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연휴를 맘모스 스키장에서 보내기 위해 갔다. 이 스키장은 스키를 타는 남편이나 스노우 보드를 타는 아들아이에겐 안성맞춤의 장소일지 몰라도 운동과 담쌓은 더군다나 감기 몸살로 지친 내겐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스키장에서 가장 가까운 샬레 안의 방이 4개 있는 집을 3박 4일 동안 빌리기로 하였다. 휴양지의 집들이 대개 그렇듯이 한번 빌려주고 한달 페이먼트를 빼려는 듯… 비싼 것은 참겠는데 더운물이 안나와서 고생 좀 하였다. 10명이 지내기엔 좁은 듯 했으나 객지에 나오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
교환교수로 와 있는 남편의 동창과, 남편의 오랜 친구 가족... 세 가족이 모였다. 집 보게를 자처한 나만 믿고 모두들 나가서 놀다가 밥 때가 되면 알아서 들어온다.
아침 먹고 나가서 한바탕 놀고 12시경 들어오면 점심먹이고, 리프트가 닫는 4시에 우르르 들어오면 저녁먹이고. 삼 시 세끼 대식구의 더운밥을 지어 먹이려니 나가려던 병도 다시 들어올 정도로 피곤했다.
책을 보려던 것도 몇 장 못보고 인터넷도 안 된다니 노트북도 소용이 없고 남들 노는 3박 4일을 주방에서만 보냈다.
밥 먹고 나면 6시정도 이니 겨울밤은 길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시내로 나가 영화를 보고 어른들은 남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TV에선 서양인 앵커 남녀와 동양 계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나와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TV를 보던 남편이 “아후~ 답답해 작은 눈” 이런다. 동양 계의 여성을 보고하는 말이다.
잠시 침묵...그러다가 일제히 웃었다. 우리들 중 가장 작은 눈을 가진 남편이 그런 말을 하니 웃겼던 것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다보니 큰 눈에 익숙해진 모양인지…
남편의 작은 눈은 결혼 반대 사유가 되기도 했었다. 결혼 전 이모가 남편의 선을 보고 나서 하는 말이 “왜 작은 눈을 택했냐?” “ 너희 임씨나 우리 이씨 같은 눈이 부리부리하고 시원한데…” “ 저쪽 이씨들은 다 그렇게 눈이 작냐?”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저런 눈은 눈 값을 한단다…” 하며 못 마땅해 했다.
그러자 안 그래도 반대의 구실을 찾던 엄마가 “고 봐라 저런 눈은 성격이 나쁘단다.” 이렇게 비약을 하며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순전히 큰 눈을 가진 사람 쪽에서 하는 편견의 말이었다.
친가나 외가 쪽이 다 큰 눈인 우리 집은 모두가 쌍꺼풀 진 큰 눈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질린? 나머지 홋꺼풀의 가는 눈을 좋아한다.
조금 매서워 보이기도 하고 결단력도 있어 보이는 작은 눈이 그저 허허…사람 좋기만 한 느끼한 큰 눈보다 좋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작은 눈의 남편은 큰 눈을 좋아하는 모양이니 사람은 항상 반대의 것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여러 사람의 야유를 받자 쑥스러운 남편이 “눈 큰 마누라와 오래 살다보니…” 이러면서 얼버무린다.
미국뉴스를 보고 나서 무료함에 대비해 빌려온 ‘야인시대’를 보았다.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드라마…친구가족이 무려 1편부터 16편까지를 빌려왔다.
이렇게 한가한 저녁 시간이 좀처럼 없으니 작심하고 빌려온 것이다. 비디오를 상연하니 교환교수로 온 남편의 동창이 말한다.
한국에서는 남자들만의 밤 문화가 있는데 이곳은 심심하다고… 초저녁부터 비디오를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불평했지만 주최측의 준비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스키장에 와서 열심히 ‘야인시대’를 보는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 내용보다도 남편이 시작한 화제의 연장으로 큰 눈, 작은 눈 찾기에 더 열심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출연한 방대한 드라마여서 눈 크기도 제각각 이었지만 한국사람 특유의 작은 눈은 찾기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동양적인 이미지의 작은 눈… 차분함… 우아함은 별로 없었다.
서구화된 배우들을 보고 나는 조금 실망했다. 화면이 바뀌면 “저기 큰 눈…저기 작은 눈...” 하며 난리들이다 스키장에 눈이 오지 않아 인공 눈이 너무 날카롭고 미끄럽다고 아이들이 불평했는데 “큰 눈 작은 눈” 하다보니 밤사이 진짜 눈이 왔다.
연휴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당을 손질하고 계신 옆집의 잭 할아버지를 만났다. 연세가 81세인 할아버지는 아침에 잠을 깨면 눈꺼풀을 손으로 잡아 올려야 눈이 보인단다.
그래서 처진 눈꺼풀을 당기는 수술을 한다고 들었었다. 환하게 웃으며 쌍꺼풀이 생긴 눈을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커진 눈은 보기 좋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불편하지도 않은 눈을 억지로 고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자연스러운 작은 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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