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한 자세로 큰절 올려
나흘 앞으로 다가온 신정 풍습
남자 왼손, 여자 오른손을 위로 포개
한복 입지않은 여자는 평절로 대신
나흘만 지나면 신정이다. 연말연시는 매번 추위 속에서 가고 오지만 새해는 봄처럼 따스하게 맞고 싶은 소망으로 주부들의 일손은 세모에 더욱 부지런하다. 특히 2003년은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인 만큼 그 첫날을 전통 예법에 맞게 지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원래 설이라 하면 구정을 말하지만 이민사회에서 친지들이 모여 평일인 구정설을 쇠기란 쉽지 않아 1월1일 새해 첫날에 떡국도 먹고 세배도 올리며 설 기분을 누리는 것이 보통이다. 예로부터 설날 아침엔 온 식구가 일찍 일어나 새로 지은 설빔으로 단장하고 새날을 맞았다. 일가친척이 종가에 모여 조상께 차례를 지낸 후 아이들이 세배를 올리면 어른들은 세뱃돈과 함께 밝고 희망찬 덕담을 들려준다. 세배가 끝나면 순수무구의 뜻으로 새하얀 떡국을 먹고 어른들은 귀가 밝아진다는 귀밝이술(이명주)도 한잔씩 마셨다.
방문객들에겐 세찬을 대접하고 방 귀퉁이나 부엌엔 복조리를 걸어 한해의 복을 기원하며 윷놀이, 연날리기, 제기차기로 남녀노소 모두 떠들썩하고 흥겨운 하루를 보냈다.우리 이민 선조들은 이처럼 아득히 그리운 고국의 전통을 이 땅에서 되새기고 싶었어도 환경적 뒷받침이 안돼 퇴색해 가는 기억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요즘 한인타운은 한국으로 착각할 정도로 한복이나 차례·설상 차림 재료 등 많은 것을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반드시 온 식구가 한복을 갖춰 입지 않고, 또 차례도 추모예배로 대신하는 가정도 많지만 어른들께 세배 드리고 떡국으로 한 살 더 먹는 풍속만큼은 어느 가정에서나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기리는 것 같다. 성별에 따라, 경우에 맞는 세배법과 기본적으로 갖추는 설상 및 세찬에 대해 알아본다.
■세배
모든 절 예법과 같이 어른들께 큰절로 첫 인사를 하는 세배도 공수법이 기본이다. 공수란 어른 앞에서나 의식행사 참석시 ‘공손하게 손을 맞잡아 예를 갖추는 한국 전통의 예의 자세’다.
등대예절한국학교와 가든그로브 세계어린이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이재정 원장은 “절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공수를 소홀히 하면 큰 결례를 범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상가에서의 공수는 평소와 반대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설날 세배는 큰절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여자의 경우 한복을 입지 않으면 앉을 때 모양이 보기 좋지 않아 평절로 대신한다”고 전했다.
근 10년간 해외 한인 2세 자녀들과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다도, 고전무용, 붓글씨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예법 및 문화를 가르쳐 온 이 원장이 새해를 맞아 전해 주는 전통 세배법을 소개한다.
▲공수법
공수의 기본 동작은 두 손의 손가락을 가지런히 편 다음 앞으로 모아 포갠다. 엄지손가락은 엇갈려 깍지끼고 검지 이하 네 손가락은 붙여 포갠다. 평상시에는 남자는 왼손이,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게 하되 흉사시에는 남녀 모두 평상시와 반대로 한다.
▲남자의 큰절
왼손을 오른손 위로 포개어 공수한 자세로 절할 대상을 향해 선다. 허리를 굽혀 공수한 채로 바닥을 짚는다. 왼쪽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 무릎을 가지런히 꿇는다.
왼발이 오른발 아래 깔리도록 발등을 포개어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가 다리에 닿도록 깊이 앉는다. 팔꿈치를 바닥에 붙이며 이마를 공수한 손등에 대고 절한다. 이때 엉덩이가 들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1∼2초간 머물렀다가 일어선다. 일어설 때는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우고 공수한 손을 바닥에서 떼어 세운 오른쪽 무릎에 얹는다. 오른쪽 무릎에 힘을 주며 일어나서 왼쪽 발을 오른 발과 가지런히 모아 바른 자세로 선다.
▲여자의 큰절(한복 입은 경우)
오른손을 왼손 위로 포개어 공수한 자세로 절할 대상을 향해 선다. 손을 어깨높이에서 수평이 되게 올린다. 한복을 입고 팔꿈치를 너무 높이 올리면 겨드랑이가 보여 흉하다. 고개를 숙여 이
마를 공수한 손등에 댄다. 왼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 무릎을 가지런히 꿇어앉는다. 여자도 무릎을 세우지 않으며 남자와 반대로 오른발이 왼발 아래 깔리도록 발등을 포개어 뒤꿈치를 벌리고 깊이 앉는다.
여자들은 족두리 등 머리에 장식을 얹은 경우에 대비해 세배를 할 때도 상체를 앞으로 반쯤(45도)만 굽힌다. 이때 손등이 이마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1∼2초간 머물렀다가 윗몸을 일으키고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워 일어나면서 왼발을 가지런히 모아 선다.
이때까지 손은 그대로 이마에 붙이고 있다가 반듯하게 선 후 공수한 채 손을 내려 앞에 모으고 고개를 반듯이 세워 바른 자세로 선다.
▲여자의 평절(평상복 입은 경우)
공수한 채로 절할 대상을 향해 선다. 공수한 손을 풀어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내린다. 왼쪽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쪽 무릎을 왼 무릎과 가지런히 꿇는다. 오른발이 왼발 아래 깔리도록 발등을 포개며 뒤꿈치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려 깊이 앉는다.
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여 모아서 양 손끝이 밖을 향하게 무릎과 가지런히 손바닥을 바닥에 붙인다. 윗몸을 반쯤(45도) 앞으로 굽혀 절하는데 이 때 엉덩이가 들리지 않아야 하며 어깨가 치솟아 목이 묻히지 않도록 팔굽을 약간 굽혀도 괜찮다.
1∼2초간 머물러 있다가 윗몸을 일으키며 오른쪽 무릎을 먼저 세우고 손끝을 바닥에서 뗀다. 일어나면서 왼발을 오른발과 가지런히 모은다. 공수하고 바른 자세로 선다.
▲절 예법
누워있는 어른에게는 절대 절하지 않는다. 절을 받을 어른이 ‘절하지 말라’고 사양하면 하지 않는다. 찾아 온 웃어른에게 방안에서 절을 할 때는 어른이 자리에 앉은 후 절을 한다. 어른에게 ‘앉으세요’, ‘절 받으세요’ 등 명령조의 말을 하지 말고 ‘인사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다.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존중하는 표시로 답배하기도 하는데 상대가 성년일 때는 제자나 친구의 자녀, 자녀의 친구, 또는 연하라도 보통 반절로 답배한다. 세배를 올린 후엔 어른이 앉으라고 해야 앉는데 절할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왼쪽 무릎을 꿇고 다음에 오른 무릎을 꿇으며 손은 공수한 채 무릎 위에 얹는다.
▲말인사
세배할 때는 아무 말 없이 절만 하는 것이 옳다. 많은 사람들이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절하기 전이나 세배를 하는 도중에, 또는 하고 난 직후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엄밀히 예법에 어긋난다. 세배는 절하는 자체가 인사이므로 아무 말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은 그저 어른의 덕담과 축복의 말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단 덕담이 끝난 후나 또는 세배를 했는데도 덕담이 곧 이어 나오지 않을 땐 어른께 말로 인사를 할 수 있다. 적당한 인사말로는 ‘만수무강 하세요’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도가 좋고 어린 자녀들이 조부모에게 할 땐 ‘오복 누리시고 저희를 잘 보살펴 주세요’도 좋다. 흔히 건강에 대한 인사말을 많이 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많이 늙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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