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매일 놀다 들어가요. 신문이나 보고, 다른 가게 주인들과 서로 전화나 하고… 물건 사러오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LA 다운타운의 자바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는 50대 여성이 답답한 심정을 말했다. 자동차 통행량도 줄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줄어든 한산한 거리를 내다보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할까?” 업주들 모두 고민이라고 했다.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할텐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지가 문제예요”
비슷한 말을 며칠 전에도 들었다. 지난 17일 조지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에 48시간 최후통첩을 보낸 다음날이었다. LA 한인타운에서 가장 붐비기로 유명한 샤핑센터에 갔는데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샤핑센터내 단골 미용실 원장에게 물으니 “요즘 그렇다”고 했다.
“전쟁이 난다니까 사람들이 주춤하는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이지요. 어차피 전쟁을 할거라면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요”
19일 전쟁은 시작되었고, 첫날 공습 후 사담 후세인 사망설·부상설이 나돌며 조기 종전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덕분에 월가는 오랜만에 활기를 띄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만약 전쟁이 오래 간다면…”을 불안해하는 마음에는 일단 긍정적 조짐이다.
하지만 불안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21일 아침 CNN 방송을 통해 바그다드 시내가 융단폭격 당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여러 사람이 말했다.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나도 문제예요. 미국이 너무 자신만만해지면 그 기세를 몰아서 북한을 가만 두지 않을 걸요”
바그다드가 불바다가 되는 장면에 “만약 저게 북한땅이라면…”이란 상상을 덧칠하면 간담이 서늘한 것이 한인 누구나의 경험일 것이다.
91년 걸프전과 근본적으로 비슷한 전쟁이지만 미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번이 훨씬 높은 것같다. 12년 전에는 없던 9.11테러와 북한 핵사태가 끼여들었기 때문이다. 부시의 대국민연설 직후 USA 투데이, CNN, 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민의 70%가 보복 테러를 우려하고, 48%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한인들은 여기에 한가지 불안을 더 보태야 한다. 기세 등등한 부시행정부, 굽힐 줄 모르는 북한, “이라크보다는 북한이 진짜 위협”이라는 미국의 여론등을 생각하면 지금의‘충격과 공포’작전 그 이후가 더 불안하고 두렵다. ‘불안의 시대’를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안의 근거는 허구이다.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두려워하고 끙끙 앓는 것이 불안이다. 문제는 그 감정이 머릿속에서 끝나지 않고 몸에 영향을 미쳐 건강까지 해치는 것이다.
우리 몸이 위험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보면 일반 사회와 비슷하다. 테러등 위험이 감지되면 치안당국이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가면서 평상시 시민의 권리를 일부 희생하듯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면 뇌가 비상벨을 작동, 아드레날린이나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고 몸전체가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이어 면역이나 소화등 긴급하지 않은 기능들은 잠정 중단되면서 위기 극복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걱정 근심 많은 사람은 소화도 안되고, 감기에도 잘 걸리며, 몸이 잘 아픈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스트레스 호르몬은 독성이 강해서 많이 분비되면 심장에 특히 나쁘고 노화를 촉진한다.
불안한 시절일수록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분명해진 것은 우리의 생각이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각은 뇌에서 화학물질을 분비하도록 만들고, 그것이 몸에 그대로 작용을 한다. 낙천적인 사람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은 좋은 생각이 뇌에서 좋은 호르몬을 분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생을 가장 억울하게 사는 방법은 과거와 미래에 매여서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그리고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한 순간도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전 뉴욕의 한 작가가 쓴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전쟁이 나고, 그것으로 세상에 종말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때까지는 즐겁게 살수 있지 않은가”
불안이 나의 시간 중에 터를 잡지 않도록 몰아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명상, 운동, 혹은 웃음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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