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경기가운데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튼실한 비즈니스를 키워온 여성 경영인들이 있다. 13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식당 ‘가부키’의 조운 이 사장과 히스패닉 사진업계를 석권한 ‘포토라마’(Fotorama)의 섀런 이 사장. 발 품, 손 품 팔아 판로를 개척하고 인력관리, 잔무처리 등 남편의 몸과 생각이 미처 닿지 않는 경영의 위크 포인트를 땜질하면서, 아이들 돌보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쪼개 붓는 강인한 안 사장들이다. 만나서 들어본 사업번창의 밑거름은 안 쓰고 덜 먹고 졸라맨 자린고비의 철학도, 개성상인 뺨치는 뛰어난 상술도 아닌 ‘지역봉사를 통한 사회환원’이라는 사회적 책임의 이행이었다. 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요소, 아직까지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실천하고 있는 비즈니스 우먼들, 부드러운 이웃 아줌마의 얼굴과 냉철한 프로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 두 여성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업성장 비결은 “이윤의 사회환원”
매달 기부금 1만달러씩 쾌척
‘가부키’ 조운 이사장
‘가부키’의 조운 이(옥경·40) 사장의 첫 인상은 오래 알고 지낸 허물없는 이웃 같다. 또 스스로를 ‘부엌전담‘이라고 소개할 땐 네 아이의 엄마다운 푸근함도 풍긴다.
하지만 가만히 하는 얘기를 듣다보면 그녀의 정확·깔끔한 프로페셔널리즘에 한번 놀라고, 가족같은 직원들과 13년을 한결같이 지내 오면서 적소적시에 사람을 배치·집결시키는 그녀의 인력 관리능력과 조직력에 또 한번 놀란다.
그러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역시 4개 브랜치 지역에서 해온 봉사활동. 요란 떨지 않고 마땅히 할 일을 하는 양, 조용하고 꾸준히 하는 봉사라 감동과 여운이 더 하다.
“봉사랄 게 따로 있나요? 직원과 그 가족의 생활이 어렵지 않도록 함께 나누고 동네에 도움될 일 있으면 힘닿는 대로 참여하는 거죠”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법.
직원들의 비자와 자녀교육문제 해결은 이사장의 가장 큰 관건이고 아르바이트생들의 차 사고나 이사, 학업 관련문제까지도 도맡아 해결한다. 집은 언제나 개방해 여름마다 집 수영장은 직원가족들의 피서지로 바글거릴 정도다.
이 사장은 또 ‘거둔 데다 뿌리는’ 사회환원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단다. “실제로 돈을 벌어들이는 각 브랜치의 지역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초등학교와 시립도서관 기부는 기본 도네이션이고 그 밖에 어린이 사커 등 스포츠 팀에 티셔츠를 제공하거나 대학이나 연구소 등 공공기관의 오프닝 행사에 스시와 음료수를 제공하는 것은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을 돕는 것을 제외하고 ‘가부키’가 한 달에 쾌척하는 기부금 총액은 약 1만 달러 정도.
탄탄한 뒷받침 없이는 어려운 이야기다. 현재 전체 직원 220명, 4개 지점 비즈니스로 성장한 ‘가부키’는 본점인 패사디나 지점을 1991년에 연 이후 제 2 브랜치 하워드휴즈 센터점을 2000년에 열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차를 두었다. “확실한 기반 없는 사업확장은 직원과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업주로서 무책임한 짓이며, 빌린 돈 갚기에 벅차면 자연히 직원들을 들볶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설명. 그래서 현재 브랜치들은 모두 융자 없이 자비로 시작했다. 이 사장은 “숨쉴 여유가 있으니 봉사도 하고 직원도 보살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누가 시킨다고 직원들이 스스로 사장을 ‘언니’‘누나’ ‘이모’라고 부르게 되던가. 모두 이 사장이 지은 인덕이다.
튼실히 키워온 ‘가부키’의 영업방침에 대해 이씨는 “우린 완전 분업제로 운영합니다”라고 운을 떼며 “남편 이경훈 사장은 장소를 찾고 가게를 열고 행정처리를 맡습니다. 직원을 고용하고 훈련시키고 각 업소의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는 것은 내 몫이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씨의 인력활용능력과 조직력은 수준급이다. 가게를 새로 열면 평소 각 브랜치에 흩어져 있던 주방, 캐시어, 서빙, 매니지먼트 등 각 역할을 담당하는 20명의 오프닝 멤버들이 새 가게로 집결, 약 3개월간 새 직원의 집중 트레이닝에 들어간다.
본인도 오프닝 멤버에 들어 있다. 이 씨가 초창기 6년간 패사디나 주방에 꼼짝없이 틀어박혀 레서피는 물론, 식기와 서빙 매너와 드레스코드까지 직접 제작한 매뉴얼이 트레이닝 교본이란다. 서빙하는 사람의 경우 바르는 로션이나 향수와 매니큐어까지 세세히 통제하고 각 브랜치 마다 2∼3명의 스시바 헬퍼를 항상 백업멤버로 두어 유사시 대처법까지 훈련시킨다. 호텔경영학을 전공하는 큰아들도 현재 스시바에서 일할 수 있기까지 설거지부터 시작해 다른 직원과 똑같은 절차를 밟아야 했다.
회의도 대충 업소에서 하지 않는다. 매주 타운 윌셔가의 헤드쿼터에서 20여명이 되는 매니저와 주방장회의가 각각 월요일과 화요일에 열린다. 모든 참석자가 랩탑을 사용해 회의 내용을 빠뜨림 없이 기록하고 매일 점검해 이메일로 통신토록 돼 있다.
패사디나, 우드랜드힐스, 하워드휴즈센터, 세리토스 등 남가주 전역에 퍼져있는 지점들을 돌아다니며 세세히 관리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첫째는 끈끈한 유대관계고, 그 다음은 처녀시절 외환은행 감사실 근무시절 익힌 꼼꼼함이 아닐까요”라며 웃는다.
올 11월 제 5호 할리웃지점 오픈을 앞두고 있는 ‘가부키’의 안 사장 조운 이씨는 남편 데이빗 이(경훈·47) 씨와의 사이에 알버트(18), 찰스(17), 애나(14), 솔로몬(8)의 3남 1녀를 두었다.
지역봉사 할수록 일거리 몰려
‘포토라마’ 섀런 이사장장
라티노 밀집지 헌팅턴 팍, 그 중에서도 중심가 퍼시픽 블러버드에 자리잡은 사진관 ‘포토라마’(Fotorama)의 섀런 이(소연·33) 사장은 만삭의 배를 손으로 받쳐 안고도 잠시 앉을 새 없이 종종걸음이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히스패닉 사진업계의 쏟아지는 일감 홍수에 치여서가 아니다. 이 씨를 눈 코 뜰 새 없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하면 할수록 새끼치는 지역봉사.
오늘도 오전 내내 열린 상공회의소 회의를 마치자마자 헌팅턴 팍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 참가해야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식 교육에 애태우는 이웃 학부모들의 필요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또 매주 수요일엔 어김없이 LA 다운타운 초등학교를 방문해 저소득층 라티노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선물 나눠주는 일도 지난 2년간 꾸준히 해 왔다.
“비슷한 처지의 학교에서 방문 요청이 쇄도하니 갈 곳은 점점 늘어나지만, 한번 만난 아이들의 기다리는 눈망울을 저버릴 수 없어 시간을 쪼갤 수밖에 없어요”라고 설명한 이 씨는 “최근엔 남편 이윤종 사장이 한술 더 뜬다”는 자랑 반, 푸념 반을 늘어놓는다.
매년 연말이면 이웃의 퍼시픽 블러버드 중증장애학교에 소방차, 경찰차, 산타클로스를 동원하고 전교생 350명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기쁨을 나눠왔는데 지난 연말 행사에 참석했던 남편이 “매년 전교생 ID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겠다”고 약속하고는 바로 실행에 옮긴 것. 이 씨는 “돈은 벌어들인 곳에 풀어야 전체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간다”는 신념으로 처음부터 이렇게 하기로 남편과 작정했다며 흐뭇해한다.
이 씨가 하는 일의 95% 이상이 히스패닉 커뮤니티와 관련된 것. “함께 봉사에 참여하는 허름한 복장의 60∼70세 백인 노인들이 알고 보니 퍼시픽벨 회장이나 전기회사 등 대기업의 은퇴한 총수들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고 부러웠어요. 젊을 때 이 지역에서 쌓은 인맥과 재력을 활용해 이 사회로 다시 돌려보내는 그들의 미덕을 배웠지요”라고 회상했다.
이제는 시정부가 주관하는 모든 퍼레이드나 행사의 사진촬영 자원봉사는 당연히 포토라마의 몫이고 9개 인근시의 상공회의소 이사회도 이씨가 없으면 진행이 안될 정도다. 그 밖에 YMCA, 구세군, 보이즈&걸즈클럽, 키와니스, 로터리, 라이온스클럽 등 각 지역단체를 통해 사회에 필요한 것이 없는지를 점검하는데 만도 1년 365일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 씨가 두 곳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이처럼 끊이지 않는 지역봉사를 할 수 있는 힘의 비결은 탄탄한 비즈니스와 남편의 격려, 아이들의 희생이란다. “특히 엄마로서 내 아이들 곁에 항상 있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1분1초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어요”라고 전했다.
9년 전 20대의 젊은 신혼부부가 한인타운에 원아워 포토샵을 연지 8년만에 겁 없이 타인종 밀집지로 들어와 6,000스퀘어피트 면적의 초대형 테마스튜디오를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은 남편의 치밀한 사업구상과이씨의 ‘바지런함’이 딱 맞물린 것.
“라티노 커뮤니티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지만 정작 스튜디오 수준은 매우 영세한 단계라 엄청난 시장성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남편이 과감하게 일을 벌였죠” 처음에 건설업자들의 농간으로 2개월 공사계획이 7개월 지나도록 진전이 없자 영어가 자유로운 이씨가 시청을 찾아가 직접 관계자들을 만나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공회의소의 기능과 역할을 배우게 됐고 즉시 회원가입을 한 것이 지금의 부회장직을 맡기까지 연결된 것.
이 씨에 따르면 지역봉사를 통해 맺어진 인맥은 질기고 끈끈해서 사업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여느 광고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엔 12개 초·중·고 정규학교 ID사진 계약을 맡게 되는 쾌거를 불렀는데 학교사진은 보통 50∼75년씩 대물림으로 맡는 비즈니스로 동양계가 인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학교사진이란 전교생 포토ID에서 졸업사진, 스포츠를 비롯한 각종 행사사진 등 ‘떼 놓은 당상’인 한편 수백 명의 학부모와 학생, 학교관계자의 불평을 최소화해야 하므로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죠”라고 설명한 이 씨는 “평소 쌓아둔 학부모, 학교관계자들과의 친분과 모든 샘플을 디지털화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 남편의 실력 덕에 이 성역을 치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포토라마’에서도 사업 구상·연구·착수와 유지 및 확장을 위한 업무의 질적 개선과 행정처리는 바깥 사장 몫이고, 지역봉사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심고 사람들을 만나 지역사회와의 유대를 다지는 것은 안 사장의 몫이다. “아침 화장하는 15분 동안 스페인어 테입을 매일 들어 이젠 언어에도 불편함이 없다”는 섀런 이 사장은 6살 때 이민 온 1.5세로 남편 이윤종(42) 씨와의 사이에 두 딸 데보라(6)와 한나(4)를 두었고, 또 조만간 세상에 나올 조수아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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