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엔 LA 통합교육구에서 실시하는 여름학교 프로그램 중 이민 온지 3년 미만 학생들의 학교 적응과 영어 학습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주일에 한번 소그룹 상담을 모국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한인 학생을 위한 그룹 상담자로 가게 되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LA 근교의 한인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2년 전 똑같은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 학생들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이해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순진한 아이들의 마냥 부푼 학업에의 열의에 난 그저 그들이 겪어야만 하는 언어와 생소한 문화와의 갈등을 좁혀주고자 애썼던 기억이 있다.
올해 그 프로그램을 또 맡으면서 난 좀더 적극적으로 한인 학생들이 어떤 문제로 영어를 힘들어하는지, 어떤 식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지, 학교 외에서는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하는 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민 온지 몇년이 지나 겨우 ESL을 통과하고 정규반으로 가게 되어도 그들의 영어 실력은 그리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해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익히 보아왔던 터라 이번엔 문화에의 적응보다는 영어 학습방법에 좀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한인 학생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거기에 대한 감정적인 문제에는 별 반응이 없는 반면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의욕은 크지만 실제적으로 수동적인 수업 방식에 익숙한 한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나누는 데는 너무 소극적이어서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인 학생들이 영어시간에 갖고 있는 공통된 의견은 너무 느리다는 것과 너무 쉬워서 빨리 좀 진행했으면 하는 것이었고 그들이 한국에서 영어시간에 배웠던 문법이나 단어 혹은 문장 연습이 아닌 실생활과 관련된 언어를 배우는 전체적인 분위기에 적응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한국에서 처음 영어를 접했을 때 배운 한국식 영어수업이 영어를 배우는 정석이라 생각이 되었는지 그 방법이 아니라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학과 고민을 들어주던 어느 날 한 초등학교 영어선생이 자기 반 5학년 여학생이 표현을 잘 안하고 시무룩하게 있으니 뭐가 문제인지 알아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말을 시켜도 전혀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아 이야기 책 하나를 골라서 그 여학생을 포함시킨 소그룹에서 아이들과 같이 읽으며 모르는 단어는 머리 속에 접어두고 문장 전체의 뜻을 이해하도록 유도해 나갔다.
그 여학생은 빠른 속도로 내용을 이해하며 읽어나갔다. 다 읽은 후엔 모르고 지나갔던 단어를 어렴풋이 문장 전체의 뜻에 따라 이해하며 맞춰나갔고 그림만 보여주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라는 내 요구에 정확하게 문장을 생각해 내었다. 그리곤 책을 덮고 그림을 연상하며 더듬거리며 하나씩 문장을 맞추고 완벽하게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녀의 환한 모습과 자신에 찬 얼굴엔 그 영어선생이 말한 그늘이 전혀 없었고 단지 그녀에겐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집에서 늘 책을 읽는 아이여서 책을 이해하는 속도도 빨랐고 책 내용을 전체적인 느낌으로 이해하고 감을 잡아가는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고 있었던 반면 내가 갔던 중학교 학생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그들은 이미 한국에서 1∼2년 정도 영어를 배우다 온 아이들이라 단어나 문법 등 세부사항에 중점을 둬서 전체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를 파악하기보다 기본적인 틀에 얽매여 영어 자체를 배우는 절박한 모습이었다. 문맥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언어의 모습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 그 자체의 뜻에 얽매여 문장 전체가 주는 의미를 이해 못해서 책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는 것이 힘들고 그래서 그들의 독서 능력엔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영어를 완전히 정복해야겠다는 소리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듣고 있는가. 영어를 기필코 마스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고 습득해 보자. 여기서 습득한다는 의미는 배워서 반복한다는 의미이다.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느긋한 마음으로 영어가 아닌 언어를 익혀보자.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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