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떠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멀리, 가장 오랫동안, 집을 떠나는 아들이 이 엄마의 마음을 숯검정이 되도록 태워놓고야 비행기를 탔다. 지난 목요일, 아들은 보이스카웃에서 2주 예정으로 하와이 캠핑을 떠났다. 그 결정은 이미 작년말 내려진 것이며 상당액의 경비를 부모들이 매달 나누어 완납했기 때문에 모든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떠나기 한달쯤 전 아들은 자기 일생에 처음 비행기를 탄다며 좋아했다. 어렸을 때 세 번이나 탄 적이 있다고 아무리 일러주어도 자기는 생각이 안 나니까 이번이 처음이라며 들떠했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기체의 소음을 견디며 그저 가만히 있어야하는 일이라는걸 알지 못하는 아이는 새처럼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된 열흘전쯤부터 아이가 몸에 이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기간은 부모들이 준비모임을 갖고,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아이들은 응급처치 클래스와 수영 테스트를 수료하고, 준비물들을 구입하며 짐을 챙기는 중이었다.
심하지 않은 감기로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약을 먹여도 낫지를 않았다. 병원에 가기에는 멀쩡하고, 그냥 두자니 여행가서 앓을까봐 신경이 쓰여 알러지약도 먹여보고 감기약도 먹여보았으나 평소 건강하던 아들은 이상하게도 코감기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엄지발가락에 난 작은 상처가 곪기 시작했다. 수영하다 다쳤다는 상처가 대수롭지 않아 보여 약 좀 발라주고 내버려두었는데 며칠 지나자 부어오르더니 곪아서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기왕 터졌으니 잘 됐다 싶어 며칠후면 아물 것이라고 간단한 처치만 해두었다. 그런데 떠나기 이틀전 아들은 발을 건드릴 수가 없게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다시 들여다보니 더욱 많이 곪아 있었다. 이를 어쩌나. 여행 스케줄을 보니 맨날 수영에, 스노클링에, 서핑에, 바다 낚시로 점철되어 있는데 저 발을 하고 어떻게 물에 들어간단 말인가.
너무 늦었지만 떠나기 바로 전날 아침 서둘러 아들을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선생님은 매일 아침저녁 항생제를 먹고 항생연고를 발라야 한다고 처방했고, 아들은 그 상태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잊지 말고 약을 먹고 바르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미리 처치해주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고 있는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후가 되어 친구네서 놀고 있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머리가 아퍼. 아주 많이 아퍼” 아니, 이게 또 무슨 소리야. 아들은 그렇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아프면 그냥 ‘아프다’지, ‘아주 많이 아퍼’라고 말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목소리는 아직까지 코맹맹이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달려가면서 나는 거의 히스테리가 되었다.
“아니, 너 어쩌니. 내일 떠나야 되는데 어떡하면 좋으니, 얼마나 아프니, 다른데 아픈데는 없니? 아플려면 아침에 병원 갔을 때 아프지, 도대체 왜 지금 갑자기 그러는거야, 내일도 아프면 어쩐다니” 아들은 지금처럼 아프면 자기는 못 간다고 하였다. 뭣이라고, 짐 다 싸놓고, 돈 다 내놓고, 못 간다니,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 스케줄은 어떡하라고...
그 길로 타일레놀과 항생제와 코감기약을 다 함께 먹고 침대에 누운 아들은 머리를 베개에 대는 순간 거짓말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평소 잠 안자는 아이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내 속을 썩이던 녀석이 저녁도 안 먹고, 건드려 보아도 꼼짝 않고 잠만 잤다. 그렇게 13시간을 자고 일어난 아들. 새벽에 후다닥 깨서 들여다보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앉았다.
“어떠니, 괜찮니?” “응, 괜찮아” “갈 수 있어?” “그럼” “휴우우우~”
공항에 데려다주니 흥분된 얼굴로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모습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어찌나 속을 태웠는지,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아프고 속까지 울렁거렸다. 아이는 정말 몸에 이상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긴 여행을 앞두고 자기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일까?
떠난 지 벌써 6일째, 발에 약은 제대로 바르는지, 항생제는 때맞춰 먹고 있는지, 옷은 제대로 갈아입는지, 변비가 심하지는 않은지, 걱정을 하자면 끝이 없지만, 아~ 이제 그만 두자. 녀석도 자기 몫의 인생을 살아야하니까. 아들이 부쩍 커서 돌아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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