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한국에서 와인이 ‘유행’이라더니 그 여파가 건너온 것 같기도 하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와인이 뜨는지 요사이 신문 잡지에도 와인에 관한 기사가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한인들과 미국인들의 와인문화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 거의 문외한 수준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가끔 시음회에 참석할 때 느끼는 것인데, 와인에 관심있는 사람들조차 기초적인 지식마저 전무한 상태임을 보게 된다.
어떤 와인전문가가 이야기하기를 미국인들이 와인을 잘 모르는 이유중 하나는 음주연령이 21세로 제한돼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각이 한창 발달하는 나이를 넘어서 와인을 접하게 되므로 섬세한 맛을 구분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10대소년에게도 와인을 따라주는 모습을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만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와인을 접하게 된다고 한다. 또 유럽쪽 음식에는 와인이 재료로 많이 사용되므로 음식과 와인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나는 와인을 술이라기보다 ‘음식’ 또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알콜도수가 12~14%나 되니 술은 술이지만, 와인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맛을 음미하기 위해 마시기 때문이다.
내가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한 6~7년쯤 되었다. 그러나 거의 5년간은 좋아하는 와인을 한두가지로 정해놓고 그것만 한잔씩 마셨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와인을 마셨다고 보기 힘들다. 와인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 계기는 와인을 정말 좋아하고, 즐기고, 잘 아는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여러 종류를 시음해보면서 그 맛의 다양함과 변화무쌍함과 섬세함을 느끼게 되었고 이제 그 세계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고 있는 중이다.
와인의 세계는 너무도 광대하고 오묘해서 아무리 많이 마셔보고 배운다 해도 전문가의 수준에 도달하기란 우리네 음식문화에서는 매우 힘든 일이다. 주위에 보면 싸구려 와인 몇번 마셔본걸 가지고 와인을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진짜 와인을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매우 딱한 일이다. 와인에 관해서만은 함부로 잘난 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주방일기에 한두차례 와인에 관하여 쓴 것을 보고 가끔 내게 와인에 관해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절대로 와인을 잘 알지 못하지만, 초보의 입장에서 이제 초보가 되려는 사람들을 위해 서 조언할 것이 있다면, 와인은 자꾸 마셔보는 것밖에는 잘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초보는 드라이한 레드보다 과일향이 달콤한 화이트 와인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고, 처음에는 프랑스산 등 외국산보다는 캘리포니아산과 쉽게 친해질 수 있으며, 음식과 함께 마시고, 혼자 마시지 말며, 절대로 비싼 것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격에 관해서는 마켓에서 10달러 정도 하는 와인중에도 훌륭한 와인이 많다. 15달러 정도 되면 상당히 마실만 하고, 20달러가 넘으면 음식이 후져도 와인 한잔만으로도 흡족한 식사를 할 수 있다. 30달러를 넘어서 몇백달러씩 하는 와인은 맛을 웬만큼 알기 전까지는 사서 마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맛의 차이라는게 너무나 미묘하여 초보에겐 확연히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와인은 아는 만큼 맛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처럼 와인에 관한 진리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와인은 정말로 아는 만큼 맛있다. 어느 나라, 어느 지방, 어느 와이너리에서, 몇 년도에 수확한, 어떤 포도품종들을 각각 몇 퍼센트로 섞어, 오크통에서 얼마나 숙성시켰는지...등등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비싼 와인을 마셔봤자 그 가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와인을 제대로 마시려면 돈이 많이 든다. 나도 처음에는 가계에 부담이 되어 고민한 적도 있으나 와인을 나의 ‘취미생활’로 마음을 정리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한달에 정해놓은 액수를 쓰고 있다. 남들은 골프도 치고, 사우나도 다니고, 각종 문화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지만 나는 다른 아무런 취미활동이 없으니, 또한 와인을 마실 때만큼 즐겁고 편안한 적이 없으니, 그 정도는 허용해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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