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서 영화감독까지 운영 배경등도 다양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프랑스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항상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것 같은 대저택 앞에서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너희 나라 프랑스에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훌륭한 성이나 저택이 많을텐데 왜 이런 미국집 사진을 찍고 그러지?” 하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유럽에 대단한 성과 저택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런 집은 다 대대손손 대물림을 하기 때문에 조상을 잘 만나지 못하면 평생 소유할 수 없는데 반해서, 미국에서는 이런 큰 저택을 누구든지 돈만 있으면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바로 그런 점이 아메리칸 드림이 아닐까. 모두에게 부여되는 평등한 기회의 나라.
와이너리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프랑스의 와이너리들은 거의 대부분 조상의 포도밭과 포도원을 물려받아 운영되며 대물림을 하는데 반해서, 역사가 짧은 미국의 와이너리 주인들은 지질학자, 변호사, 건설업체 사장, 영화감독, 카지노 사장부터 은퇴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 배경이 다양하다. 물론 미국에서도 부모에게 와이너리를 물려받아 계속 경영하고 규모를 늘려가는 곳도 있고, 큰 와이너리의 와인 메이커로 일하다가 돈을 모아 땅을 산 뒤 포도를 심고 포도주를 생산하는 사람들도 흔히 찾을 수 있으며, 네슬레(Nestle)와 같은 기업에서 와이너리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캘리포니아 와이너리 주인들을 앞으로 3회에 걸쳐 소개하려고 한다.
몬다비 로버트 몬다비
43년 구입, 나파서 가장 큰 규모 자랑
부친이어 형제가 운영하다 독립 성장시켜
나파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몬다비(Mondavi) 와이너리의 로버트 몬다비는 그의 아버지가 1943년 구입한 찰스 크룩(Charles Krug) 와이너리에서 동생 피터와 함께 와인을 만들고 판매하는 법을 익혔다.
주로 로버트가 판매와 경영을 맡고 피터가 와인 제조를 맡았는데 얼마후 와인의 질을 높여 고급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로버트와 값싼 와인을 대량생산하는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피터는 갈라서게 되었다. 1966년 로버트는 찰스 크룩을 나와서 시애틀 레이니어 주조회사의 투자를 받아 나파밸리 최고의 포도밭이라 일컬어지는 토캘론(To-Kalon) 포도밭을 500에이커 구입하고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를 새로 열었다.
1970년대까지 계속된 법정 분쟁은 로버트의 승리로 끝났고, 이로 인해 찰스 크룩에서 받은 수백만달러 중 500만달러를 레이니에사에 지불함으로써 로버트는 온전한 와이너리 주인이 되었다.
로버트는 1991년에 정식으로 은퇴하였고 1993년 와이너리는 주식회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70%가 넘는 주식을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로버트의 아들 마이클이 경영을 담당하고 팀이 와인 제조를 책임지고 있다.
로버트 몬다비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 까닭은 그가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미국 등 여러 지역의 오크통을 들여와 와인을 숙성시키며 맛을 비교하는 등 각 부문에서 연구와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 결과를 다른 모든 캘리포니아주 와이너리들에게 알리며 공유한 결과 캘리포니아 와인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니바움 코폴라 프랜시스 코폴라
이탈리아 이민자로 영화‘대부’감독
와인 마시기 생활화 아예 포도밭 사들여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와 같은 28번 하이웨이 선상에 위치한 니바움-코폴라(Niebaum-Coppola) 와이너리의 주인은 영화 ‘대부’로 유명한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로서 와인을 마시는 것이 생활화된 코폴라는 부인 엘리노어와 함께 머리를 식히며 작품구상도 하고, 집필도 하고, 와인도 조금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땅과 집을 마련하기 위해 1975년 핀란드 이민자인 구스타브 니바움 소유의 잉글눅 포도밭과 저택을 사들였다. 코폴라는 와이너리의 1층은 테이스팅룸으로, 2층은 그의 영화에 사용되었던 소품들의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영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성공에 따라 95년 70에이커의 포도밭을 추가구입한 니바움-코폴라는 현재 195에이커의 포도밭을 소유한 와이너리로 성장하였다.
클로 페가스 얀 쉬렘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시작 거부로
독특한 와이너리 건물 건축 유명
나파밸리 북쪽 칼리스토가에 위치한 클로 페가스(Clos Pegase) 와이너리를 방문한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복숭아색과 황토색의 독특한 스타일의 거대한 건물 앞에서 감탄하는 사람들과 주변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튀는 건물에 대해 질타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다.
심한 경우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 같다고 혹평하는 이도 있다.
클로 페가스의 주인은 얀 쉬렘(Jan Shrem)으로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자랐으며, 미국에 건너와 백과사전을 팔다가 출판사 사장이 되었고, 일본에 영문으로 된 기술 전문서적을 판매하면서 거부가 되었다. 일본 여성과 결혼하여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미술품을 모으는 한편 보르도에 와이너리 자리를 물색하던 중 주변의 권유에 의해 나파로 건너와 와이너리를 열게된 것이다.
유명한 그의 와이너리 건물은 그가 전국적인 건축설계대회를 열고 참가한 96개 설계도 중 프린스턴의 건축가 마이클 그레브스를 선택하여 건축하게 한 것이다.
그의 와이너리에는 안팎으로 그가 소유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클로 페가스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카버네 소비뇽은 그의 아내 이름을 딴 미쯔코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진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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