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나이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그 사람의 손이다. 얼굴이나 체격은 가꾸고 단련해서 나이 보다 젊게 만들 수가 있지만 손은 나이를 감추기가 어렵다. 살아온 날들의 양과 질의 흔적이 손바닥과 손등, 각 손가락의 세세한 결을 이루며 피부로 고착된다.
사람의 생애는 손의 행적이라고 할수 있다. 손으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하는 것 이외에 우리가 손 몰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마음이 손에 실려 행동으로 표현되고, 행동이 모여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이 된다.
연말이 되면서 그 손들을 기다리며 하루종일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 LA 한인타운의 큰 수퍼마켓들 앞에 구세군 나성영문교회가 올해도 자선냄비들을 내걸었다. ‘딸랑딸랑’종소리에 마음이 열려서 손들이 자선냄비로 뻗었으면 좋겠는데, 연말 분위기가 채 무르익지 않아서일까, 아직은 외면하는 사람이 더 많다. “경기침체 때문에 대체로 손이 움츠러드는 것 같다”고 봉사자들은 전한다.
기부금 손길이 줄어 고심을 하기는 미주류 사회 자선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증권시장이 무너지면서 대기업들이 기부금액을 대폭 삭감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의 경우 대기업들 자선기금은 전년도에 비해 14.5%나 줄었다. 그래서 9.11 참사가 터진 후 피해자 돕기 성금이 단일 프로젝트로는 미역사상 최대액수인 19억달러나 걷혔는데도 연간 총 자선기금 액수로는 전년도에 비해 오히려 2.3%가 떨어졌다.
경제가 지지부진한 올해는 작년 수준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는데 도움을 줄 재원은 더 말라버려 자선단체들은 이중으로 애가 탄다.
그렇다면 경제적 여유와 자선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인심은 정말로 곳간에서 나는 것일까. 자선냄비 옆에서 종을 치며 봉사해본 사람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나성영문교회 이설주 사관의 관찰로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사람에게는 손이 둘밖에 없지요. 샤핑을 잔뜩 해서 양손에 샤핑백을 여러개씩 든 부유한 사람들은 자선을 위해 지갑을 열 손이 없더군요. 그런데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서 한손에만 샤핑백을 든 사람들은 자선냄비에 돈을 넣어요”
‘곳간’ 보다는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는 ‘가슴’이 있을 때 자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비심이다. 달라이 라마는 자비심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 가진 존재의 고통을 볼 때 생기는 견디기 힘든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자식이 고통받을 때 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바로 그 정수이다. 자식의 고통에 내가 더 견디기 힘들어서 무의식적이고도 본능적으로 보살피다 보면 자식이 고통에서 놓여나면서 내게 넘치는 행복감, 정도는 덜하겠지만 자선, 베풂, 혹은 봉사를 통해 얻는 대가가 그런 기쁨일 것이다.
무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에 오래 참여해온 한 주부는 ‘베풂의 기쁨’을 이렇게 말했다.
“피곤하고 귀찮아서 한번쯤 빠질까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참고 나가서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고 나눠주고 하다보면 얼굴에서는 땀이 솟고 가슴에서는 기쁨이 솟아요. 배고픈 그들이 배부를 것을 생각하니 기쁜 것일까, 내가 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아도취적 기쁨일까 많이 생각해보았어요. 그 보다는 더 근원적인 어떤 느낌이에요”
깊은 산속에서 자연에 둘러 싸여있을 때, 혹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을 때 찾아드는 가없는 평온함 같은 것 - 그는 그것을 ‘합일’의 체험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웃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며 한몸을 이루는 느낌이다.
그런 평온은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유지시켜준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와있다. 최근 미시간 대학 사회연구소가 420여쌍의 노인부부들을 대상으로 5년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남에게 잘 베푸는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장수할 가능성이 2배에 달한다.
모두가 똑같이 둘씩 가진 손이지만 그 손으로 하는 행위는 천차만별이다. 남을 돕는 손이 있고, 해치는 손이 있으며, 안아주는 손이 있고, 때리는 손이 있다. 자비심이 담긴 ‘아름다운 손’들이 올 연말에는 특히 많이 필요하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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