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는 남자의 생애를 7단계로 구분했다. 남녀가 대우나 책임에서 많이 평등해진 지금 시대에는 남녀 구분 없이 일반적 인생의 단계로 봐도 무리가 없 겠다.
인생의 첫 단계인 한 살은 임금님 - 아기가 태어나면 임금님이라도 되는 듯 모두 아기를 떠받들며 비위를 맞춰준다. 두 살은 돼지 - 진창이고 어디고 마구 뛰어다닌다. 열 살은 어린 양 - 양처럼 천진난만하게 웃고 까불며 논다. 그러다 열 여덟 살이 되면 말이다. 자기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어른이 되어 결혼하면 당나귀 -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터벅터벅 걸어가야 한다. 그 다음 중년은 개 - 가족부양을 위해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든 호의를 보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년은 원숭이 - 늙으면 행동이 다시 어린애 같아지는데, 어렸을 때와 달리 이때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임금님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삶의 의무를 다 하고 나면 무관심 속에 쓸쓸히 사라지는 것이 사람의 한평생이라는 해석이다. 그것이 불과 몇 십년 전까지 우리의 삶이었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개’단계와 ‘원숭이’단계 사이에 중간 과정이 끼여들고 있다. 가족부양 의무는 다 마쳤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자신을 의탁할 단계도 아닌 자유롭고 독립적인 기간이다.
중년과 노년을 가르는 분기점은 보통 환갑이었다. ‘환갑노인’이 되고 나면 삶의 일선에서 물러나 자손들에 얹혀 몇 년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환갑의 이미지가 언제부터인가 바뀌었다. ‘환갑’은 있는데 더 이상 ‘노인’은 없다. 지난해 환갑을 지난 한 여성의 말.
“내가 결혼했을 때는 식구들이 모두 시어머니를 깍뜻이 노인으로 대접했어요. 이제 돌이켜보니 그때 시어머니 나이가 60이 안되었더군요. 지금 환갑 맞은 친구들을 보면 모두 환갑 잔치를 쑥스러워 할만큼 젊어요”
이번 주말 할리웃 보울에서 고교 동기들의 단체 회갑잔치를 주관하는 LA의 오승남씨도 같은 의견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50대, 60대 어른들은 완전히 노인들이었지요. 하지만 요즘 나이 60은 청년입니다. 동기들을 보면 머리 좀 빠지고, 얼굴에 주름 좀 생겼지만 ‘영감’은 없어요”
보험업에 종사하는 그는 생명보험의 사망률표를 예로 들었다.
“30년전 처음 보험을 시작했을 때 사망률표 나이 상한선은 71세였습니다. 그것이 99세로 올라가더니 2~3년 전부터는 126세로 조정되었습니다. 수명이 그만큼 길어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요즘의 환갑은 어떤 나이일까. 시간적,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가 있는 나이, 그래서 가장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 공통적인 말이다.
“이 생에서 해야할 임무를 다 마치고, 이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요? 보너스 같이 소중한 시간이지요”
그 시간이 소중한 것은 한편으로 인생의 끝이 보이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청년 같은 반면 동갑내기 친구들이 밤새 쓰러져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이 나이의 엄연한 현실. “나도 어느 한 순간에 갈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없지 않다. 그래서 삶에 대해 지지해지고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고 60대 후반의 한 인사는 말한다.
“내가 이 생의 문을 닫고 떠날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이나 봉사에 의욕을 갖게 되지요”
삶을 단순화하는 것도 이 나이의 공통점. 늘리고, 쌓아야 만족하던 삶에서 덜어내고 나눠주는 데서 기쁨을 얻는 삶이 된다. 올해 환갑을 맞은 한 여성의 말 이다.
“큰집에, 장미꽃이 만발한 넓은 정원, 화려한 식탁을 좋아했어요. 이제는 자그마한 집, 소박한 식탁에 마음이 끌려요. 이 나이에도 재물에 욕심을 갖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해 보여요”
도가에서는 사람의 기본적 욕망으로 수명, 명예, 지위, 재물을 든다. 환갑은 이런 욕망들에서 마침내 초연할 수 있는 여건들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물질이 아니라 정신, 내가 아니라 남에게 눈을 돌릴 수 있는 나이이다.
하늘은 해가 저물 때 가장 빛난다. 이 생에서 수행해야할 임무, 부질없는 욕망들에서 다 놓여난 인생의 황혼기야말로 가장 빛날 수 있는 시기이다. ‘인생은 60부터’는 아니더라도 ‘인생은 60부터 새로운 장’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