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는 손만으로 빚을 수가 없다. 마음이 같이 빚어야 한다. 마음을 쏟아 붓기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을 줄 때와 거둬들일 때가 분명하게 구분된다.
촉촉한 점토를 치대서 물레에 올려놓고 모양을 빚는 과정에서는 마음이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도토가 말랑말랑해서 조금만 부주의해도 모양이 일그러지고 만다.
도자기형태가 완성되고 나면 건조실에서 건조의 과정을 거친다. 더 이상 점토 덩어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도자기도 아닌 중간 과정이다.
도자기가 완전히 건조되고 나면 이때부터 도공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 가마에 넣고 도자기를 굽는 과정은 점토와 열과 산소의 소관일 뿐 도공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인데 결과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특별히 기대를 걸었던 도자기가 열을 못 견뎌 갈라져 버리기도 하고 대수럽지 않게 여겼던 그릇이 의외로 훌륭한 작품이 되어 나오기도 한다.
점토가 말랑말랑해서 도자기의 모양을 빚는 시기를 유년기, 모양을 갖추고 서서히 단단해지는 과정을 청소년기, 가마에 들어가는 때를 성년기로 본다면 도예와 자녀양육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 중학교 학생이 유치원생 살해 용의자로 드러나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지난 1일 나가사키에서는 발가벗긴 4살 짜리 남아가 주차장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 용의자로 12살의 남학생이 검거되었다.
살인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도 나이이지만, 아이가 학교 성적 우수하고 독서를 즐기던 평범한 학생이라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의 요인이 되고 있다. 평소 말썽 없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살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그 부모가 받을 충격은 얼마나 심할까.
전문가들은 이 아이가 맞벌이 부부의 외동아들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지내는 데 이골이 났을 아이는 평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밤늦게까지 오락실에서 게임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어른 없는 집, 혼자 있는 아이들, TV나 컴퓨터 게임 -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그래서 항상 마음에 걸리는 광경이다. 방학이 되면서 맞벌이 부부들은 더 속이 탄다. 우리 신문사에서도 10대 자녀 키우는 엄마들을 만나면 대개 같은 이야기이다.
“퇴근해서 집에 가보면 매일 자리가 정해져 있어요. 딸은 TV 앞, 아들은 컴퓨터 앞. 아마하루 종일 그러고 있을 거예요. 방학이라고 (아이들을)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닐 형편도 못되니 (TV 너무 본다고, 게임 너무 한다고) 야단만 칠 수도 없고 … 참 답답해요”
TV에는 폭력과 섹스가 넘치고, 게임은 머리가 잘려 나가고 피가 뚝뚝 떨어지게 잔인하니 부모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라면 먹고사는 한이 있어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게 낫지 않을까”라며 일에 회의를 가져보지 않은 주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은 이렇게 힘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일까? 탐욕과 야망의 끝은 어디일까?”- 18세기 사람 애담 스미스가 한 말이다. 그가 21세기 우리의 삶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탐욕과 야망 때문이라면 억울할 것도 없겠지만 단지 남들 사는 정도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부부들은 맞벌이가 불가피하다. 프리웨이가 막히면 아무도 혼자 빠져나갈 수 없듯이 사회전체가 탐욕과 야망으로 들어차서 혼자 초연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주부가 하던 일을 돈을 줘서 남에게 맡기고 그 시간에 돈을 벌면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것이 부부 맞벌이의 기본 산수이다. 주부들은 더 이상 바느질을 하지 않고, 된장·고추장을 담그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될 것은 없다. 문제는 내 눈 밖에서 자라는 자녀들이다.
도자기를 빚어 건조실에 넣고 나면 도공은 일단 숨을 돌린다. 가만 내버려두면 마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로 사고가 발생한다. 누군가 잘못 건드려서 모양이 찌그러지는 경우들이 있다. 바로 잡을 시기를 놓치면 그대로 굳어져서 흉하게 일그러진 도자기가 되고 만다.
10대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따금 “저 아이가 내 아이 맞나?”싶게 아이가 낯설 때가 있다. 대개는 호르몬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성장의 과정이지만 아이의 내면이 엉뚱하게 변해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아이들이 차분히 자라기에는 TV며, 컴퓨터며 세상의 메시지들이 너무 자극적이다. 그 메시지들의 맞은 편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부모에게 무슨 휴가가 있을까. 도자기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도공은 긴장을 풀수가 없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