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홀로 사시는 칠순의 어머니가 이곳에 다니러 오셨다. 가끔 전화를 하긴 해도 어머니의 일상이 궁금했었다. 집 근처의 노인 대학에 다니신다는 어머니는 열심히 출석하고 계시다니, 걱정했던 것보다 씩씩하게 사시는 듯해서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낸다며 딸을 안심시키시는 어머니. 그러나 한편으론 운전기사 노릇을 하던 아버지가 안 계시니 장보기가 여러모로 불편하실 듯 하여 여쭤보았다. 그것도 염려 말란다. 낮 동안에 종일 방송되는 홈쇼핑을 통해 의복이며 심지어 식품까지도 주문 할 수 있어 불편하지 않다고 하신다.
우리 집에 가져오신 의류들과 양털이불, 냉동 자반 생선에 멸치까지도 홈쇼핑을 통해 사오셨다니 엄마는 홈쇼핑에 재미를 붙이신 듯 하였다. 한국에서 수시로 보내주시는 소포뭉치에 들어있는 한국 옷을 별로 입지 않는다고 몇 번 말했더니만, 이번에 가져오신 옷은 한국 옷이 아니라 ‘명품’을 주문해서 가져오셨다고 사뭇 의기양양하시다.
홈쇼핑에도 ‘명품’만 따로 파는 시간이 있다나? 내 말은 옷은 필요 없으니 그만 두시라는 말이었는데...
한국에서나 이곳의 한인타운에서나 요즘 많이 쓰이는 말 중의 하나가 ‘명품’이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갓난아이의 용품에도 ‘명품’이 있다고 자극을 한다.
‘명품’ 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예전엔 진짜 좋은 물건인가 보다 생각이 되면서 신뢰했었다. 요즘 들어서 하도 남발하니 갈수록 이 단어에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의 심리를 묘하게 이용하여 ‘명품’을 안 사면 열등한 사람인 것처럼 몰고 가는 상술.
명품...이런 것은 옷이든 뭐든 거리가 먼 나 같은 사람은 자유로운 편이나, 그걸 못 사면 안 되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한국에서부터 사치가 심했던 듯한 유학생 하나는 공부는 뒷전이고 쇼핑에 전념한다.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가 물건을 훔친 곳으로도 유명한 Saks Fifth Avenue 에 가서 살다시피 하고, 그 앞의 로데오 드라이브가 제 집 마당인양 드나든다.
브랜드 네임의 핸드백에 구두, 썬 글라스 등이 봉지 봉지에 싸여 벽장에 즐비하다. 안 들고 다녀도 쌓인 물건만 보면 흐뭇하다는 쇼핑 광. 예전에 알았던 어떤 아줌마는 비록 원 베드룸아파트에 살망정 생활은 베버리힐스 수준이라며, 미국이름도 Beverly 로 짓고 쇼핑 센터인 베버리 센터를 매일 드나드는 철딱서니 없는 이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답답하다. 아마 평소에 자격지심이 있는 이들이 ‘명품’에 집착을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세태 탓인가? 명품에 목이 마른 사람들...
지난 주일 오후 예배 후 한가한 시간에 성가대원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있었다. 성가대원 중 한 분은 유명하다는 St. John 니트회사의 직원이다.
요즈음 중년여성들의 유니폼처럼 된 의상의 하나가 아닌가? 직원 할인 가격으로 50% 할인 받을 수 있다며 사고싶으면 도와주겠다고 하자, 다들 흥분하여 조그만 소동이 났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권사님이 한마디 하신다. 그런 좋은 옷은 자식들 혼사에 한번 입어보면 된다고... 그럴 여유가 있으면 요즘 같은 계절에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쓰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고... 풍족하게 사는 권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의외였다. 그 옷을 살 생각도 안 했지만 듣고 있던 나는 공연히 부끄러워졌다.
‘명품’의 물건으로 도배하고 다니는 이가 명품이 아니라 옳은 생각을 가지고 사시는 그런 분이 ‘명품’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들떠있고 유혹적인 소비의 계절에 자신을 지키며 정신을 가다듬어 스스로가 ‘명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자신이 명품이면 명품 옷이나 명품 액세서리가 필요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명품 인간’이 되는 길은 경제적으로 사는 지름길이기도 하겠다.
온갖 화려함이 난무하는 동창회 파티에, 아울렛에서 20불 주고 산 블라우스로 훌륭히 멋을 낸 ‘명품 친구’는 근래에 나를 즐겁게 한 사람 중 하나이다. 바르게 살아 ‘명품 인간’의 대열에 끼고 싶은 것이 간절한 새해 소망이다.
이정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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