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교실’여는 도예가 김영신씨
흙은 생명의 뿌리, 창조는 삶의 작업
결과에 자긍심 느껴 스트레스 말끔히
“흙은 우리 생명의 뿌리입니다. 흙으로 빚어지는 창조적 세계에서 자신의 호흡이 깃든 생명력을 느낄 때 깊은 정서적 뿌리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그 창조의 결과를 친지들과 나눌 때 더 없이 자랑스러운 자긍심을 느낄 것입니다. 도자기를 빚으며 외로운 이민생활의 스트레스를 털어 내고 잃었던 자신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도예가 김영신(54)씨가 삶에 지친 무리들을 흙과 물과 불과 공기의 조화 속에 병든 마음을 치유하는 도자기 교실로 초대한다. 한미문화교육원(원장 이계조) 후원으로 8월말부터 세 달간 진행되는 도자기 교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단순히 도예의 기술을 알릴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을 도예의 세계로 이끌어 평안을 느끼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심신 테라피가 될 예정이어서 관심거리다.
“흙, 물, 불, 공기,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이 네 가지 요소를 적절히 사용할 때 도자기가 완성됩니다. 그래서 삶과 더 가까운 작업을 할 수 있고 따라서 그 작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도 생기게 되지요”
이번 도자기 교실은 김영신씨 자신이 겪은 우울증 극복의 체험을 토대로 진행되므로 다른 도예교실과 색다른 경험을 하게될 전망이다.
참가자들이 작업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초목이 아름답고 조용한 교육원 뒤뜰에 공원용 벤치와 차를 준비해 본인들이 만든 찻잔에 차도 나누며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이끌 계획이다. 또 교육원 주차장 공간을 개조한 작업실에는 가마를 들여 직접 작품을 구워내는 경험도 하게 된다.
“이민 생활에서 받은 갖가지 스트레스를 자유롭게 서로 나누면서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준비했습니다. 제가 어려웠을 때 도예를 접하면서 체험했던 것처럼…”.
20여 년 전 유학생 남편과 생후 9개월 된 첫 아이를 데리고 도미한 김씨는 낯선 땅에서 아내로서, 또 엄마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난감함과 외로움 속에서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됐다.
“한국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 모든 노력들이 여기선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럽게 30여 년 동안 나를 키워온 문화를 더 이상 누릴 수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공백이 나의 정체성을 뒤흔들며 좌절과 침체에 빠뜨린 거지요.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부터 심한 우울증이 몰려왔습니다”.
학창시절 미술에 특별한 관심과 재능을 보였던 김씨는 대학 때까지 미술부 활동을 활발히 하다가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도미 후 유학생인 남편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고 또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뭔가를 찾기 위해서 직장을 얻어 보려 나섰을 땐 정작 그 어떤 것도 속 시원한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고 털어놓았다.
“도자기를 택한 데는 미술에 죽 관심을 갖고 공부했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민 온지 3년이 지나자 남편은 학위를 받고 아이는 프리 스쿨에 다닐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우울증에 시달리던 저는 뭔가를 하지 않고서는 배겨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서 전공한 문학이나 역사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것보다 일단 발을 땅에 디딜 수 있는 뭔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택한 도예공부를 위해 남들보다 늦은 나이로 사이프레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시작해 칼스테이트 풀러튼 학부와 석사과정까지 오랜 시간 도자기를 빚는 데 할애하면서 창작활동을 통한 성취감을 느꼈다. 또 작업에 몰입하는 가운데 정서적 혼란이 정리되는 체험으로 차차 잃어버렸던 자신도 찾아가게 됐다.
“소박하면서 강인하고 변함이 없는 흙을 만지는 작업을 통해 수 백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물레를 돌리며 느꼈던 평온함을 맛보았고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태도를 마음과 손끝에 담으면서 내 몸 속에 흐르고 있는 정서와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의 정서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나의 정체성이 이루어져 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상실감으로 인했던 우울증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의 세계가 재 구축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죠”
그후 김씨는 ‘LA한국문화원 초청 전시회’(1991, 1996, 2003), ‘코리아 엑스포 99’(LA Convention Center, 1991), ‘LA 브루어리 아트웍 가을 2002’,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2003’ 등 졸업 이듬해인 1991년부터 20회 가까이 굵직굵직한 그룹 및 개인 전시회를 통해 역량 있는 작가로 자리를 굳혀왔다.
김씨는 그림이나 서예도 마음을 다스리는 데 좋지만 붓이라는 매체를 통해야 하는 데 비해 도자기는 손으로 직접 흙을 만짐으로써 한결 더 친밀감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김씨에 따르면 도예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흔히 도자기를 빚는다 할 때 떠올리는 물레작업이다. 두 번째는 기계나 틀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판으로 흙을 밀어서 빚는 판상법(slab)이나 흙으로 코일을 만들어 감아 올리는, 보다 자연적이면서 자기표현에 자유로운 방법이 있다. 이번 도자기 교실에서는 후자의 방법, 즉 판상법이나 코일법을 택할 것이란다.
“물레를 사용하면 작품은 매끈해지지만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는 데는 그만큼 한계가 있어요. 처음 도자기를 배울 때 물레작업부터 했던 사람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는 물레를 벗어나고자 애를 써도 잘 안 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자기표현에 더욱 충실하고 싶어도 일단 길이 들면 쉽게 극복되지 않고 자꾸 틀에 갇히기 때문이지요”
불의 우연성에 작품의 절반 이상을 맡기는 동양의 도자관과 달리 시작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에 거쳐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는 도전의식을 배우는 가운데 자기의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의 주최기관으로 OC지역에서 30여 년간 2세 교육과 이민가정을 위한 다양한 가정사역 상담프로그램 ‘새얼 케어 센터’를 운영해 온 한미문화교육원 이계조 원장은 “이번 행사도 새얼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이름을 ‘새얼 도자기 교실’로 붙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삶의 활력을 얻기 원하고,특별히 신체가 불편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장학금도 지급할 예정입니다”라고 전했다.
새얼 도자기교실은 두 강좌로 나뉘어 서로 다른 시간에 각각 12주간 실시된다. 도자기교실 A는 2003년 8월30일∼11월15일 매주 토요일 오전 9시30분∼12시, 도자기교실 B는 2003년 9월2일∼11월18일 매주 화요일 오전 9시30분∼12시.
장소는 한미문화교육원 작업실(9750 Katella Ave. Anaheim, CA 92804)이며 참가비는 3개월에 250달러, 흙은 각자 구입해야 한다.
또 8월9일 토요일 12∼4시에는 새얼 도자기교실 오픈하우스 및 김영신 작품전시회가 한미문화교육원 정원에서 열리며 이날 신청서 접수도 받는다.
문의(714)772-3036
<글·사진 김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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