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흥행 성공 하려면
한인 관객 몰려 주가올려야
최근 미 메이저 워너 브라더스(WB)의 신설된 자회사 워너 인디펜던트 픽처스(WIP)의 마케팅 및 홍보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임명된 로라 김씨(한국명 김지연·36)는 할리웃에서는 잘 알려진 맹렬 여성이다.
저예산의 독립·예술영화를 제작 배급하고 외국어 영화를 수입 배급하기 위해 창설된 WIP의 마크 길 사장은 “올해 나온 훌륭한 독립영화들의 절반의 홍보를 로라가 맡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며 “로라는 총명하고 상상력 풍부하며 부지런해 독립영화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지난 12년간 독립영화 전문 홍보회사 mPRm에서 일하면서 부사장으로까지 승진했던 김씨는 WIP에서 마케팅과 홍보업무 외에 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 참가, 작품 구입을 하는 일을 맡는다. 김씨의 새 직책은 미메이저에서 활동하는 한국계는 물론이요 아시아계로서도 최고의 것이다. 업무 시작은 10월6일부터.
김씨는 “내게 수석 부사장직 제의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지금도 흥분되지만 내 적성에 잘 맞고 그 곳의 동료들과 작업 분위기도 좋아 일을 맡았다”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김씨에게는 그동안 메이저와 미니 메이저 등에서 고위 직책을 내걸고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여러 차례 들어왔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마크 포가체프스키 사장과 함께 처음부터 키워온 mPRm의 작업 분위기와 애착심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사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전과 책임의식을 걸머지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의욕에서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포가체프스키 사장의 적극 격려도 결심에 도움이 되었다.
김씨는 “지금까지 내가 주로 한 일은 홍보인데 앞으로는 마케팅과 영화 구입 그리고 창조적 광고와 제작에까지 깊이 관여해야 해 두렵기까지 하다”면서 “그러나 전연 새로운 일은 아닌데다가 지식은 충분히 있어 그것의 사용 방법을 배우면서 일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mPRm에(91년 창설 때에는 마크 포가체프스키사였다) 있으면서 때로는 한꺼번에 7편의 영화를 홍보할 정도로 실력과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이다. 보기에는 얌전해 보이고 상냥하지만 추진력과 집착력이 강한 ‘터프 레이디’다. 그가 홍보한 영화들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많다. ‘샤인’ ‘뮤리엘의 결혼’ ‘스위트 히어애프터’ ‘행복’ ‘엘리자베스’ ‘존 말코비치 되기’ ‘침실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 ‘피아니스트’ 등이 대표적 작품들. 최근 영화들로는 한국계 배우 존 조와 강성호가 주연한 ‘내일은 운수대통’ ‘더티 프리티 싱즈’ 및 ‘아메리칸 스플렌더’ 등이 있다. 그가 홍보한 한국 영화로 대표적인 것은 ‘춘향뎐’과 ‘집으로’. 김씨는 특히 한국 영화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데 이들 영화를 홍보할 때면 기자를 만나 “손님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면서 “제발 한국사람들이 많이 와서 보라고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다.
김씨는 아시안 영화 특히 한국 영화를 홍보할 때면 때로는 도가 지나치게 매어 달리게 된다고 한다. 김씨는 “감정적 연결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면서 “그러나 아무리 한국 영화지만 작품이 좋아야 홍보도 신이 난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려면 먼저 한국인들이 많이 봐 영화의 주가를 올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요즘 한국 영화계의 질적 양적 성장은 정말 반가운 일이라면서 한국 영화의 해외 성공의 비결은 결국 좋은 영화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또 점점 늘어가는 한국계 1.5세들의 미영화계의 각 부문 진출도 눈 여겨 지켜보고 있다. 그는 우리들의 후손들이 미영화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초석은 부모들의 도움으로부터 쌓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극장에도 가고 TV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자녀들에게 예술의 양식을 제공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영화의 영향력이 큰 만큼 1.5세들의 자기 이미지 반영과 자아존중의 표현수단이 될 수 있는 영화에 보다 많은 후세들이 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모두가 의사와 변호사가 되면 어쩌겠느냐”며 웃었다.
WIP는 내년이나 가야 본격적으로 작품을 내놓는다. 벌써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과 제작자 크리스틴 바숀 같은 할리웃의 재주꾼들이 WIP를 위해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영화를 홍보한다는 것은 난관과 불가능의 극복이나 마찬가지라는 김씨는 특히 양질의 독립 영화들의 흥행부진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 앞으로 만들 영화의 각본을 검토하고 있다.
생후 6개월 때 의사인 아버지 김진길씨와 약사인 어머니 최혜경씨와 함께 오하이오주로 이민 온 김씨는 클리블랜드와 애크론을 거쳐 5세 때부터 쉘비에서 성장했다. 보스턴 대학에서 매스컴 PR을 전공할 때부터 WB를 위해 일했다. 대학 졸업 후 LA로 와 1989년부터 디즈니영화사 부에나 비스타 픽처스의 마케팅부에서 일하다 1991년 포가체프스키사로 옮겼다. 4녀중 2녀인 김씨는 미혼. “12년간 영화를 사랑하다 보니 다른 것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면서 수줍어했다.<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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