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소품전-강습회
바늘 잡는 법 알면 마음 가는대로 시작
다양한 바느질 기법·솜씨 익힐 교재로
함보자기·바늘꽂이등 실생활에 응용
내달 6일까지 규방 소품전 통해 전시
옷 짓고 남은 천, 밑이 닳아버린 버선의 목, 빛 바랜 베갯잇… 온갖 쓰고 남은 천을 조각조각 이어만든 보자기라 해서 ‘쪽보’라고도 불리는 조각보는 ‘작품으로 승화한 폐품’이라 할만큼 예술적 가치가 크다. 조각보엔 허튼 천 조각 하나 함부로 버리지 못했던 조상들의 절약 정신도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 손 간 것에 귀한 마음을 담아 두었던 옛 여인들의 따스한 정감이 묻어있어 그 매력이 더하다. 예단과 함 같은 귀한 선물의 포장으로 쓰여 ‘정성들인 물건이라야 제 몫을 한다’는 교훈을 배우게도 하는 조각보 만들기. 지난 20∼24일 갤러리 닷 스리(Gallery.3)에서는 한국서 매주 모임을 주도해 주변에 전통 규방문화를 보급하고 있다는 주부 6인의 규방소품전과 함께 ‘조각보·바늘꽂이 만들기’ 강습회가 열렸다. 손과 눈은 연신 붙잡은 천과 바늘을 좇으면서도 입으론 쉴새없이 조곤조곤 속삭이다, 까르르 웃음이 쏟아지곤 하던 갤러리 풍경이 마치 옛 여인들의 규방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를 전해줬다. 이번 전시에 수작 명주이불, 조각보, 바늘꽂이, 모시가리개, 무릎덮개 등을 출품한 권귀원씨와 김문자씨가 전시 현장에서 직접 진행한 규방소품짓기 강습을 지켜봤다.
“바늘땀이 고우면 고운대로, 성기면 성긴 대로 다 나름의 멋이 있어요. 한 땀 한 땀이 끝까지 일관되기만 하면 됩니다” 참가자들의 바늘땀을 일일이 봐주며 건네는 권귀원 씨의 조언. 가르치고 배우는 소리도 참 잔잔하고 편안하다.
벽에 걸린 조각보 작품들을 보니 반듯한 정다각형들 사이로 대각선을 댄 것과 사다리꼴로 삐딱히 박힌 조각도 눈에 띈다.
물론 요즘 작품에야 파격미를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을 테지만 옷감 만들기에 한없는 공을 들여야 했기에 비뚤어진 자투리 천 하나라도 홀대하지 않으려 했던 옛 어른들의 깊은 마음 씀씀이가 드러난 그 어수룩한 모양새가 오히려 아름답고 정겹다.
“조각보는 밑그림 없이 시작합니다. 어차피 하면서 달라지게 마련이고 그때그때 마음가는 대로 지어야 더 멋스럽게 되거든요” 이번엔 김문자 씨의 설명.
함 보자기인지, 무릎덮개인지, 아니면 큼지막한 베드 스프레드인지 크기를 정하고 명주, 모시, 옥사, 잠이사 등 재료는 미리 고르되 색상이나 디자인은 ‘흘러가는 대로’ 하라는 가르침이다.
옛 조각보가 아름다운 것은 이처럼 자연발생적이기 때문이며 재료가 풍부함에도 현대 조각보가 옛 조각보의 감동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인위적이기 때문이라는 것.
버려질 운명의 가지각색 보잘 것 없는 조각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할 줄 알았던 옛 여인들의 능숙한 솜씨는 조각보를 예술적 평가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던 것이다.
“사실 조각보를 만드는 데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치 않아요. 홈질, 감침질, 상침 같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바느질을 정성 들여 하는 것이 전부죠” 권씨는 작품을 보고 지레 겁먹은 참석자들을 이렇게 위로하고 “안과 겉의 구분이 없는 조각보의 특징도 다른 특별한 기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과 천이 겹쳐지는 부분의 넓이와 바늘땀의 크기를 한결같이 조절하는 것에 달린 것”이라며 편안하게 첫발 떼는 법을 알려줬다.
하긴 옛날 어린 딸들이 바느질을 배울 때 제일 처음 접한 것이 조각보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권씨의 설명을 뒷받침해 준다.
어머니가 실과 바늘 잡는 법만 알려주고 자투리 천을 맡기면 맨 먼저 천과 천을 평면으로 잇기 위해 시침질을 하고, 비교적 쉬운 홈질에서 시작해 접어서 감치는 감칠질을 한 다음, 마지막에 상침으로 마무리하면서 보자기를 완성해 간다.
이렇듯 이 조각보 안에는 모든 바느질 기법과 솜씨가 그대로 들어 있는 좋은 연습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이렇게 연마한 기법을 살려 옛 여인들은 딸을 낳으면 그때부터 그 아이가 자라 시집갈 때까지 쓰일 조각보를 만들기 시작, 15∼16세 처녀가 되면 혼수로 제일 먼저 쌓이는 것이 조각보였단다.
실제로 김문자 씨는 두 아들 장가보낼 때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 함보자기를 손수 만들어 보낸 장본인.
하나는 121개의 고운 명주 조각을 이어 붙인 명주 함보자기, 또 하나는 천연 염료로 물들여 고상한 빛이 감도는 시원한 옥사 함 보자기다.
계절에 맞게 재료를 골라 각각 두 달 이상씩 걸려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메이드 바이 시어머니 함보자기’니 이보다 귀한 선물이 있을까.
이 작품도 며느리들에게 잠시 빌려와 현재 규방소품전에 걸려 있다.
조각보 만들기에서 기초를 어느 정도 익힌 참가자들은 기름 바른 듯 반들거리는 색색의 명주 천과 명주실을 골라 바늘꽂이 만들기를 배웠다. 솜을 꽉꽉 넣어 몽실몽실 귀여운 바늘꽂이는 조각보와 달리 정사각형 천 5개와 직사각형 천 5개로 조각수가 한정돼 있어 완성속도가 빠른 편이라 선물하기에 안성맞춤. 하지만 권씨는 “초보자는 하루에 하나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숙지해 서둘지 말아야 한다”고 전하고 “바늘을 고를 땐 귀가 날씬한 것을 택할 것과 특히 명주는 올이 고와 거칠어진 손으로 만지면 긁히기 쉬우므로 작업 전 손에 반드시 핸드 크림을 발라줄 것”을 권했다.
“미국서 자라는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한국의 규방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갤러리 대표 손 청 씨의 바램이다. 손 씨는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여섯 명의 주부가 작품 이전에 자제들의 혼수로 쓰려고 만든 것들이라 더욱 정성이 담겨 있다”고 말하고 “2년 반을 준비해 연 전시 및 강습회인데 반응이 너무 좋아 앞으로 매년 주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권귀원, 김문자, 최월규, 이정은, 조영해, 권오순 등 한국의 주부 작가 6명이 출품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명주, 삼베, 무명, 모시 등 전통 소재에 천연염료로 염색하고 수놓은 수작 조각보, 이불, 바늘꽂이, 함보자기, 손가방과 전통 소재로 한국화한 테이블러너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전시장에선 손수 전문가 이순경씨의 골무, 실패, 브로우치, 패물함, 손거울에 놓인 손 수와 신사임당의 초춘도를 수로 놓은 소형 병풍도 선보이고 있다.
한국 옛 여인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이번 ‘규방 소품전’은 다음달 6일까지 갤러리 닷스리(11421 E. Carson St., #J Lakewood, CA 90715)에서 열린다. 문의 (562)653-1166, www.vwinstitute.com
<글 김상경 기자·사진 이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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