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본상 못탄 할리웃 명우-명감독들
케리 그랜트‘상복없기’대표주자
명장 히치콕-채플린도 명예상 뿐
스코르세지‘이번만은’수상 별러
제75회 아카데미상 명예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일랜드 배우 피터 오툴(70)은 처음에 이 상을 10년 뒤로 미뤄달라고 아카데미 측에 요구했었다. 오툴은 “난 아직도 정정한 현역이어서 언젠가 내 실력으로 오스카를 거머쥘지도 모른다”면서 이런 부탁을 한 것.
그러나 아카데미측이 오툴이 시상식에 나타나건 말건 간에 명예상은 그의 것이라는 반응을 내보내자 오툴은 자신의 요구를 철회, 오는 23일 할리웃의 코닥극장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새파란 눈동자의 오툴은 그를 대뜸 국제적 스타로 부상시켜준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로 첫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후 ‘베켓’(1964) 등 무려 여섯 차례나 후보에 올랐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오툴의 마지막 수상 후보작은 그가 주정뱅이 배우로 나온 ‘내 생애 최고의 해’(1982).
오스카 역사를 들춰보면 오툴처럼 자기 전문 분야에서 뛰어난 재질을 보였는데도 생애 한번도 상을 못 탄 감독이나 배우들이 적지 않다. 아카데미는 뒤늦게 이런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표시로 명예상을 주지만 명예상이 본상만 못한 것이야 사실.
올해 ‘갱스 오브 뉴욕’으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르세지도 상복이 없는 사람 중 하나.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중 하나인 그는 ‘성난 황소‘(1980)와 ‘좋은 녀석들’(1990) 등으로 수상 후보에 올랐었으나 고배를 마셨다. ‘갱스 오브 뉴욕’을 만든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틴 회장은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면서 지금 스코르세지의 승리를 위해 온갖 매스컴을 동원해 후원하고 있다.관측통들은 상을 벌써 받았어야 할 스코르세지가 이번에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
왕년에 스크린을 주름 잡던 남자 배우로서 오스카상을 못 받고 명예상으로 만족해야 했던 대표적 사람이 케리 그랜트. 할리웃 최고의 신사배우였던 그랜트는 활동 초기인 1941년과 1944년에 각기 페니 세레나데와 고독한 마음으로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으나 각기 게리 쿠퍼(‘요크 상사)와 빙 크로스비(나의 길을 가련다)에게 상을 빼앗겼다.
셰익스피어극 배우 출신인 연기파 리처드 버튼은 ‘성의’(1953)로 처음 주연상 후보에 오른 뒤 1997년 ‘에쿠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차례 수상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버튼은 명예상마저 못 받았다. 커크 더글러스도 ‘챔피언’(1949)을 비롯해 모두 세 차례나 주연상 후보에 오르고도 본상 대신 명예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연기파 중의 연기파인 몽고메리 클리프도 데뷔작인 ‘수색’(1948)과 ‘젊은이의 양지’(1951) 및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등으로 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막상 상은 못 받았다. 그리고 요절한 제임스 딘은 생에 3작품 중 ‘에덴의 동쪽‘(1955)과 ‘자이안트’(1956)로 각기 주연상 후보가 됐으나 역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밖에 뛰어난 연기파들인데도 생애 단 한번도 수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배우들로는 로버트 미첨, 에드워드 G, 로빈슨 피터 셀러즈 등이 있고 댄스 영화의 황제였던 프레드 아스테어도 명예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왕년의 유명 여배우들로 오스카상을 못 받은 스타들로는 그레타 가르보(명예상), 마를렌 디트릭, 글로리아 스완슨, 바브라 스탠윅(명예상), 캐롤 롬바드, 진 할로, 리타 헤이워드, 로랜 바콜 및 마릴린 몬로 등이 있다.
명감독 중에 오스카상을 못 받은 대표적 경우가 스릴러의 거장 알프렛 히치콕. 영국 태생의 히치콕은 그의 첫 미국 작품 ‘레베카’(1940)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는데도 감독상은 존 포드(‘분노의 포도’)에게 양보해야 했다. 히치콕은 그 뒤로 ‘사이코’(1960)에 이르기까지 모두 네차례 수상 후보에 올랐었다. 아카데미는 미안하다고 히치콕에 명예상을 주었는데 과거나 현재나 스릴러 감독이 오스카상을 받기가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
귀재 감독 오손 웰즈는 25세 때 감독과 배우로 데뷔한 ‘시민 케인’(1941)으로 감독 각본 및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공동)으로 만족해야 했다. 웰즈에겐 후에 명예상이 수여됐다. 웰즈 못지 않은 천재 감독이자 배우인 찰리 채플린도 두번의 명예상밖에 못 받았다. 그가 감독과 연기 부문에서 함께 후보에 올랐던 유일한 영화는 ‘위대한 독재자’(1940).
‘루비치 터치’인 섬세하고 민감한 코미디의 명장 언스트 루비치와 모든 장르를 섭렵한 하워드 혹스(명예상)도 상복 없는 감독들. 스탠리 큐브릭도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4)와 ‘2001: 우주 오디세이’(1968)를 비롯해 모두 3편으로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을 못 받고 최근 작고했다.
현존하는 명장들로 아직까지 상을 못 받은 사람들은 아서 펜과 로버트 알트만. 펜은 ‘기적을 만드는 사람’(1962), ‘알리스의 식당’(1969) 등으로 수상후보에 올랐었고 알트만은 ‘매쉬’(1970)와 ‘내슈빌’(1975)로 수상 후보가 됐었다. 기자가 속해 있는 LA 영화비평가협회는 2002년의 생애 업적상 수상자로 펜을 선정, 그의 업적을 기린 바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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