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식 수술
“그래, 체중 좀 내렸어? 깎은 만큼 줄었을거 아냐”
“아무렴, 엄청 줄었지. 거길 그렇게 깎아냈는데”
무슨 엽기적인 이야기냐고? 지방제거수술? 아니면??? 하하, 그게 아니고 라식수술 이야기다. 우리 부서의 여기자 한명이 얼마전 라식수술을 받았는데 레이저로 각막 깎아낸 것을 두고 저렇게 지나친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다. 농담을 던진 남기자는 수술하지 말라고 뜯어말렸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묻는 애정표현을 좀 심하게 하고 있었다.
나도 2년전에 라식수술을 받았다. 그때도 우리 부서에 있던 남기자가 몇 달을 도시락 싸갖고 다니면서 말렸으나 그 역경을 헤치고 수술을 강행했던 나의 용기를 지금껏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위험도가 따르는 결정에서 남자들이 더 겁이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이 라식수술에 대해 걱정하는 이유는 수술부위가 눈동자이기 때문이다. 코나 입이라 해도 좀 다른데 눈동자는 왠지 겁나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다 스치기만 해도 펄쩍 뛸 정도로 예민한 부분인데 레이저로 깎아내다니, 잘 못하면 영영 시력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눈이 나빠보지 않은 사람은 눈동자라도 깎아내고 싶은 그 고충을 모른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안경을 썼으니 30년이상 안경과 더불어 살았다. 그중 24년은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면서 낮에는 렌즈를 끼고, 밤에 집에 있을 땐 안경을 썼는데 렌즈의 불편은 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그래도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고 참아왔지만 괴로운 것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눈물이 말라 렌즈 착용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고 안경을 쓰자니 그러잖아도 급격히 쇠퇴해가는 미모(^.^)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 같고... 바로 이런 이유들이 라식수술을 결심케했다.
그 때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타임지 기사를 보니 라식수술을 개발한 의사 자신은 수술을 받지 않고 있다는 등, 개발된지 10여년밖에 안되니 장기적인 효과는 모른다는등, 각막을 레이저로 깎아놓으면 그 부분이 얇아져 나중에 혈압이 오르면 터질거라는등 온갖 겁나는 이야기로 나의 결심을 무너뜨리려 안간힘들을 썼다.
심지어 수술도중 정전이 되면 어쩌겠느냐(당시는 가주에 전력부족 사태로 정전이 있었다)는 악의성 다분한 주의도 잊지 않았고 수술 당일날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나를 잘 봐두라”는 사람도 있었다. “돈도 없고 용기도 없어 수술 못 하겠다”는 한 동료에게 “그래, 난 가진거라곤 돈과 용기밖에 없다”는 비장한 각오까지 내보이며 수술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비장한 용기는 세가지 이유에서 기인했다. 하나는 수술받기 얼마전 라식수술에 관해 자세히 취재하며 여러 의사들을 인터뷰했는데 나름대로 수술이 상당히 안전하다는 판단이 섰다.
또 하나는 라식수술이 잘못된 케이스를 지적할 때 모두 같은 사람의 케이스만을 이야기한다는 점이었다.(전직 기자인 그는 라식수술을 잘 못 받아 시력이 오히려 나빠졌다) 지난 몇 년간 시행된 수많은 수술의 부작용으로 한인타운에서 모두들 똑같은 케이스만을 지적한다는 사실은 부작용이 거의 없음을 뜻한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나는 절대로 복권이나 경품에 당첨되지 않는 종류의 인간으로서 운수대통하는 일도 없지만 특별히 운나쁜 경우 역시 내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무대뽀 신념도 있었다.
마지막 이유는 만에 하나, 10년후 혹은 20년후에 라식수술 받은 이유로 눈에 이상이 생긴다면 그때는 분명히 그 문제를 치료할 방법도 개발되리란 믿음을 가졌다. 지금처럼 테크놀러지가 정신없이 발달하고 있는 세상이니 그렇지 않겠는가.
그 결과 나는 현재 ‘합이 4.0’의 완벽한 시력을 회복했다. 수술 이후 지금까지 맨눈으로 나보다 눈 좋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자랑도 잊지 말아야겠다.
라식수술하고 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벽에 걸린 시계가 보인다”는 말이다. 워낙 오랜 세월을 흐릿한 눈으로 살다보니 안경이나 렌즈없이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것 같다”느니, “완전히 딴 세상”이라느니, 하는 표현들을 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 눈 나쁜게 어떤 것이었는지 도통 기억도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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