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내용은 만남이다. 만남으로 삶이 시작되고, 만남으로 삶의 질과 방향이 달라지며, 만남에 대한 기대로 삶은 이어진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종종 운명을 결정한다.
멋진 만남, 혹은 어떤 운명적 만남에 대한 기대가 한껏 고조되는 휴가철, 한국의 한 인터넷사가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 “휴가지에서 어떤 남자와 인연이 맺어졌으면 하는가?”
8,500여명이 참가한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남성은 ‘돈 많은 남자’(39.6%), ‘유머 있는 남자’(22.8%), 그리고 ‘잘 생긴 남자’‘잘 노는 남자’‘몸매 좋은 남자’의 순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응답인데 가장 의외인 것은 ‘유머 있는 남자’의 인기이다.
40대 이상 중년층 여성들에게 남성의 ‘유머’는 낯선 조항이다. 과거 남성에게 기대되는 덕목은 과묵, 진중 따위였지 말 많고 남들 잘 웃기는 남성은 ‘너무 가볍다’며 대접을 받지 못했다. 삶의 조건들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심각한 타입이 믿음직스러워 보였지만 이제 물질적으로 풍요해지자 재미있는 타입이 여성들에게 호감을 주는 모양이다.
남성의 유머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는 결혼해서 10년, 20년 살아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부부가 재미로 산다면 보통 몇 년을 같이 살수 있을까. 부부 맞벌이로 빡빡한 일과, 늘 모자라는 구멍난 재정,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자녀 양육, 거기에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배우자에 대한 실망, 권태, 불만 … 삶은 ‘시지프스의 바윗덩어리’일 뿐이다.
유머는 삶이라는 ‘바위’의 무게를 가볍게 덜어주는 힘이 있다. 주위를 보면 남편이 성격이 밝고 유머가 넘치면 여성의 삶은 훨씬 즐겁다. 아무리 속상한 상황이라도 재치 있는 농담으로 한바탕 웃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여서 천근같이 무거운 사안도 웃음에 실어 버리면 붕 떠오르듯 가볍게 느껴지는 법이다. 웃음의 부력이다.
‘유머 있는 사람’은 젊은 여성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며칠 전 우리 신문에는 한 장학생 선발 광고가 실렸다. 삶에 대한 목적의식이 뚜렷한, 가정형편 어려운 학생들을 뽑는다는 장학생 선발 자격 요건 중 하나로 유머가 포함되었다. ‘항상 명랑하고 쾌활하며 유머가 많고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고 개인적으로 장학사업을 해온 H씨는 말했다.
“한국에서 젊은 시절을 우울하고 어둡게 보냈습니다. 미국에 와보니 사람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통령을 보나, TV 앵커를 보나 유머가 넘치지 않습니까?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고 즐겁게 사는 것, 그게 힘이라고 생각해요”
유머는 섬광 같은 기지로 일종의 자극을 줌으로써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그는 말했다.
“상황반전이지요. (유머는)고정관념을 버리고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수 있게 해줍니다”
유머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한바탕의 웃음이다. 웃음이 면역시스템을 강화하고, 혈압을 낮추며,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심장을 튼튼하게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등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나와 있다.
웃음의 효능이 강조되자 몇해 전부터 웃음운동이라는 것도 생겼다. 공원이나 아파트 같은 데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로 체조하듯 깔깔, 낄낄, 하하… 웃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유도 없이 그냥 웃으려면 처음에는 바보 같고 쑥스럽지만 지도강사를 따라 웃다보면 웃음의 리듬에 이끌려 계속 웃게 된다고 한다.
웃음운동의 창시자는 인도 봄베이의 의사인 마단 카타리아.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주의깊게 관찰한 결과, 한바탕 웃고 나면 환자들의 면역시스템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가 웃음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모여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는데 얼마 지나자 유머 거리가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그가 도입한 것이 요가의 웃음 테크닉이었다. 1995년 시작된 웃음 모임은 인도는 물론, 미국, 유럽, 호주, 극동 아시아등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심각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유머를 가지고 웃으며 사는 여유가 필요하다.‘마음의 조깅’이라는 웃음, 운동복 차려 입을 필요도 없는 이 편리한 운동을 한인들이 많이 했으면 한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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