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말들이 거침없이 나온다. ‘결국은 체제변화(regime change)밖에 방법이 없지 않은가’ ‘선제공격도 가능하다고 본다…’ ‘미 국방부가 전술핵 사용 승인을 의회에 요청 했다’-.
온통 전쟁과 관련된 말이다. 체제변화라는 게 그렇다.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전략목표다. 선제공격은 먼저 공격해 피해를 극소화한다는 전략이다. 전술핵 사용 불가피론도 따지고 보면 선제공격 전략과 맞물려 있다.
이라크 이야기인가. 아니다. 그 체제변화의 전략목표는 북한이다. 선제공격 대상도, 전술핵 사용의 타겟도 모두 북한이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북한 핵위기가 계속 꼬이면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표면의 관심사는 이라크다. 이라크 침공은 과연 정의로운 전쟁인가. 사담 후세인 이후 이라크는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논쟁은 여러 갈래다. 대세는 그러나 전쟁 불가피론이다. 또 기왕 벌어질 전쟁이면 하루라도 빨리 돌입하는 게 낫다는 조기 개전론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도덕적 선악문제는 별도로 치고, 경제 논리로 따져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때문에 현재의 불안정한 평화는 전쟁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진짜 이유는 그러나 경제 논리에 있지 않다. 다급해진 국제 안보환경이 그 진짜 이유다. 미국이 이라크에 발이 묶여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가 오래 갈 경우 전 세계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는 진단에서다.
그 태풍의 눈이 바로 북한이다. 북한의 핵도발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 미국은 하루라도 빨리 이라크 전쟁을 매듭짓고 그 문제에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전쟁은 행정부나 언론이 암시해 온 것보다 더 가능성이 크다. 곧 있을 이라크 전쟁의 진행과 결말은 상황에 따라 미국을 북한과의 갈등으로 몰아갈 수 있다.”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은 미국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북한 핵위기가 고조되면서 나오는 경고다. 동시에 구체적인 응징안들도 제시되고 있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국지공격(surgical strike)이 그 중 하나다. 문제는 그에 따른 북한의 공격이다. 자칫 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판이니까.
그 대책과 관련해 여러 시나리오가 제시된다. 요체는 선제공격론이다. 필요하다면 전술핵을 사용해서라도 북한의 화력을 일거에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궁극에 있어서는 체제 변화만이 북한 핵위기 해소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 우세해지고 있다.
또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서울과 뉴욕을 선택하라면 한국은 물론 서울을 선택할 것이다. 미국은 그 선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북한 핵이 미국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훗날을 생각할 때 미국의 선택은 북한 공격, 다시 말해 ‘서울 포기, 뉴욕 선택’으로 좁혀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끔찍한 전망이다. 바로 미국이 맞은 딜레마이기도 하다. 당장 공격을 하고싶지만 동맹국 한국의 입장을 고려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시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어쩌면 이라크 전쟁은 테러전쟁의 서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또 다른 시사는 만일의 경우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희생하는 일이 있어도 북한의 핵위협을 분쇄할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이다. 그 강력한 시사가 뉴욕타임스의 윌리엄 새파이어의 최근 칼럼이다.
새파이어는 이 칼럼에서 ‘포스트 유엔 안보리시대’를 내다보면서 아시아지역의 미국 동맹국으로 일본, 호주, 필리핀을 열거하고 한국은 중립국으로 묘사했다. 또 미국의 전략적 이익은 한국은 스스로 방위책임을 지게 하는 한편 핵위협을 하고 있는 북한에게는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미지상군을 한국에서 철수하고 북한을 공격하라는 주문이다. 이는 그리고 ‘미군 철수를 외치고 미국과의 공조를 외면하는 한국’은 더 이상 동맹이 아니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2003년은 대격동의 해다.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1939년과 나란히 비교될 수 있다.” 한 논객의 예언이다. 9.11테러 사태 후 달라진 안보환경, 또 그에 따른 미국의 전략변화를 염두에 둔 말이다. 한 마디로 세계적 변화의 원년이라는 말이다.
북한 핵문제는 9.11사태 이전과 그 해법이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햇볕’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 그 증거다. 더구나 ‘인터넷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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