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란 세월이 길고도 짧았다. 25일이면 DJ의 대통령 임기 5년이 끝난다. 이 임기가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DJ 5년은 한국사회의 틀을 흔들어 놓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그의 치적은 찬반의 격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DJ와 YS는 인생 역정에서도 비슷한 점과 반대되는 점이 많듯이 임기 말의 모습도 비슷한 점과 반대되는 점이 있다. 개혁을 외치다 개혁은 고사하고 아들을 감옥에 보낸 것이 같고 한 사람은 외환 위기로, 또 한 사람은 대북 불법송금으로 임기 마지막을 먹칠한 것이 같다.
다른 점은 DJ의 햇볕정책이다. YS와 DJ는 취임 초에 똑같이 대북 유화정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YS는 임기 말에 대북 강경 자세를 견지하여 대북, 대미관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편 DJ는 한반도의 전쟁을 방지하고 남북통일 기반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햇볕정책을 계속했다.
햇볕정책은 북한 퍼주기로 시작하여 북한 눈치 보기로 이어졌고 임기 말에는 북한 감싸기로 나섰다. 이런 정책은 다분히 친북적이었으므로 한미 관계에 균열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정책방향이 이렇게 가닥이 잡히자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들이 앞을 다투어 친북 행렬에 가담했다. 정치권력의 시혜를 받으면서 젊은 세대의 취향에 영합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소위 한국 지도층의 성향이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는 결과가 나타났다.
말하자면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노무현 정부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북 자세가 이렇게 달라지는 동안에도 북한은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각종 남북회담과 금강산 관광, 남북 이산가족 상봉, 스포츠 행사등 가시적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군정치를 더욱 강화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핵 개발을 재개하고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남북 화해와 긴장 해소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한편 미국 공화당 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인해 DJ 정부의 햇볕정책은 딜레마에 빠졌다.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북미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가 테러조직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는 미국의 북한 압박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을 감싸고도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 미군철수 등 반미운동으로 번지는 한국내의 반미감정으로 한미 우호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DJ 5년의 결산은 대북 접근과 그로 인한 반미 분위기 형성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유산을 떠 안은 노무현 정부는 한미관계의 재정립이란 과제에 직면했다. 이 시점에서 DJ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다. 햇볕정책이 남북간의 긴장을 해소하고 신뢰를 증진시켜 남북한의 평화 공존에 이바지했고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므로 북한에 인도적 지원과 경제 협력을 계속하고 북미관계가 잘 되도록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북한이 남북회담을 하면서도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햇볕정책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금강산 육로관광을 하고 남북 철도를 잇는 등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에 속아 친북 세력을 키우고 미국을 쫓아내고 남침의 길을 닦아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북한을 경제적으로 돕는 것은 핵무기 개발자금을 대주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적행위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생각이 옳은지는 앞으로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첫 번째 견해대로라면 DJ는 한국에 평화와 통일을 이룩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 번째 견해가 옳은 것으로 나타난다면 DJ는 나라와 국민을 배신한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 북한의 행태를 보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만은 없다. DJ 집권 5년간 남북관계의 추이를 노무현 정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기영 /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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