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한 세기가 끝나고 동시에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을 맞은 담론의 주제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다. 많은 학자들의 견해다. 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나타났고 한 때는 세계인구의 절반 정도가 사회주의 국가 통치 하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은 게 사회주의다. 신(神)으로부터, 돈으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잘못된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곧 거짓으로 판명 됐다.
1당 독재 공산체제 아래서 인간은 해방되기는커녕 더 억압됐다. 소련제국의 기만에 찬 모습에서 그 거짓은 드러난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결국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무너졌다.
이 세기적 대사건의 전말을 지켜보면서 다수의 학자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진정한 의미의 20세기는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 격인 1차 세계대전 발발의 해인 1914년에 시작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의 해로 끝났다.
20세기는 그러면 어떻게 정의될까. 전쟁의 세기다. 전쟁으로 점철된 시대이기 때문에 나온 정의다. 그 전쟁은 그리고 이렇게 정의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체제간의 투쟁이다.
히틀러의 나치즘, 공산주의. 모두가 형태만 다른 전체주의로, 이 전체주의와의 세기에 걸친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왜 전쟁을 했을까. 그 해답은 간단치 않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민주주의의 확산, 다시 말해 인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20세기는 ‘인권 승리의 세기’로도 불린다.
오늘날 전 세계 192개 국가 중 민주주의가 실시되는 나라는 3분의2가 넘는다. 20세기 초 민주 국가가 북미와 유럽의 몇 개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민주주의의 신장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회교 아랍권에서도 가장 효율적 정부 형태로 인정되고 있다. 알바니아, 이집트, 터키, 모로코 등 회교국가에서 국민의 92% 이상이 민주제도를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WVS)의 2002년 조사 결과로, 역사의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는 세계 전역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인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문화권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유일하게 범세계적인 매력을 가진 정치적 모형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게 인권이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들은 인권보호를 인간존중으로 승화시키며 인권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있다. 자국의 인권개선은 물론이고 타국의 인권실태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게 국제적 흐름이다.
인권문제는 그러므로 한 국가의 배타적 권리로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다. 인류공동의 과제로 이해하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추세다. 세계 공동체의 일원인 개인의 권리를 국제적인 안보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역설로 들리지만 민주주의 확산, 인권의 승리는 전쟁의 산물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냉전에서의 승리는 특히 인권의 승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거짓 메시지의 공산체제 하에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그럼으로써 그 체제를 붕괴케 한 것은 핵무기가 아닌 ‘인권에의 끊임없는 관심’이었다는 게 뒤늦게 밝혀져서다.
인권 존중은 이제 전 지구적 차원의 대세다. 환경보호, 대량살상무기 통제와 함께 보편적 가치로 치부되고 있다. 그 흐름에 홀로 거스르고 있는 게 김정일 정권이다. 수령 절대주의라는 우상숭배 체제 안에 북한 주민을 가두면서. 그 체제는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천하의 대세는 세계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다. 곧 시작되는 21세기에서 그 물결은 더 높아질 것이다. 한반도 통일도 그 과정에서 가시화 될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저항해도 별수 없이 미국이 이끄는 세계 자본주의 단일시장에 편입될 것이고 거기서 남북한은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20세기 끝자락에 한 논객이 던진 말이다. 이 말은 이렇게 바꾸어도 무방할 것 같다.
“인권은 이제 대세다. 인권은 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고, 21세기 세계 공동의 이데올로기다. 이 도도한 흐름에 편승할 때 거기서 북한은 세계와, 또 한국과 만나게 된다. 한반도 통일도 그 때 가시화 될 것이다.”
탈북자에게 난민지위가 주어진다. 탈북자 미국 입국을 허용할 방침이다. 워싱턴의 최근 움직임이다. 그리고 공화당 내 최후의 ‘햇볕’ 동조자 리처드 루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김정일 체제 붕괴를 겨냥한 북한 주민의 대규모 액소더스를 유발하는 운동에 전 세계가 동참하자.”
우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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