 그리워요라고 말했다.
연단 밑의 유족들도 가족들의 이름이 불려지면 비슷한 글이 쓰여진 사진을 들어보이며 애정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유족들이 `그라운드 제로’ 바닥으로 내려가기 위해 이용한 진입통로 주변과 바닥 벽면 등 곳곳에도 유족들이 붙인 사진과 글이 눈에 띄었다.
한 사진에는 아빠의 등에 타고 놀던 때가 생각나요라는 자녀의 글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포스터에는 한 희생자의 아들이 하트 모양의 그림과 함께 아빠에게,아빠는 언제나 내 가슴에 있어요.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간단한 편지를 써놓았다.
유족들은 한편으로는 슬픔에 겨워하면서도 `그라운드 제로’ 바닥의 흙을 준비해온 병에 담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등 WTC와 숨진 가족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일부 유족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휴대폰으로 현장상황을 누군가에게 `중계’하기도 했다.
지난해 1주기 행사 때 독립선언문, 게티스버그 연설 등 미국 역사의 주요문서가 낭독됐던 것과는 달리 올해는 주요 참석인사들이 시를 낭독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황폐한 땅을 복구하라. 폐허를 재건하라.
상처를 치유하라. 승리자에게 왕관을 씌우라. 다치고 상처받은 자를 위로하라는 윈스턴 처칠 전(前) 영국 총리의 시를 소개하면서 유족들과 국민에게 미래를 향해 용기있게 나아갈 것을 호소했다.
숨진 뉴욕ㆍ뉴저지 항만청 직원의 아들 페터 네그론군도 내게 `눈물을 닦으라’고 말하지 않는 그들이 좋다네. 그러나 그들은 어둠속에서 빛을 내면서 조용히 나를부드럽게 감싸네라는 내용의 시 `별들’을 낭송했다.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는 전날 밤부터 추모 분위기가 고조하기 시작했다.
WTC와 길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어 9.11 당시 구조요원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기도 했던 세인트 폴 성당에서는 심야 예배가 열려 참석자들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도를 올렸다.
인근 공원에서는 밤새 연주회와 시낭송 등으로 희생자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고 일부 참석자들은 `그라운드 제로’까지 촛불행진을 벌였다.
밤이 되면 `그라운드 제로’에는 무너진 쌍둥이 빌딩을 상징하는 두줄기 빛이 밝혀질 예정이다.
백악관은 이번 행사가 순전한 `유족들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나부통령의 방문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후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당초 딕 체니 부통령을 `그라운드 제로’에 보내기로 했으나 막판에 이마저 취소하면서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경호 강화에 따른 유족들의불편을 감안해달라고 요청하는 형식을 취했다.
체니 부통령은 그러나 `그라운드 제로’ 행사가 끝난 후 열리는 뉴욕ㆍ뉴저지 항만청 순직자 추도행사에는 참석할 계획이다.
일부 미국 언론들은 내년 대선에서 재선에 나설 부시 대통령이 9.11을 정치적목적에 이용한다는 시비가 일 것을 우려해 `그라운드 제로’를 피했다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했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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