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퇴근 시간이면 일주일에 서너번은 짜증이 난다. 학교들이 개학한 9월이후 교통량이 갑자기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 사고도 잦아서 프리웨이가 툭하면 거대한 주차장으로 바뀐다.
빽빽이 밀린 ‘자동차의 바다’ 속에 갇혀 무력하게 앉아있을 뿐인데, 그런 특징 없는 시간 속에 이따금 빛나는 ‘손님들’이 찾아들 때가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사선을 그리며, 혹은 V자를 이루며 여유롭게 날아가는 철새떼이다.
낮의 길이가 완연히 짧아지는 9월말, 10월이면 동물원에서는 조류 우리쪽이 갑자기 어수선해진다고 한다. 땅거미 지는 일몰 때마다 웬일인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대는 새들이 있기 때문이다. 큰고니, 쇠기러기, 재두루미, 청둥오리, 붉은부리 갈매기, 쑥새 … 모두 겨울 철새들이다. 수백만년전부터 조상 대대로 유전자에 각인되어 내려온 월동기의 이동 본능이 열병처럼 그들을 들쑤셔 놓는 탓이다.
떠나고 싶어서, 다른 곳으로 소속을 옮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 무리가 또 있다. ‘철새’라고 불리는 사람들 - 한국의 정치인들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르르 떼지어 당적을 옮기고, ‘어제의 적’이 거리낌없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이합집산의 계절, 변절의 계절이 또 돌아왔다.
민주당 대변인으로 이회창 공격의 선봉에 섰던 사람이 돌연 한나라당에 들어가 “이후보 집권에 앞장서겠다”는 맹세를 한데 이어, 이런저런 명분들을 내세우며 탈당하고, 반대편 당의 일원이 되고, 아니면 새로 또 당을 만드는 어지러운 정국이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소속 당 바꾼 것을 문제 삼으면 한국의 정치인중 떳떳한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정치인의 당적 옮기기는 배신으로 볼 수없다”는 궤변까지 등장했다. ‘철새 정치’‘철새 근성’‘철새 행각’등 ‘철새’가 대 수난을 겪고 있다. 철새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철새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미국에서도 결혼식에 전통혼례의식을 추가하는 한인가정들이 늘고 있다. 한국의 전통혼례는 전안례로부터 시작된다. 신랑이 신부 측에 나무 기러기를 바치는 의식이다. ‘기러기’는 아무리 먼길을 가도 절대로 한눈을 팔지 않는 일편단심을 상징한다.
기러기는 한국의 대표적 겨울 철새. 시베리아 극동부에 사는 기러기들이 늦가을이면 2,500여마일을 날아와 한반도 중남부에서 겨울을 난다. 그 새들이 그 먼길을 오면서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지 않고, 목적지만을 향해 곧장 온다는 사실을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기러기를 혼례의식의 맨 앞에 내세웠다.
기러기만 일편단심인 것이 아니다. 모든 철새들은 그러하다. 그래서 이동의 시기와 경로, 장소가 예견가능한 것이 철새들의 특징이다. 태양의 위치나 별자리, 혹은 지구의 자기장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아 오직 한마음으로 목적지를 향한다.
철새의 특징으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목숨을 건 인내심이다. 북극권에 사는 흰두루미의 경우 월동지인 멕시코만까지 30여일을 날아간다. 이들은 그래도 중간중간 먹고 쉬며 날기 때문에 나은 편이지만 목적지까지 한번도 쉬지않고 날아가는 지독한 새들도 있다.
동전 한닢 정도의 무게인 벌새의 경우 미국 동부지역에서 중남미까지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해상 500마일을 한번도 쉬지 않고 날아간다. 최장거리 이동 철새로 꼽히는 것은 북극 제비갈매기. 북극에서 남극까지 1만마일이 넘는 길을 이동한다. 그 먼길을 가는 동안 폭풍우나 역풍을 만나기도 하고 단순히 기력이 다하기도 해서 많은 수가 떨어져 죽는다.
새들이 왜 그 위험하고 힘든 이동을 반복하는지는 조류학자들에게 아직도 의문이다. 번식지에 겨울이 도래해 먹을 것이 없는 경우는 이동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월동지인 남쪽지방은 사철 먹이 풍부하고 온화한 지역인데 왜 굳이 북쪽으로 돌아가는 지를 알수가 없는 것이다. 목전의 이익 때문에 쉽게 저버릴 수 없는 어떤 확고한, 숙명적인 삶의 원칙이 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정치가 발전하는 길은 한가지뿐이다. 별명만 ‘철새’인 정치인들이 철새들의 분명한 원칙, 목표 의식, 일편 단심, 인내심을 배워서 진짜 철새같은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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