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명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및 생가
영욕의 정치 역정·업적·관련 자료등 일평생 총망라
지난 12일은 에이브러햄 링컨, 오늘 22일은 조지 워싱턴의 생일이라 연방정부는 2월의 셋째 주 월요일을 대통령의 날 공휴일로 지키고, 올해는 며칠 후면 한국에서도 새 대통령이 취임하니 이래저래 2월은 한인들에게 대통령과 연관이 깊은 달이다. 1960년대에 한국에서 초등학생 정도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남자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통령”이라고 대답했으니 한인 중년 남성중 대통령 꿈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터이나 대통령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 또한 일찍부터 하게 됐을 것이다.
4.19, 5.16이 연달아 터지면서 대통령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배우기에 앞서 그에 관련해 ‘독재’ ‘혁명’’하야’ ‘망명’ 같은 단어들을 먼저 알게 됐고, 이어 ‘유고’ ‘암살’ ‘탄핵’ ‘부정축재’ ‘구속’ 같은 어휘들이 속속 추가됐으니 말이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하나같이 말로가 아름답지 못했던 한국의 대통령들과 달리 미국대통령들은 연방 공휴일은 물론 퇴임 후 자기 이름을 단 기념 도서관까지 지어 가며 사랑과 추앙을 받고 있다. 그것은 ‘탄핵’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의 경우에까지 해당, 1990년에 요바 린다(18001 Yorba Linda Blvd.)에 문 연 ‘리차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및 생가’도 이제까지 250만여명이 방문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일요일은 오전 11시 부터) 여는 대지면적 9에이커의 닉슨 도서관은 아버지 프랭크가 1912년, 레몬밭 한 구석에 우편주문한 자재로 집을 지은 다음 해에 태어난 리차드 닉슨이 미국의 37대 대통령이 되고, 1994년 세상을 뜰 때까지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전시실과 극장, 야외공연장 외에 잘 보존된 생가 및 정원, 닉슨 대통령 부부의 묘역들이 들어서 있다.
지난 17일, 전시실 건너편 빈터에 현재 워싱턴에 보관되어 있는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문서들을 이 도서관으로 옮겨 올 것에 대비한 사무공간 및 새로운 볼거리로 샹들리에, 벽난로, 가구등을 완벽하게 복제한 백악관 이스트 룸등이 들어설 캐서린 B. 로커 센터의 착공식을 가졌으니 1200만달러를 들여 2004년에 완성되면 더 많은 전시 및 대여 시설로 더욱 활발히 이용될 전망이다.
미국 대통령 도서관중 유일한 사설로 주차는 무료이나 입장료로 어른 5달러95센트, 노인 3달러95센트, 8~11세는 2달러(7세 이하 무료)를 내고 들어서면 나오는 넓직한 로비는 결혼, 리셉션, 파티 장소로 일반 대여도 활발하다. 잘 보존된 생가는 물론, 22개 전시장 곳곳에 나이 지긋해 보이는 자원봉사 안내인들이 배치되어 소상하게 설명을 해주며 인터랙티브 비디오, 터치 스크린 모니터등 현대 기술을 이용한 장비들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로비 한쪽으로는 닉슨의 가족 배경 및 이곳 생가에서 프랭크와 해나 닉슨의 5남중 두번째로 태어났으나 농장도 잘 안되고, 방 2개짜리 집에서 4명으로 늘어난 아이들을 키우려니 너무 비좁았는지 9세에 위티어로 이사, 거기서 온 가족이 서비스 스테이션과 마켓을 하며 “가난했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행복한 추억 속에 자라난 닉슨의 1946년까지의 행적이 진열돼 있다.
고교때부터 자질이 출중했으나 형편상 집 근처 위티어 칼리지를 나와 장학생으로 듀크대 법대를 3등으로 졸업하고 금의환향, 위티어에서 제일 오래된 법률회사에 들어가 파트너로 승진, 동네 유지가 된 닉슨이 패트리셔와 결혼하고 1941년 연방정부에 일자리를 얻어 워싱턴 DC로 이사한 후 해군에 지원해 2차 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왔더니 위티어의 친구가 연방의원 입후보에 흥미가 있는지를 묻는 편지를 보내왔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닉슨 대통령의 일대기를 담은 28분짜리 영화가 상영되는 293석짜리 극장을 지나 닉슨 대통령의 주요 업적인 1972년 중국과의 수교를 기념하는 특별전시회가 막 시작된 갤러리로 들어가면 1946년도 연방하원의원 선거운동부터 비롯된 그의 정치 역정이 시작된다. 1947년에만 해도 너무 젊고 무명이라 워싱턴의 한 신문이 “가장 풋풋한 의원님“이라 불렀다는 그는 1948년에는 이미 소련 스파이 알저 히스 사건 수사로 이름을 떨치게 됐고 1950년에는 당당히 상원의원으로 뽑혀, 그 2년후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가 된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196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그 유명한 존 F. 케네디와의 TV 토론까지 하며 접전을 벌이다 석패, 이듬해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하면서 정치 생명이 끝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후 1968년까지의 ‘야인시대(Wilderness Years)’에 전쟁하의 베트남등 아시아와 유럽 40개국을 방문하는 활동 끝에 재기, 1968년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의 과정도 소상히 전시되어 있다.
그 다음 방에 들어서면 모택동과 주은래, 흐루시초프와 브레즈녜프, 골다 마이어와 안와르 사다트, 드골등 10명의 당대 세계 지도자들을 실제 치수대로, 실제 입었던 옷을 입힌 조상과 한국의 고려청자를 비롯, 세계 각국에서 받은 50여점의 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은 베트남전 종전, 중국과의 수교, 미소 정상회담, 중동에 평화를 가져온 캠프 데이비드 협상, 베를린 장벽 와해등 당대의 굵직한 외교 치적들이 전시된 방으로 월남전 미군 포로들이 지니고 있던 묵주, 조악한 월남제 생필품들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7호의 달 착륙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니만치 당시 우주복을 비롯한 우주 프로그램도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고, 당대의 인기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보낸 유명한 피스톨등 미국인들이 대통령에게 보낸 갖가지 선물, 기념품 또한 가득하다.
닉슨이 좋아했다는 백악관내 링컨 대통령 시팅 룸도 재현해 놓았고, 뒷좌석에 그저 의자 두 개가 마주보고 있을 뿐인 전용 리무진도 가져다 놓았으며, 부인 팻 닉슨 여사와 딸 트리셔와 줄리의 웨딩드레스등도 전시돼 있는 다음으로 운명의 ‘워터게이트’ 전시실이 나온다. 까만 바탕에 하얀 글씨로 1972년 6월 17일, 민주당전국위원회가 있는 워터게이트 콤플렉스에서 잡힌 도둑 용의자 5명중 1명이 공화당 및 닉슨재선본부에서 월급을 주고 있던 전 CIA 직원이었다는 것부터 의회에서의 탄핵이 확실시될 때까지 버티다 1974년 8월 9일 사임한 닉슨을 태운 헬리콥터가 백악관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닉슨 측 입장에서’ 조목조목 풀어놓았다.
이어 닉슨이 1991년부터 1994년 사망할 때까지 기거한 뉴저지주 파크 리지에서 사용하던 서재를 지나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등장했던 닉슨의 얼굴 54개를 일별하고 밖으로 나서면 양쪽으로 커다란 팜트리 그림자가 일렁이는 직사각형 못 너머로 닉슨의 생가가 보인다. 생가 바로 옆, 예쁘게 꾸며진 화단 옆 양지바른 잔디밭에 놓인 2개의 까만 대리석이 여기서 태어나 먼길을 돌아 온 닉슨이 아내와 함께 마지막 잠들어 있는 곳임을 알게 한다.
미루어 짐작컨대 어려서부터 대통령의 꿈을 꾸었을 한국의 새 대통령이 부디 5년 뒤 퇴임 때도 사흘 후로 다가온 취임 날의 마음이기를, 그렇게 그 오랜 꿈을 바로 이루기를 기원한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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