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아버지 학교’ 사무국장 정운섭 변호사
아내·두자녀 유학보내고 혼자 서울생활
가족과 함께 살고파 본국 사업정리, 합류
모든계획, 아이들에 맞춰
아내 박사 논문 전념하게 가사돕기 적극
학교 일하며 권위적 깐깐한 성격도 변화
요즘 여기 저기서 좋은 아버지가 되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좋은 아버지란 어떤 아버지일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잘 나가던 변호사 일도 그만두고 가정과 자녀와 아버지학교 일에 전심전력하고 있는 정운섭씨(46)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라고 말한다. 아버지날을 한 주 앞두고, ‘좋은 아버지’의 모범이라고 모두들 추천하는 두란노 미주 아버지학교 정운섭 사무국장을 만나 오늘도 계속되는 그의 ‘좋은 아버지를 향한 몸부림’에 대해 들어봤다.
운섭씨는 지난 2001년 한국서 성업중이던 법률사무소를 동료 변호사들에게 맡겨둔 채 LA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기러기아빠 생활을 청산했다.
1999년부터 USC에서 노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내 전미애(37)씨와 행콕팍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 일영(11)·서영(8)의 곁에서 ‘함께 뒹구는 좋은 가장 노릇’을 하고자 한 것이 그 가장 큰 이유요, 때마침 미주지역에 일기 시작한 아버지 회복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코자 한 것이 이와 맞물린 두 번째 이유였다.
“좋은 아버지란 사회적으로 성공해 돈 많이 벌어오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자연히 일에만 몰두하는 권위적인 가장이었지요. 제 생각 속의 ‘좋은 아버지 상’이 정작 아이들의 바램과는 확연히 달랐던 겁니다.”
정씨는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서 “자라날 때 다정다감한 좋은 아버지의 역할 모델을 보지 못한 환경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파구를 찾는 마음으로 1998년 서울 두란노 아버지학교에 참석한 정씨는 “결혼해 자녀를 낳기만 하면 자동으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 동안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자신을 비로소 깨달았지만 실질적인 방법을 터득치 못해 더욱 더 일에만 정진했다”고 회상했다.
제27회 사법고시 합격 후 조지타운 법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정씨는 귀국 후 불면증과 위염에 시달리는 일 중독자였다. 대학 출강과 대한민국 법무부 중소수출·벤처기업 법률지원 자문변호사, 한국 산업인력공단 법률자문 변호사 등 굵직한 자리들을 맡으며 출세 일로를 걸었다.
“이 모든 것이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는데 아내도, 아이들도 별로 행복해하지 않는 눈치이더군요. 답답할 뿐이었죠.”
그러던 1998년 느닷없이 던져진 질문 앞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USC로부터 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받은 아내가 유학 결정은 온전히 남편의 몫이라며 결정권을 정씨에게 넘긴 것.
“몇 날 몇 일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한 끝에 꾀를 냈습니다. 일단 허락을 하되, 여자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외국서 박사공부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테니 스스로 포기해 돌아오고 나면 ‘남편 잘못 만나 능력 썩혔다’는 평생의 원망을 들을 일도 없고 다신 유학 가겠다고 안 할 테니 떨어져 살 걱정 없어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죠.”
스스로의 명 판단에 흡족해 하며 1999년 여름 아내와 아이들을 LA로 보냈지만 한 학기가 지났는데도 아무 탈 없이 꿋꿋하게, 아니, 오히려 성공적으로 공부하는 아내의 모습과 멀리서 아버지를 너무도 그리워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정씨는 점점 갈등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들·딸아이의 나이는 7세와 4세.
“휴가 때 LA에 와서 가족을 만나면 특히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특히 ‘아빠, 언제 가냐’며 만나자마자 헤어질 생각으로 슬퍼하던 아들녀석의 눈망울을 보면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우리 가족의 라이프 사이클에서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될 지도 모를 이 시간들을 함께 지내는 것보다 더 좋은 아버지 노릇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더군요” LA행을 결심한 결정적인 동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40대 중년의 가장에게 그간 일궈온 자리를 몇년 동안 공백으로 남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기에 보따리 싸고 풀기를 수십 차례 반복했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상거래법 전문 변호사인 만큼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LA에서의 새 출발을 계획하는 거라면 오히려 불안이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창 활발히 돌아가던 업무를 중단했다가 몇 년 후 다시 돌아와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런 정씨가 고민과 불안을 떨치고 ‘오직 좋은 아버지와 남편이 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겠다’는 초발심을 다잡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LA에 도착해 짐을 푼 지 5일만에 전대미문의 9.11 사건이 터진 것.
“아내와 아이들 곁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전해지더군요. 이 시기에 함께 지내는 대신 얻어지는 그 어떤 성취가 과연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모든 계획을 아이들의 시간에 맞추리라 다시 한번 결심했습니다.”
정씨는 이제 코스웍을 끝마친 아내가 논문작성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 주중 아침엔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내 놓고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며, 청소며, 빌 정리며 갖가지 집안 일을 해 놓는다.
오후 두 세시 아이들의 하교시간까지는 윌셔에 있는 두란노서원 아버지학교 사무실에 나가 캐나다를 포함해 18개나 되는 미주 아버지학교 전체 사무국장으로서 지역개설 지원 및 네트워킹, 대표자 회의(vision sharing)를 주재하고 주말엔 아버지 학교 진행을 맡아 섬기는 등 ‘일 중독’의 전력을 십분 발휘해 아버지학교 일들도 척척 해결한다.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춰 픽업해 오면 그때부터 숙제며, 운동, 씻는 것 감독이며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정씨의 몫이다. 이쯤 되면 설거지와 청소를 얼마나 깨끗하게 하느냐 등의 가사노동의 질은 별로 관건이 안 된다. 부인들은 남편이 가사노동에 참여한다는 그 자체에 큰 의의를 두며, 또 무엇보다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감동의 물결을 한바탕 전하게 마련인 것.
“제가 아버지 학교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에요. 결혼 초기엔 상당히 권위적이고 깐깐한 남편이었는데 아버지 학교를 다녀온 후부터, 또 진행자로 아버지학교를 섬기면서 남편이 차츰차츰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성격상 세세하게 아이들을 돌보거나 집안 일이 좋아서 하는 타입은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 면에선 지금도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니 더욱 고맙죠.” 흉을 보는 것인지 칭찬을 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아내 전씨의 평을 듣고 있는 정씨의 표정이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LA에 온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곧 2년째가 됩니다. 함께 지내고 싶어도 아이들이 바빠져 그렇게 하지 못할 날이 금새 오게 될 겁니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며 함께 지낸 이 시간도, 아버지 학교의 일도 참으로 보람됩니다. 감사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회복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가지만 좋은 아버지 노릇하기란 점점 힘든 세상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고민하면서 때로는 가족과 일을 놓고 시간 사용의 우선 순위를 담대히 결정할 수 있는 제 2의, 제 3의 정운섭 변호사가 나온다면 앞으로 맞을 아버지날들이 더 기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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