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의 목요일 저녁메뉴는 스파게티로 거의 고정된 듯 하다.
뜬금 없이 매주 스파게티를 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올해초 이 주방일기에서 ‘살빼기 신년결심’을 지키지 않는다고 마음껏 비웃어준 남편이 1월 중순부터 드디어 운동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우리를 맨날 해주는 밥이나 실컷 먹고 살만 잔뜩 찌는 돼지들로 묘사하지 말고 제발 인격과 품위를 가진 아버지와 아들로 그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던 그가 더 이상 수모를 참지 못해 뛰쳐나간 것이다.
처음에는 어딜 가나 했다. 목요일 저녁이면 아들과 함께 부리나케 저녁을 먹고는 공원엘 간다고 했다. 아는 이웃집 아빠의 권유로 몇사람이 모여 한시간씩 뛰기로 했다나. 그런데 저녁은 꼭 스파게티를 해달라는 것이다. 나야 편해서 좋지만 왜 그러냐고 물으니 ‘코치’가 ‘마라톤’처럼 뛰는 운동에는 스파게티가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코치? 마라톤? 용어 사용이 좀 튄다 싶었지만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고, 두 사람은 저렇게들 먹고 도대체 어떻게 뛰나 싶을 정도로 마늘 빵까지 꽉꽉 눌러서 먹은 후 마라톤에 출전하는 선수들처럼 비장한 모습으로 운동복과 운동화를 꼼꼼히 갖춰 입고 나갔다.
몇번이나 계속할까 싶어서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지만 드물게 갖는 나 혼자만의 자유시간이 즐거워 목요일 저녁이 은근히 기다려지던 것도 잠시, 한달쯤 지났을까? 남편이 슬슬 눈치를 보며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나만 홀아비 같애" 아들도 거든다. "엄만 혼자 집에서 뭐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상황임을 감지한 나는 그 다음주 목요일, 도대체 뭣들을 하나 보려고 따라 나섰다. 파크 라브레아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팬 퍼시픽 팍, 넓은 공원 한쪽 놀이터에 몇몇 한인부부들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정말 ‘코치’도 있었다.
내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했다는 그들의 환대는 앞으로 더 이상 나의 목요일이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론부터 말하면 그 목요일부터 나도 스파게티를 먹고 뛰기 시작했다. 야근이나 다른 일이 겹치는 바람에 매주 참석은 못 했지만 지금까지 무려 다섯 번을 뛴 것이다.
모이는 시각은 저녁 7시30분. 서로 인사하고 환담을 나누다가 코치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약 15분간 가볍게 몸 푸는 체조를 하고 8시 정각부터 공원 트랙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가 0.7마일, 9분에서 10분 걸리는데 모두 네바퀴를 뛰므로 총 2.8마일, 35~40분을 뛰게 된다. 한바퀴 뛰고 나서 5분 쉬고, 2바퀴를 연속으로 뛰고 또 5분 쉬고, 마지막 한바퀴를 천천히 돌아와서는 마무리 체조를 하고 정각 9시에 끝낸다.
처음에는 갑자기 거의 3마일을 뛴다는게 쉽지 않았다. 첫날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바퀴를 다 뛰고 들어오니 하늘이 빙빙 돌고 땅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였다. 그로부터 사흘동안은 두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었다.
두 번째 뛰던 날에는 집에 돌아오면서 양쪽 발과 다리에 심한 쥐가 나서 30여분간 심히 고생했다. 그런데 세 번째부터 견딜 만해지더니 지금은 무리없이 네바퀴를 뛰고 있다. 점점 뛰는 실력들이 늘었다고 흡족해하는 코치는 여름부터 다섯바퀴로 늘여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목요러너스’는 친하게 지내는 세가정이 작년 9월부터 함께 뛰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커플이 하나둘 조인하면서 지금은 우리 부부까지 일곱 커플, 14명이 되었는데 연령대가 모두 40대 초중반으로 비슷해서인지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처음에 혼자 다니던 남편이 홀아비처럼 느낄만도 했던게, 모두들 반드시 부부 동반하여 나오는 것은 물론, 아이들도 데리고 나와 다함께 뛰고 놀리기 때문에 더 푸근하고 정겨운 모임이다.
목요러너스는 5월중순께 1박2일로 캠핑도 다녀오기로 했고 10월에는 롱비치에서 열리는 해프 마라톤에도 함께 출전하기로 했다. 남편은 처음으로 하는 운동에 재미를 붙였는지 테니스도 치기 시작했고 그러한 발군의 노력으로 지난 석달동안 정말 살을 10파운드나 뺐다!
그런데 나중에 코치에게 물어보니 스파게티와 마라톤은 별 관계가 없단다. 순전히 ‘수키즈 스파게티’(Sookee’s Spaghetti)에 열광하는 우리집 두 남자의 계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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