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테니스 클럽의 여성 회원들과 주말여행을 했다. 회원 한 명이 물어 온 정보에 의거하여 소위 ‘20달러 짜리 1박2일 카지노 투어’를 택했다.
한인 커뮤니티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어렴풋이 들은 바 있지만 우연히 중국 여행사 투어가 걸렸다. 경험자가 이끌어 따라가는데도 의심이 많이 생겼다.
‘설마 숙식까지 제공될까?’ ‘카지노에서 가둬놓고 나가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 ‘어떤 함정이 있지 않을까?’ 등등 끝이 없었다.
동료도 “도박은 안하고 빈민배급소에서 밥 얻어먹고 거지처럼 배회해서 카지노 측에서 싫어한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일침을 놨다. 주변에서도 “아 그 노인대상 투어?”라고 시큰둥해 했다. 타커뮤니티 주관 여행에 대한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쉽다는 블랙잭도 못하고 취미도 없지만 또래의 단체 외출과 몰려드는 세계 군상을 엿보는 재미로 간 라스베가스행은 떠나기 전의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대만족이었다.
첫째 본전이 거의 안 들었으니 큰 기대나 욕심이 없었다. 또 아침 7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저녁 7시 도착까지의 36시간을 자투리까지 잘 이용해서였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운전 걱정 안하고 실컷 카지노 안에서 이틀간 머물렀으니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라스베가스에 자동차로 가면 드는 개스비와 숙식비, 또 약간의 놀이자금으로 생각했던 한도에서 슬롯머신 놀이는 물론 기막힌 메뉴의 유명 쇼와 시내 야간 투어를 값싸게 했다.
또 생각지도 못했던 그랜드캐년 일대 경비행기 관광까지도 했다. 선데이 샴페인 브런치나 부페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패키지 옵션으로 거의 절반 가격인 경비행기 관광에는 그러나 50명중 홍콩 여행객을 포함, 단 4명만이 참가했다. ‘무서워서 어떻게 가냐’ ‘따로 돈이 드니까…’ 등의 이유로 나머지는 카지노에 남았다.
장난감 같은 4인용 경비행기에 올랐다. 비좁은 기내에는 뜻밖에 한국어 안내방송 CD가 있었다. 미주 한인보다는 한국 관광객들이 훨씬 많아서일 것이다.
하늘을 차고 오르니 그 대단한 라스베가스 전체가 금방 손바닥 사이즈로 내려앉았다. 은빛과 옥색, 흑갈색으로 도도한 콜로라도강 허리를 막고 선 후버댐과 댐 건설 인부들로 인해 생성되어 네바다주에서 유일하게 도박이 불법인 위성도시 보울더, 후버댐으로도 미처 조절되지 않아 강줄기를 다른 쪽으로 빼낸 인공 호수 등이 모두 새로웠다.
더욱이 LA서 이틀을 달려가서도 겨우 변죽만 보곤 했던 그랜드캐년의 깊이 파인 속살과 태고 때부터 간직해온 자연의 소리를 가까이서 접하는 기분은 참으로 감미로웠다.
하늘에 떠 있으니 고교 때 멋모르고 주절대던 ‘갈매기의 꿈’이 새삼스레 생각났다. 저자 에릭 시걸이 갈매기를 통해 주장했던 ‘멀리 보기 위해서는 높이 높이 비상해야 한다’는 말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랜드캐년을 전혀 모르면서 다 아는 척하고 평생 살았을 것이다. 일행들과 그런 느낌을 같이 나누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주변을 보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귀를 좀더 열었더니 책이나 강의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 행복감과 함께 밀려든 셈이었다. 또 사물이나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조그만 지식과 스스로 쌓은 벽 속에서 아글다글 하다가 문득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다시 한번 경험한 셈이었다.
직업상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대한다.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긍정적인 면을 먼저 보지만 ‘내가 최고’라는 교만함으로 겹겹이 무장한 사람들에게는 입이 열리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는 존경할 만한 인사들의 폐쇄적 옹고집과 말, 행동으로 인한 상처는 참으로 오래 간다.
작은 테두리 안에서 펄펄 뛰고 타인매도에 전력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은 거울에 비쳐보지 않는 이들을 만나야 할 때는 정말 안타깝다. 조그만 단체조차 사분 오열되고 툭하면 한인 문화에는 문외한인 판사들에게 솔로몬식 판결을 해달라며 법정으로 내달리는 이들이 걱정스럽다.
각자가 발붙인 자리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귀는 크게 열고 눈으로는 좀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같은 노력을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강조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 세상 이치를 알만한 나이에 도달했고, 열린 사회 실현에 밀알이 될 자격과 경험, 지식을 두루 갖춘 노련한 지도급 인사들이 앞서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인 <국제 부장대우>
jungi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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