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이슥하면 내 방으로 와서 살짝 문을 닫고 가요. ‘엄마 주무시는데 방해가 되면 어쩌나’하는 배려는 아니에요. 내가 문 열고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벌려는 것이지요”
“주말이면 눈뜨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고 가서 앉아요. 내버려두면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종일이라도 그대로 있을 거예요”
사내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대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공부하는 척 하면서 컴퓨터 게임 하느라 엄마의 거동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아이, 숙제 30분 하면 게임은 3시간을 하는 아이, 어떤 날은 아예 책가방을 신발장 옆에 던져두고 게임만 하다가 다음날 그 책가방 그대로 들고 등교하는 아이… “남의 일이 아니다” 싶은 부모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자녀 나이가 비슷한 부모들끼리는 한마디 운만 떼면 내 일처럼 훤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공통의 경험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춘기 자녀 키울 때의 불안함과 속 끓임.
그리고 요즘 가장 보편적인 것은 컴퓨터·비디오게임을 둘러싼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이다. 주로 사내아이들이 해당되는데, 게임기 앞에 딱 달라붙어서 옆에서 불러도 모르는 ‘몰입’의 경지를 하루에도 몇번씩 목격하다보면 “열 받는 건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고 엄마들은 푸념을 한다.
아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전쟁하랴, 부모와 신경전 벌이랴 이중의 전쟁을 하는 셈이다.
부모들 눈에 백해무익한 그 전자게임이 “유익한 면도 있다”는 보고가 29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의 로체스터 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실험결과에 따르면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는 액션 비디오게임은 시각적 인지능력을 높인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등 아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을 옆에서 지켜보면 사실 장난이 아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긴박한 상황에서 적들의 동정을 살피며 허점을 찾아 공격하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새로운 적의 기습을 피하면서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웬만한 집중력과 판단력, 순간적 마우스 작동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두뇌 회전을 빠르게 한다.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가 아이들이 말하는 ‘게임을 하는 이유’이다.
아이들 주장처럼 전반적 두뇌기능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시각 정보를 파악하는 기술은 좋아진다는 것이 이번 연구결과이다. 미 육군은 그런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컴퓨터 게임을 병사들 훈련에 도입하고 있다. 전투상황을 실감나게 체험하면서 전쟁수행 능력을 훈련받을 수 있는 도구로 컴퓨터 게임만큼 편리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의 ‘게임’은 중년층 부모세대 자랄 때의 만화책이나 TV쯤 된다고 봐야 할까. 부모는 못하게 말리고, 자녀는 어떻게든 하려 드는 것들이 세대마다 다 있어왔다. 게임에 너무 빠져 초래될 학업 부진, 게임 속의 폭력과 욕설이 아이의 정서에 미칠 영향을 부모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는 해도 ‘게임’은 더 이상 게임, 즉 장난이 아니라 이 시대의 문 화라는 점을 부모들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지난 연말 달라스에서는 2,000여명이 출전한 대규모 대회가 열렸다. 사이버게임선수 프로연맹(CPL) 동계 대회였다. 컴퓨터 게임의 귀재들이 25개국에서 모여든 이 대회에는 상금만 14만 달러가 걸려 있었다.
“야구 방망이나 하키 스틱을 써야 스포츠인가.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이 다를 뿐인 컴퓨터 게임도 정식 스포츠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CPL 측은 주장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 급속히 확장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을 본다면 정통 스포츠가 밀려나고 컴퓨터·비디오게임이 주류 스포츠가 되는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삶을 집짓기에 비유한다면 부모는 자녀가 기본 골조를 튼튼히 세우도록 돕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집을 통채로 지어줄 수는 없다. 기초를 튼튼히 쌓고 네 기둥을 반듯하게 세우도록 가르치는 일 - 삶의 원칙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이다. 벽돌집을 지을지, 나무 집을 지을지, 페인트는 무슨 색깔로 할지는 아이의 선택이다.
전자게임도 아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결정해야할 많은 선택중의 하나라고 본다. 학업등 다른 활동들과 게임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워나갈 것이다. 그들의 시행착오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부모 된 어려움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