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미밥에 사골우거지국, 고등어조림, 쇠고기국밥, 재첩국...
부엌에서 종일토록 서서 끓이고 조리고 밥하며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먹을 수 있던 음식들이 이제는 5분이면 뜨끈뜨끈하게 상에 오른다.
즉석요리, 인스턴트 식품이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건강식을 강조하는 시대라 왠지 불안하고 찜찜하지만 멀리 하기엔 너무도 아쉬운 식탁의 도우미, 어쩔 수 없이 손이 가는 생활요리의 동반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인스턴트 식품 하면 컵 라면이나 3분 카레만을 떠올리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
요즘 마켓에 가보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워 먹기만 하면 되는 밥, 국수에서부터 각종 국, 찌개, 떡국 심지어는 생선조림까지 종류를 가늠하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인스턴트 식품들이 마켓 진열대를 넓혀가고 있다.
또한 식품가공술의 발달로 맛과 품질이 과거보다 많이 향상돼 방부제와 인공조미료의 합작물이란 거부감도 많이 사라진 편이다.
인스턴트 식품의 최대 장점은 단시간에 손쉽게 조리할 수 있고, 저장이 간단하며 휴대가 편리하다는 점. 조리와 이용의 편리함 때문에 컨비니언스 푸드(convenience food)라고도 불리는 인스턴트 식품은 물만 붓거나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부터 간단한 조리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까지 혼자 사는 독신은 물론 바쁜 직장인들, 또 일반 주부들의 쇼핑 리스트에서도 빠지지 않는 품목이 되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라면을 시작으로 지금은 인스턴트 식품으로 못 만드는 요리가 없다. 그야말로 ‘없는게 없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여서 혼자 사는 싱글이나 바쁜 직장인, 요리에 흥미 없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인스턴트 식품을 애용한다는 독신 직장인과 유학생의 상차림을 보자.
근무시간이 길고 야근이 잦아 장보고 요리할 여유가 없는 직장인 김모씨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밥과 국에 두어가지 반찬은 있어야 끼니를 때운다. 밥은 흑미밥 햇반으로 대신하고 국은 건조가공된 사골우거지국이나 캔 곰탕으로 준비한다.
반찬은 캔에 든 깻잎반찬과 레토르트 포장된 고등어조림에, 구운 김까지 놓으면 한끼 식사준비가 훌륭하게 완료된다. 때로는 3분 카레나 3분 짜장, 물만 부으면 되는 건조 국밥으로 간단히 해결하기도 한다.
정군은 요리에 관심이 없는 유학생. 하루에 한두끼씩 사먹다 보니 식비지출이 만만치 않은데다 잘만 고르면 인스턴트식품도 직접 요리한 음식 맛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며 애용하고 있다.
이것저것 용기에 옮겨 담고 끓이는 것조차 귀찮기 때문에 그가 즐겨 찾는 메뉴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떡국과 끓이기만 하면 되는 냄비우동. 냉동실에는 비프·테리야키보울도 서너개씩 채워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스턴트 식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보관의 용이성과 조리의 간편성이다.
캔과 레토르트식품은 조리된 식품을 용기에 넣고 밀봉한 것으로 가장 보편적인 인스턴트 식품이다. 특히 고온에서 가열살균과정을 거친 레토르트식품은 가볍고 주머니째 데울 수 있어 간편하다. 카레, 짜장, 죽, 미트볼 등이 이같은 처리과정을 거쳐 판매된다.
한편 건조식품은 내용물에 따라 발달된 인공건조법으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것은 물론 가공기술의 발달로 특수한 풍미를 내기도 하며, 부피와 중량의 감소로 저장장소의 절약 또는 간편한 운반 등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냉동식품은 냉동시설을 갖추어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대부분 전자레인지로 간단한 해동과정만 거치면 먹을 수 있게 가공돼 있어 간편하다.
그런데 인스턴트 식품이 식생활에 가져다주는 여러가지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인식은 비건강식품이라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MSG 및 색소, 산화방지제, 방부제 등의 각종 인공첨가물과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기 때문.
흔히 조미료로 구분되는 MSG(monosodium glutamate)는 음식의 맛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인공 첨가물로 많은 인스턴트 식품에 들어있다. MSG는 혈압상승을 야기하는 염분의 과다섭취의 원인이 되고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편두통이나 메스꺼움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라면 등 튀긴 인스턴트 식품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포화지방산의 경우 고혈압, 동맥경화 및 각종 심장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몸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성분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요즘 시판되는 많은 인스턴트 식품들이 방부제, MSG, 색소 등을 사용하지 않는 친소비자형으로 바뀌고 있어 제대로 보고 구입하면 불필요한 인공첨가물의 섭취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퍼시피카 양로센터’(Pacifica Nursing and Rehab Center)에서 영양사로 근무하고 있는 캐서린 주씨는 "아무리 맛이 좋고 잘 만들어진 인스턴트 식품이라도 맛이나 영양면에서 손수 요리한 음식을 능가하지는 못한다"며 "가능한 한 신선한 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주씨는 "그러나 직장일로 바쁘거나 요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필요에 따라 현명하게 인스턴트 식품을 이용하라"고 조언하고 "인스턴트 식품을 먹다보면 자칫 영양의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겉포장에 표시된 영양권장량(Nutrition Facts)을 보고 인스턴트 식품에 많이 들어있는 탄수화물, 지방, 소금 등의 특정 영양소만 과잉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글 라세희 기자·사진 홍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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