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점심 값은 하루 1.50달러다. 급식을 제공하는 대부분의 공립학교들이 비슷할 것이다. 초등학교때는 80센트였는데 중학교에 올라오니 거의 두배가 되었다. 그래도 감지덕지 하는 것이 그거 안 사먹겠다고, 도시락 싸달라고 하면 그 노릇을 어쩌겠는가.
그래도 어떤 때는 엄마로서 좀 미안하기도 하여 “도시락 싸줄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가끔 해보지만 기특한 아들은 언제나 괜찮다고 한다. 학교 음식이 맛있어서 그러나보다 하고 내심 안도했는데 지나고 나서 하는 얘기가 초등학교 때 런치는 형편없었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짜식, 엄마 힘들까봐 그랬나? 싸달라고 얘기나 해볼 것이지...
점심값 1.50달러에, 용돈이라고 1.50달러를 더하여 하루에 3달러, 일주일이면 15달러를 주고 있다. 다른 엄마들이 얼마를 주는지 모르니 이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 생각으론 적은 것 같은데 크게 괘념치 않는 것은 아들아이는 돈 관념이 없고, 욕심도 별로 없어 아무 불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두살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어디서 돈이 생기면 그대로 엄마 아빠에게 맡기는 아이가 얘 말고 또 있나 모르겠다. 그런 행동이 어릴 때는 한없이 이뻤는데 이제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사내 녀석이 계산도 좀 빠르고 챙기기도 좀 해야할 것 아닌가.
내가 그 나이 때는 언니들하고 화투해서 딴 돈도 5원, 10원 악착같이 계산해서 받았고, 언니들이 돈을 꿔 가면 장부에 적어놓고 이자까지 챙겨가며 받았는데... 사실 형제 많은 집에서 자라는 것이 살벌하긴 해도 여러모로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수많은 ‘입’들과의 경쟁을 통해 어려서부터 생존과 상생의 원리를 터득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 일곱 형제가 아우성치는 우리 집은 음식다툼이 정말 대단했다. 식빵을 한 줄 사와도, 라면을 한 박스 들여와도, 사과 한 상자를 들여놔도 식구수대로 정확히 분배되지 않으면 싸움이 났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도 일단 배급량은 확보해 놓은 다음 기회를 보아 언니들과 물물교환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했다.
막내는 아무래도 제일 작아서 오빠, 언니들 사이에서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일이 많았나보다. 어린것이 식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어찌나 용을 썼던지, 동생은 지금껏 뭐든지 너무 빨리 먹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험악했건만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정겨운 추억들인가. 내가 우리 아들에게 가장 미안한 것이 동생 하나 더 낳아주지 못한 것이다.
학교 점심값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딴 데로 흘렀다. 얼마전에 아들이 잊어버리고 아침에 돈을 안 타갔던 적이 있었다. 나중에 생각이 나서는 “이를 어쩌나! 에고, 우리 아들 밥 굶었네” 하며 난리를 쳤는데 집에 와서 물어보니 런치를 먹었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지갑에 1달러가 남아있어서 친구한테 런치티켓을 샀어.” “그럼 걔는 50전 밑졌구나. 내일 갔다줘라.” “괜찮아, 걔는 티켓 잔뜩 갖고 다니면서 애들한테 1달러에 팔거든.” “뭐야? 부모가 알면 혼나겠네. 어쩔려구 그런대니.” “아니야, 걔네는 티켓을 60센트에 사기 때문에 오히려 돈 버는건데 뭐.” “???”
무슨 소린가 했더니, 저소득층을 위한 디스카운트 런치 티켓 이야기였다. 학기초마다 각 가정의 소득수준을 묻는 런치티켓 신청서가 나온다. 거기 보면 일반 티켓은 1.50달러, 저소득층은 60센트, 극빈자 가정은 무료로 티켓을 살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친구네는 저소득층으로 보고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사는 곳은 우리 아파트 옆에 새로 지은, 렌트비가 우리 집의 거의 두배쯤 되는 최고급 아파트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기분이 몹시 언짢아진 나는 아들에게 다시는 그런 티켓을 사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건가. 호화 아파트에 살면서 자기 아들이 먹는 점심값 1.50달러가 아까워서 거짓 보고를 하다니, 그러니 아들도 잔뜩 들고 나와 이익을 남기고 되파는 ‘상술’을 터득하는 것 아닌가. 과연 한국사람이다. 대물림할게 그것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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