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래도 ‘모차르트’로 자랄 수 있었을까. 자녀의 성적과 SAT 점수에 애간장이 다 타는 우리 한인1세 부모 밑에 태어났다면, 그래도 여전히 ‘모차르트’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탁월한 재능은 빛을 발하게 마련이지만, 성적 최우선 주의인 부모 밑에서, 학교 숙제·학원 숙제가 많을수록 안심이 되는 부모 밑에서,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재능과 성장이 그렇게 사이좋게 엮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각 대학 합격자 발표가 대충 마무리되면서 또 다시 많은 학생·학부모들이 당혹하고 있다.
“이 정도 점수면 무난히 들어갈 줄 알았는데…” “우리 아이보다 성적이 낮은 아이는 들어갔는데 우리 아이는 왜 떨어진 걸까” “UC계열 다른 대학들에는 낙방한 아이가 UC버클리에 합격했다니 무슨 조화일까”
최근 몇 년 합격자 발표시즌마다 터져나온 부모들의 실망과 혼란, 의구심이 올해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학교 성적 좋고, SAT 점수 높고, 병원 자원봉사도 많이 했고, 테니스 잘 치고, 피아노 연주 실력도 상당한 “똑똑한 우리 아이가 왜 떨어졌을까”- 그런 아이를 만들기 위해 수년간 공을 들인 부모들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답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똑똑함에 있다고 진학상담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버드와 MIT에서 수년간 입학사정관으로 일했던 앤젤라 엄씨의 말이다.
“입학사정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아시안 학생들은 똑똑하기는 한데 너무 재미가 없다는 거 예요”
한국계, 중국계등 아시안 학생들은 교내활동·과외활동등 경험도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해서 모두 그 아이가 그 아이 같은 것이 눈길을 끌만한 개성이나 특징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단 하나 성적이 좋다는 것인데 입학사정에서 ‘점수’의 힘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문제이다.
하버드의 경우 지난 99년 불합격자들중 SAT 점수가 1600점인 학생이 200명을 넘었다. 당시 주류언론들이 ‘기현상’이라며 요란스럽게 보도를 했는데 상황은 그 이후 계속 비슷할 것으로 짐작이 된다.
하버드 대학당국이 밝힌 바에 의하면 2001년 기준, 2,100명 정원에 대략 18,700명이 지원하는데 학업 실력으로만 본다면 지원자중 85%는 합격이다. 그 좋은 실력의 내로라하는 수재들 줄줄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학생들이 선택되는 것일까. 재능이나 경험이 남다르고, 삶이 독창적이고 열정적이어서 한마디로 탐이 나는 학생이 될 것이다. 엄씨가 소개하는 한 케이스.
“하버드에 합격한 한 백인 남학생이 있었어요. 이 소년은 배스킨 로빈스 점원으로 4년간 일했는데 어찌나 일을 즐겼던지 얼마후 매니저가 되고 17살에는 아예 그 가게를 사서 주인이 되었어요. 평범한 것에서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낸 아주 재미있는 학생이었지요”
공부보다는 실생활 속에서 아이의 재능을 계발하고 발전시켜주는 일이 필요한데 한인 부모들은 대개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한국에서 입시지옥을 통과하며, 1점 차이로도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냉엄한 점수 지상주 의가 강박관념으로 남아있는 탓일 것이다.
‘점수’의 위력이 전같지 않은 것은 공립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상위급 대학들에서 높은 점수를 가진 학생들이 낙방을 하다보니 그 여파가 단계적으로 내려와서 전반적으로 합격 보장 점수가 높아진 것이 한 이유이다.
아울러 UC를 비롯, 성적에 주로 의거하던 공립대학들이 점점 학생 의 자질과 성장환경등을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점수’가 아니라 ‘사람’을 보겠다는 취지 이다.
대부분 우리의 자녀들은 물론 ‘모차르트’는 아니다. 하지만 열린 공간 대신 학원이라는 닫힌 공간, 열린 가능성 대신 점수라는 숨막히는 작은 틈새에 아이가 갇혀서, 조금만 물을 주면 쑥쑥 자랄 어떤 재능이 아이의 의식 깊은 데서 말라죽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의 숲은 온갖 나무들이 모여서 이뤄진다. 늘 푸른 소나무가 있고, 열매를 맺는 과일 나무가 있고, 화사한 꽃나무가 있다. 사람을 나무로 치면 내 아이는 어떤 나무일까. 과일 나무가 인기가 있다고 모두 과일나무로 만들 수는 없다. 가장 당당한 소나무, 가장 화려한 꽃나무, 가장 충실한 과일나무를 요즘 대학들은 원하고 있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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