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 한국판에는 ‘노무현의 사람들’이라는 시리즈가 한동안 연재되었다. 최근 40회로 끝난 ‘- 사람들’의 39회 주인공은 국민의 정부 당시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한 여성 비서관이었다.
40회나 계속된 연재물이 새삼 눈길을 끈 것은 남성들만 등장하던 그 지면에 여성의 얼굴이 보여 반갑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기사의 첫 마디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독한 사람.”으로 기사는 시작되었다. 지난해 추석날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자신의 부대변인이던 그 여성을 두고 한 말이다. 그날 노후보는 임진각 방문 일정이 잡혀있었는데 전국민이 쉬는 명절임에도 불구, 기어코 나와서 수행을 하는 그 여성의 열성에 혀를 내둘렀다는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이기도 한 그는 출장, 외박, 야근을 밥먹듯 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했다고 한다.
그 여성 비서관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그의 일하는 스타일은 낯설지가 않다. 아무리 많은 일이 맡겨져도 이의를 제기하는 법 없이 끙끙거리며 혼자 다해내는, ‘독한 사람’으로 특징지어지는 여성들을 주위에서 자주 본다.
직장에서 여성들의 일하는 패턴을 관찰해 보면 특별히 눈에 띄는 두 부류가 있다. ‘어리광형’과 ‘자기 희생형’이다.
전자는 자신의 무능이나 부족함을 어리광으로 때우려는 여성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도 가능하면 요리 조리 피하며 꾀를 부려서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형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인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자기도 모르게 같은 여성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
‘자기 희생형’은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일복이 많은 여성들. 일이 주어지는 대로 덥석 덥석 받아 안다보니 일에 파묻히다 못해 이틀이 멀다하고 일거리를 집에 싸들고 가는 유형이다. 가족들과의 저녁시간은 물론, 아차 하다 보면 휴가도 제때 못 찾아 먹으면서 사생활을 희생당한다. 거기에 집안 일까지 억척스럽게 열심히 하면 ‘수퍼 맘’이 되는 것이다.
여성들이 이렇게 일복을 자초하면서 ‘자기 희생형’이 되고 ‘수퍼 맘’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직의 한 후배는 여전히 성 차별적인 직장 풍토를 이유로 들었다.
“일이 많다고 하면 능력 부족으로 인식될까봐 겁이 나기 때문이지요. 직급이 위로 올라갈수록 분위기가 남성 중심적이에요. 여성들은 배로 노력하고 일해야 겨우 인정을 받는 것이 현실이지요”
여성들의 일하는 스타일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1.5세인 40대의 한 여성은 여성들의 꼼꼼하고 빈틈없는 스타일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다고 했다. 자기 눈으로 매사를 확인해야 안심이 되기 때문에 남에게 일을 떼어 맡기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부하 직원이 한명만 있어도 일을 시키고 자신은 편하게 감독만 하는데 여성들은 대개 그렇지가 못하다.
“남에게 일을 맡기느라 설명하고 나중에 잘못된 것 고치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만다는 식이에요. 그러다 보니 빨리 지치지요”
아울러 지적되어야 할 것은 여성들의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고 본다. 여성들이 자라면서 가장 보편적으로 교육받는 가치는 ‘착함’이다. 여성은 여자다워야 하고 여자다움은 착함이라는 것을 등식처럼 주입 받는다.
그래서 남이 힘든 것을 보느니 내가 힘든 게 마음 편하고, 남들과 경쟁하며 쟁취하기보다는 손해를 보더라도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좋고, 아무리 피곤해도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 결과 ‘착한 여자’라고 칭찬 받고 사랑 받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여성들은 대개 자유롭지가 못하다.
소위 ‘착한 여자 신드롬’이다. 직장에서 자기 희생적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면 성공은 보장될 것이라는 것이 여성들의 막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개 그렇지가 못하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직장은 조직이라는 점을 여성들은 이제 알아야 할 것 같다. 일 자체에 대한 능력과 함께 조직에 대한 적응력이 중요한데 그 부분이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뒤진다.
지난 반세기 여성들은 자기 희생적으로 열심히 일한 능력 덕분에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한 단계 올라설 때가 되었다. 보다 큰 그림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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