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집 같은 건 절대로 안할 겁니다”
출근길에 들은 전국공영 래디오(NPR) 방송에서 한 남성이 인터뷰 중에 한 말이다. 그는 거동이 불편한 독거 노인들의 집을 전문적으로 청소하는 시 공무원이다.
노인이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무엇이든 버리지를 못하고 간직하는 버릇이다. 평생 몸에 밴 검약정신도 있고, 물건에 얽힌 추억들도 소중해서 빈 병 하나, 낡은 액자 하나도 버리지 않고 쌓아두다 보면 노인들 집은 대개 ‘골동품 가게’가 되고 만다. 거기에다 혼자 살던 노인이 노환으로 거동까지 불편해지면 집안은 문자 그대로 거대한 쓰레기통이 된다. 쓰레기가 썩어 악취와 독성을 내뿜고 쥐들이 잔치를 벌여 거주자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환경이 불결해지면 시정부가 청소를 해주는 도시들이 있는데, 인터뷰의 남성은 바로 그런 시의 청소직원이었다.
“거실에서 침실로 통하는 복도가 완전히 쓰레기 더미로 막혀 있는 집들도 있습니다. 쓰레기를 쳐내며 보면 봉투도 뜯지 않은 우편물부터 몇 년동안 쌓인 신문, 수십년된 영수증까지 … 숨이 콱콱 막힙니다”
모두가 한때는 집주인이 필요로 하고 소중해서 모았던 물건들일텐데 그 물건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결과적으로 주인을 질식시키는 감옥이 되고 말았다. 쓰레기를 모두 내다 버려 빈 공간이 생기면서 통풍이 되면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집주인도 마침내 생기를 되찾는다.
물건 즉 ‘소유’에 대한 애착으로 ‘존재’가 위협 당하는 상황이 이런 노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더 많이, 더 빨리 소유를 늘리기 위해 헉헉거리며 사는 우리 모두와 무관하지 않을 것같다. 모으고 쌓을수록 만족감보다는 아직 못 가진 것, 더 채워야 할 부분들에 대한 갈증만 커지는 것은 대개가 경험하는 바이다. 이 세상이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라는 간디의 지적은 그래서 참 옳다.
친구 중에 지난 한해 건강이 나빠져 많이 고생한 친구가 있다. 전문직의 남편과 반듯한 두 아이와 함께 바닷가 부촌에서 안정된 삶을 사는 중년여성이다. 동년배에 비해 일찍 자리를 잡았으니 별로 부러운 게 없어야 마땅할 터인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언젠가는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고 멋진 저택에서 기어이 살아보리라는 꿈이 있었어. 우리 동네엔 좋은 집이 너무 많잖아. 오픈 하우스 하는 집마다 찾아다니며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들을 구경하다보니 욕심이 생기는 거야”
그런 물질적 욕심, 그리고 일 욕심에 손으로는 이 일을 하면서 머리로는 다음 일을 생각하는 팽팽한 생활을 하던 중 몸이 돌연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반기를 든 것이었다. 몇 달을 병으로 고생한후, 일을 대폭 줄이고 ‘무엇이든 천천히’를 기본자세로 살아가는 요즈음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고 그는 말한다.
“욕심을 버리고 나니 모든 게 감사해. 밥 먹는 것, 산보하는 것, 하다 못해 빨래 접는 일까지 일상의 어느 것 하나 하찮은 게 없고 감사하지 않은 게 없어”
건강을 잃고 나니 그 빈자리에 감사와 행복이 찾아든 것은 아이러니이다. 쓰레기 더미가 된 노인들의 집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나면 통풍이 되면서 한줄기 바람이 집안을 환기시키듯 감사도 그런 게 아닐까 - 숨막히는 탐욕에서 벗어나면 신의 선물처럼 찾아드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같은 것, 그래서 의미 없어 보이던 일상생활에 갑자기 생기가 돌게 하는 것.
“한인들, 벤츠 탈만 하면 쓰러진다”는 말들을 한다. 열심히 일해서 이제 살만한 데 40대, 50대 한창 나이에 병을 얻거나 생을 마감하는 일이 실제로 심심찮게 일어난다. 삶의 초점이 ‘성취’와 ‘소유’에 너무 맞춰져 있었 던 게 아닌가 안타까움이 드는 경우들이다.
삶에서 만족을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갖고 싶은 것을 모두 갖는 것, 혹은 현재 가진 것에서 가치를 찾고 감사하는 것. 시인 도종환은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단풍 드는 날’ 중)고 단풍을 노래했다. 우리가 버려야할 욕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 그래서 지금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순간 우리의 삶도 단풍처럼 아름답게 불타지 않을까 - 감사의 계절에 생각해 본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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