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독자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끄는 기사는 어떤 것일까. 성별, 연령, 관심분야에 따라서 찾아 읽는 기사내용이 다르겠지만 한인이라면 대부분, 그리고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절대로 빼놓지 않는 기사가 있다. 우수 대학 순위 기사이다.
US뉴스 & 월드 리포트가 연례 대학 랭킹 특집을 9월1일자 이슈에 실었다. 2002~ 2003 학사연도를 기준으로 평가한 ‘미국의 최우수 대학 2004’에 의하면 학사, 석사, 박사과정이 있는 전국 248개 종합대학 중 가장 우수한 학교는 하버드와 프린스턴이다. 이들 공동 1위 대학에 이어 예일이 3위, MIT 4위, 칼텍, 듀크, 스탠포드, 유펜이 공동 5위로 순위가 매겨졌다.
UC계열대학 중에서는 버클리가 20위, UCLA가 25위, 그리고 UC 샌디에고(31위), UC 데이비스(43위), UC 어바인(45위), UC 샌타바바라(47위)가 최우수 50위 안에 들었다. 공립대학 순위에서는 버클리가 버지니아 대학과 공동 1위를 차지했고, UCLA는 4위로 뽑혔다.
매년 US뉴스 대학 랭킹이 발표되는 이 때가 되면 각 대학들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순위 한 등급을 올리기 위해 입학사정 절차를 바꾸는 등 별별 수단을 다 쓴다. 하지만 정작 대학 진학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대학 랭킹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미국의 분위기이다.
고등교육 마케팅 회사인 아트 & 사이언스 그룹이 진학 예정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랭킹이 대학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응답자는 12%에 불과하다. 대학을 정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대학 랭킹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는 학생은 응답자의 2/3. 그러고 보면 “어느 대학이 1위, 어느 대학은 2위…”식의 대화는 미국 가정에서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보다는 캠퍼스 방문 때 받은 인상,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조언, 대학 안내책자나 웹사이트가 대학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대답이 주도적이다.
이와는 반대로 부모가 대학 랭킹을 강조한 케이스는 9%로 나타났는데, 그 중에는 한인 부모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이 된다. 우리의 소문난 교육열이 랭킹에 무관심할 수 없게 만드는 근본 요인이겠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무엇이든 1위, 2위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수직적 인식구조와 상관이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 한두달 사이 군대내 성추행 사건들이 잇달아 폭로되더니 한국의 군대가 개혁을 시도하고 나섰다. 남자들은 직접 경험으로, 여자들은 남자들의 무용담 같은 군대 이야기로 익숙한 ‘짬밥’문화를 병영에서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계급이 서열이 되어 온갖 가혹행위, 모욕적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수직적 관계를 상호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로 전환하겠다고 한국 육군은 발표했다.
군대의 ‘짬밥’ 문화가 가장 극단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서열의식은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있다. 직장의 회식자리에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용케도 직급 따라 제자리를 찾아가 앉는 것이 우리의 본능적 서열의식이다. A,B,C의 성적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소수점까지 계산해 ‘23등, 24등 …’ 석차로 서열을 매기고, ‘경기, 서울, 경복’‘경기, 이화, 숙명’으로 학교도 서열을 분명히 해야 성에 차며, 그래서 한 등급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수직적 의식구조에 우리는 길들여져 있다.
수직적 사고는 항상 비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피곤하다는 점, 그리고 미국에서 자라 랭킹에 무관심한 우리 자녀들과 의식의 갭을 형성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가족같이 지내던 백인 목사가 몇 년전 은퇴를 했다. 그리고는 담임목사로 일하던 같은 교회에서 파트 타임 부목사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새 담임목사는 물론 몇십년 손아래인 까마득한 후배였다. 서열의식 깊은 한인들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직책을 상하 서열의 수직 관계가 아니라 기능으로 구분되는 수평관계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자녀들이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B+ 대신 A를 받을 텐데, UC 샌디에고 대신 UCLA를 갈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부모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랭킹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긴긴 여름 방학이 끝나고 이제 개학이다. “너 보다 잘한 아이는 몇 명이니?” “다른 아이들은 몇 점 맞았니?” 따위의 질문으로 부모와 자녀가 갈등을 겪는 일이 또 되풀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랭킹이나 서열 의식은 행복한 사고방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걸 꼭 대물림할 필요가 있을까?
권정희 편집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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