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亂中日記)를 보면 이순신 장군은 병고를 많이 겪었다. 이런 장군에게 한 명나라 장수는 이렇게 권했다고 한다. 제갈 무후의 양법(禳法)을 한번 사용해 보라는 것이다.
제갈양이 병이 깊어지자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천지신명에게 드렸다는 제사법이 그 양법이다. 장군은 자신을 제갈 무후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겸사와 함께 그 권고를 완곡히 물리쳤다.
’제갈 무후의 양법’이라는 건 한마디로 허구다. 정사가 아닌 연의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픽션으로 꾸민 것이다. 명나라 장수는 당시 유행하던 삼국지 연의가 전하는 허구를 사실로 혼동했던 것이다. 이 충무공 행장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다. 당시 명나라 무장들의 수준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카세트가 있었다. 라디오가 있었다. 팩스가 있었다. 아니, 그 전에는 등사판이 있었다.
모든 정보가 차단돼 있다. 유언비어만 난무한다. 유인물이 나돈다. 등사판으로 민 조야한 유인물이다. 그래도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다. 진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한 세대전 한국 상황이다.
등사판이 카세트로 바뀌었다. 호메이니의 육성이 든 카세트다. 은밀히 나돈 카세트는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이란 회교혁명이 ‘카세트 혁명’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벨벳 혁명’은 라디오 혁명이다.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자유의 소리’가 공산 체제를 안에서부터 붕괴시켰다.
공산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공항이 폐쇄됐다. 방송사가 점령됐다. 역사는 멈추는 듯했다. 그런데 팩스가 있었다. 팩스를 통해 정보가 유통됐다. 외부의 소식이 전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피플 파워’ 앞에 공산당은 결국 주저 앉았다.
정보가 넘쳐 흐른다.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다. 누구나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이 특정정보를 흘린다. 몇차례 반복하면 그 정보는 전 세계로 번진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70%의 한국 가정이 인터넷에 물려 있다. 그 정보의 하이웨이를 타고 엄청난 양의 홍수가 그야말로 광속으로 전해진다. 조야한 등사 유인물을 돌려보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있다. 그런데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람들은 서로 다른 앵글로 사물을 보고 받아들이고 있어서다.
각기 다른 정보 원천에 따라 세상을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정보가 흔할수록 진정한 정보를 얻기 어려운 결과다. 그 와중에 아날로그 세대의 퇴장이 거론된다. 디지털 세대의 부상이 운위된다. 정보 홍수 속에 세대간의 정보격차가 날로 벌어지면서 한국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아날로그 세대는 주요 일간지가 정보의 원천인 기성 세대다. 디지털 세대는 인터넷과 MTV 등이 정보의 원천인 젊은 세대다. 동시에 신화(myth)가 탄생했다. 진리는 디지털 세대의 편에 있다는 환상이다. 대중문화를 점령했다. 인터넷 공간을 주무른다. 그 젊은 세대가 새 권력을 창출했다. 그래서 나온 신화다. 그런데 어딘가 기성 정치권의 아첨이, 또 선동이 묻어있는 것 같다.
그 가능성의 실례가 최근의 국내 보도다. 북한이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10∼20대를 타겟으로 사상 공략을 벌인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특별 공간으로 항일유격대가 다루던 총과 같은 무기’라는 풀이와 함께 대대적인 대남 심리전을 펼친다는 것이다.
라디오가 두려운 북한이다. 자유의 소리가 전파를 타고 북한 주민에게 전달될 때 체제 붕괴는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이 첨단의 정보매체인 인터넷을 통해 남한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블랙 코미디다.
신화 만들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직 디지털 신문만이 강조된다. 새 정부가, 새 권력이 신화 창조에 특히 열심인 것 같다. 그 결과는 참여의 정치가 아닌 ‘편향된 사이버 정치’가 되는 게 아닐까. 인터넷은 그들만의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배타적 공간이 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어 하는 말이다. 교육부총리를 아직도 임명하지 못하고 있는게 그 조짐이 아닌지….
신화는 신화로 끝날 수도 있다. 진실은 하드웨어가 아닌 컨텐츠에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빠르고 편리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거짓 자료를 전할 수도 있다. 그 허구가 드러날 때 신화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 충무공은 명나라 장수의 권고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딴에는 충심어린 권고를 하는데 무식을 꾸짖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교묘히 꾸며낸 이야기는 여러 사람을 현혹시킨다. 그게 충무공의 일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통하는 메시지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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