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 후 평양 거리를 연상케 한다. 몸부림을 치며 방성대곡을 하는 북한 여인들. 거짓 울음 같지는 않았다. 진정으로 위대한 지도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히틀러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독일인들이 있었으니까….
이라크 전쟁 초기 예상 밖으로 강력한 저항을 하는 이라크군, 또 ‘사담 만세’를 열렬히 외쳐대는 이라크 국민들을 보며 한 종군 기자가 밝힌 소회다.
참으로 이상한 전쟁이다. 미·영 연합군과 사담 후세인은 서로 전혀 다른 코드의 전쟁을 하고 있어서다. 연합군은 아군은 물론 적군 사상자도 최소화하는 작전에 골몰해 있다. 사담측은 가능한 많은 피를 원한다. 적군은 말할 것도 없다. 아군, 심지어 이라크 국민이 가능한 한 많이 희생되는 방향으로 전쟁을 이끌고 있다.
인도인 논객의 이라크 전쟁 분석담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된다. 사담에게 있어 군은 궁극적으로 자신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적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민간인 희생이 얼마나 많이 나든 그건 그러므로 관계없다. 가급적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발생해 국제 여론을 반미로 몰아가면 되는 것이다.
한 중국인 작가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모습은 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전체주의의 모습은 그러나 언제나 똑같다. TV에 비쳐진 바그다드의 모습은 얼마전 방문했던 평양을 방불케 한다. 내 사촌의 말이다. 거기에 덧붙일 것이 있다. 스탈린의 모스크바와 모택동의 북경도 흡사했다고.”
“…북경을 방문했을 때 예상치 않은 현상에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 학자, 언론인 등 30∼60대에 이르는 연령층에서 특히 지지가 높았다. 이들은 모택동의 문화혁명, 등소평의 천안문 사태를 경험한 세대다. 과거 동구권 사람들처럼 그들은 사담 후세인에게서 그들이 잘 아는 독재자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낸다.”
“…20대로 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천안문 사태도, 홍위병 난동도 이들의 기억에는 없다. 미국은 중국대사관이나 폭격하고, 또 올림픽에서 맞닥뜨리는 오만한 제국이라는 인상만 가지고 있다. 내셔널리즘이 팽배한 가운데 젊은 세대는 반미의 시각으로 이라크 전쟁을 보고 있다…”
미국에서, 인도에서, 또 중국에서 각기 바라보고 있는 이라크 전쟁이다. 전쟁에서 그들은 그러면 무엇을 보고 있는가. 석유가 아니다. 제국주의 미국이 아니다. 종교 전쟁도 아니고, 문명 충돌도 아니다.
그런 측면도 물론 있겠지. 그들은 그러나 다른 한가지를 주시하고 있다. 전체주의다.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어떻게든 체제유지에만 혈안이 돼 있는 전체주의 족벌체제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독소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의도 따라서 차츰 명료해진다.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싸움인 것이다. 적어도 그들, 다시 말해 전체주의 하에서 오랜 압제를 경험한 그들에게 있어서는 분명한 사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직감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전체주의가 어떤 경로로 말로를 걷는지 이라크 전쟁이라는 세팅을 통해 새삼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해 나오고 있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이라크군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은 이렇게 설명된다. 개인 숭배가 극에 달한 족벌 독재체제는 오직 ‘바디 가드’만 필요로 한다. 군은 말하자면 오직 체제 옹위를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서 야전군 사령관은 필요 없다. 외부의 적에 맞서 승리를 이끌어 내는 패튼이나 롬멜 같은 장군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전체주의 족벌체제의 속성이 그런 야전 사령관을 용납지 않는 것이다. 이로 보면 이라크군이 그토록 빨리 궤멸된 건 필연이다.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같다. 자유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 욕구다. 중국 땅에 살고 있는 관리나 이라크에 살고 있는 농부나 마찬가지다. 이는 북한주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중국의 작가가, 인도의 논객이, 종군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숨은 명제가 이것이다.
“바그다드가 드디어 함락됐다. 후세인 부자의 운명은 알 길이 없다. 사담의 초상화가 불타고 거대한 동상이 속속 파괴된다. 오랜 압제에서 벗어난 바그다드 시민들은 미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하고 있다. 족벌 독재체제의 주구노릇을 하던 무리들은 군중의 린치를 당한다. 유혈의 게릴라전도, 반미전선 확대도 허구였다. 군사적 궤멸과 함께 독재체제는 홀연히 증발된 것이다…”
김정일은 이라크 전쟁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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