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오일 체인지를 했다. 3,500마일마다 한번씩 오일 체인지를 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두 배 가까이 되는 6,000마일이 되어서야 겨우 오일 체인지를 하게 된 것이다. 15~20분이면 되는 일이지만 일부러 차를 끌고 오일 체인지를 하러 갈 만한 여유가 없이 빡빡한 생활을 해왔음을 뉘우치며 약간은 차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정비업소로 갔다.
내가 다니는 곳은 한인타운 북쪽에 위치한 곳인데, 바로 옆에는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너무나 예쁜 스페인 풍의 교회가 하나 반듯하게 서 있다. 페인트칠을 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오늘따라 건물이 더욱 깨끗하고 예뻐보였다. 수년전 해질녘에 오일 체인지를 하러 갔다가 그 교회의 복숭아빛 담벽에 비치는 저녁 햇살과 반대편 석양을 보고 오늘 본 이 아름다운 색채와 장면들이 고스란히 내 기억 어딘가에 담겨있다가 언젠가 내가 표현하는 음악에 묻어나올 것을 믿는다 라고 썼던 글이 기억났다.
흔히들 예술가가 하는 일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한다. 특히 미술가, 조각가, 작곡가 등이 하는 창작 활동을 일컬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들 많이 하는 것 같다. 얼뜻 보면 아무 것도 없는 흰 백지 위에 그려놓은 어마어마한 그림이나, 오선지 위에 적어놓은 음표들이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음악이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해 놓은 듯 놀라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결코 무(無)에서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들의 삶의 체험 속에서 생겨난 감정과 오랜 시간 쌓아 온 지식 등이 그대로 그들의 작품 속에 녹아있음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는 일 중에 과거의 경험과 느낌이 반영되지 않는 게 어디 있을까.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나도 모르는 새에 묻어나게 되는 게 바로 내 삶의 경험들이다. 특히 혼신을 쏟아부어 만들어내는 창작품에는 나의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친구들이나 주변 아는 사람의 연주를 듣다보면 그들의 성격까지도 모두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개는 그들이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끝을 흐리는 버릇을 가진 사람의 연주는 프레이즈의 끝을 흐리는 경우가 많고, 유머감각이 제로이고 드라이 한 사람의 연주는 역시 별로 재미가 없고 딱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각이 깊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의 연주에서는 깊이가 느껴지고,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사람의 연주에서는 비뚤어진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도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연주에서 드러나는 성격대로 연애를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불같고 정열적인 연주를 하는 사람은 정열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와 연애하고, 안정적이고 컨트롤된 연주를 하는 사람은 도망갈 길을 항상 만들어놓고 마음이 다치지 않을 만큼만 연애를 한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위험 부담을 감수했을 때 얻어지는 만족감을 맛 본 사람은 그 경험을 토대로 계속 만족스러움을 갈구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안전지향적 성향을 못 버리고 그저 일이 잘 못 되어 다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그치는 것만이 되풀이된다.
살아가는 순간 순간이 창조를 위한 준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무리가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본 그림 하나, 내가 읽은 시 한 편, 내가 경험한 아름다운 석양 등이 없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형제 자매를 통해 배운 사랑과 나눔과 미움,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 책을 통해 얻은 간접 경험, 친구들을 통해 배운 우정과 시기와 질투 등 모든 것이 알게 모르게 나의 말과 연주를 통해 그대로 바닥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한 편 두렵게도 느껴지고, 한 편 더욱 부지런히 많은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다.
가끔 학부 시절에 썼던 일기와 그 때의 연주를 녹음해 놓은 것을 들으며 그 때 내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정열에 놀랄 때가 있다. 뭔가 고갈해 버린 듯한 지금과 비교해서 마치 멈추지 않고 솟아나던 샘물을 발견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열심이었던 그 때와는 달리 평안에 안주해버린 지금 생활이 나의 마음을 녹슬게 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가난해서 밥을 굶었지만 좋은 연주의 레코드판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번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관을 찾았던 그 때 쌓아둔 경험들을 이제껏 까먹고 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유명한 피아노 선생이 자신이 젊었을 때는 돈만 생기면 레코드판을 사서 들었다는 말을 전해듣고,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 선생은 어떻게 좋은 음악을 많이 듣지 않고 좋은 연주를 할 수 있겠냐며 음악을 듣는 것을 게을리하는 학생들을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는 꾸짖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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