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9월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를 마감할 때까지 뭔가로 마음 졸이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긴장 속에 나날을 보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지나간 날들이 그저 뿌옇고 아득할 뿐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새해 들어 이제까지 240여일의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실어 보냈는가. 가족들을 돌보고, 사교모임, 여가 활동을 즐기는 일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일 하느라 그 시간을 다 보낸 것이 대부분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게 돈 벌어서 재산이라도 모았으면 모르겠지만 그동안 먹고 산 것이 전부라면 지난 8개월의 삶은 남는 것 없는 본전장사일 뿐이다. 만약 너무 일만해서 건강을 잃었다면 그때는 밑지는 장사가 된다. 20세기 초반의 영국 경제학자 존 케인스가 보았다면 이해를 못할 상황이다.
영국이 불경기에 시달리던 1930년 케인스는 21세기 후손들의 삶에 대해 장밋빛 예언을 했다. “100년후 영국은 경제적으로 8배는 더 잘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1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질적 욕구가 완벽하게 충족되므로 너무 돈을 밝히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고 그는 전망했다.
21세기 미국 보통사람의 생활조건을 그대로 타임머신에 실어 70년 전으로 보낸다면 케인스의 주장은 이론의 여지없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8배 잘 살게 된 사회에서는 기대수준 또한 그만큼 높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시간을 절약해주는 최신 기계가 보급될수록 시간은 더 없고, 고소득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더 많은 시간 일을 하며, 부자들이 더 필사적으로 돈 버는 데 매달리는 기이한 현상을 케인스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도 근본으로 가면 숫자가 아니라 심리이다.
최근 USC 경제학과가 발표한 조사 결과가 좋은 예이다. 연구팀은 약 30년에 걸쳐 1,500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결론은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입이 많아질수록 갖고 싶은 욕구, 못 가진 것에 대한 상실감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시간에 무엇을 담아 보내면 이문 남는 장사가 될까.
우리 신문 본국지에는 요즘 김흥수 화백의 ‘나의 이력서’가 연재되고 있다. 지난 80년대 초 환갑이 지난 나이에 40살 연하의 제자와 결혼해 화제가 되었던 그는 건강비결을 운동이라고 소개했다. 타고난 건강 체질인데다 젊어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 것이 나이 들어 효력을 발휘한다며 “운동에 투자한 시간이 ‘이자’를 낳았다”고 했다.
건강연구 기관인 리얼에이지에 의하면 그 ‘이자’는 9년쯤의 시간이다. ‘리얼 에이지’, 즉 ‘진짜 나이’란 출생연도와 상관없이 심신의 현재 상태를 기초로 한 나이. 40살 동갑이라도 건강상태에 따라 ‘진짜 나이’는 30살도 될 수 있고, 50살도 될 수 있다.
규칙적 운동은 ‘진짜 나이’를 최고 9년까지 젊게 할 수 있다고 이 기관은 분석한다. 수입의 일정부분을 은퇴연금에 투자하듯이 시간의 일부를 운동에 투자하면 최고 9년이라는 시간을 이자로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도 괜찮은 투자이지만 더 좋은 투자는 정신건강 투자이다. 리얼에이지에 의하면 정서적, 정신적 안정은 ‘진짜 나이’를 최고 16년까지 젊게 할 수 있다. ‘나이 60에도 마음은 청년’이 가능한 것이다.
정신건강을 좋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들과의 교제.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 때 건강하다. 지난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캘리포니아 알라메다에서 4,000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유명하다. 혼자 고독하게 지내는 노인들은 배우자나 친구, 친척이 늘 주위에 있어서 대인 관계가 활발한 노인들에 비해 사망률이 3배나 높다는 것이 조사결과였다.
아울러 ‘진짜 나이’를 젊게 만드는 정신건강법은 선행. 최근 5년간 진행된 한 연구에 의하면 남을 돕기를 즐기는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사망 가능성이 60%나 낮다. 남을 돕는 일을 소명으로 삼았던 나이팅게일이나 슈바이처가 90살까지 장수한 것이 좋은 예이다.
삶은 시간이다. 삶에 시간의 이자를 버는 투자를 하는 것이 장수비결이다. 노동절 연휴를 맞아 친지들을 잔뜩 불러 음식을 나누어 보자. 그리고 운동까지 같이 한다면 시간의 이자가 얼마나 붙을까?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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