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끝난후 50대·60대 중년층이 집단 소외감에 빠졌다고 한다. 아직 한두 막은 더 남은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그만 하면 됐으니 내려가라”고 등을 떠밀어 무대 밖으로 내몰린 느낌 같은 것이다. 더 이상 “주역이 아니다”는 인식과 함께 ‘갑자기 늙어버린 느낌’이라고 한 신문은 이 연령층의 심경을 대변했다.
소외감은 한국의 중년층만 겪는 것이 아니다. 몸은 미국에 살아도 심정적으로는 늘 한국에 살던 이곳의 중년층도 한국 대선후 소외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한국인들의 정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아는 것으로 자신했는 데 선거 결과가 전혀 예상밖으로 나온 때문이었다. “더 이상 한국을 모르겠다”며 허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의 중년층, 그리고 정서적 뿌리가 같은 재미 1세 중년층은 말 잘듣는 모범생 같은 세대였다. 정부가 “잘 살아보세”를 기치로 내걸자 산업전사로 땀흘려 오늘의 풍요를 일궈냈고, “무찌르자 공산당”을 교육하자 반공을 지상과제로 수용했으며,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낮아 잘 기르자” 캠페인에 따라 산아제한도 착실하게 했다.
그런데 평생 삶의 지침이었던 이들 가치관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업사회가 정보화 사회로 바뀌면서 산업 전사로서의 경험과 연륜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지식·정보의 우위는 젊은 세대로 역전되었다.
친미·반공은 민족·자주에 밀려 심한 경우 ‘매국노’로 몰리는 수모까지 겪게 되었고, 둘만 낳아 여유롭게 잘 기른 아이들은 너무 개성이 강하고 자유분방해서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중년층은 지난여름 월드컵의 붉은 물결 앞에서 감탄하고, 늦가을 반미 촛불시위를 보며 우려하다가, 연말 대선의 역전극에 당혹해 하며 소외감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년기는 그러지 않아도 소외감이 찾아드는 시기이다. 자신이 낡은 세대로 밀쳐지는 느낌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경험한다. 주부들은 자녀들의 옷을 사기가 어려워지면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10대 자녀를 둔 엄마들의 흔한 불평이다.
“샤핑간 김에 아이 옷을 사오면 열에 아홉은 다시 물러야 해요. 마음에 안든다는 것이지요. 아이가 직접 고르지 않는 한 절대로 아이 옷을 사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까지 나를 필요로 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느낌, 역동적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밀쳐지는 느낌이 소외감이라면 나이먹기는 소외감과 친구가 되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나이들수록 가까이 지내며 포용해야 할 대상이 소외감이다.
욕구 단계설로 유명한 심리학자 에이브라함 마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하였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자기 실현의 욕구이다. 이들 욕구가 생명유지에 가장 기본적인 순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소외감은 욕구의 제3단계인 사랑·소속감의 욕구와 제4 단계인 인정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들 욕구는 한번 채워졌다고 영원히 만족감을 주는 것이 아니어서 문제이다. 배고픈 사람이 한번 밥을 먹었다고 영원히 식욕이 채워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속감이나 남으로부터의 인정도 결핍되면 그때마다 다시 채우고 싶 은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소외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재선에서 실패하고 고향 조지아로 돌아왔을 때 그는 56세였다. 인권과 평화를 내걸고 소신껏 일했지만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냉전시대의 두터운 벽에 부딪혀 여지없이 참패하고 초라하게 고향 농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앞에 놓인 것은 50대 중반의 한창 나이와 100만달러의 빚더미였다고 그는 그의 저서 ‘나이듦의 미덕’에썼다.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권력의 최정상에서 아무 것도 없는 시골로 밀려났을 때 그가 느꼈을 소외감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그 실패한 대통령이 지금 국제적 신뢰를 받으며 중동, 북한, 베네스웰라등 세계의 분쟁지역마다 불려다니고 있다. 소외감에 굴복하지 않고 새롭게 삶을 일군 결과이다. 마 슬로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욕구의 가장 윗단계인 자기 실현을 이룩한 결과이다.
나이 들면서 소외감은 피할 수 없는 숙제이다. 그 앞에서 굴복하느냐, 넘어서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의연하게 홀로 설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하겠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