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근 20년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말단직원이라면 어떨까. 입사동기들은 과장도 되고 부장도 되는데 혼자 뒤떨어져 까마득한 후배들과 같은 직급이라면 그 남편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일에 대한 소신 때문에 승진의 길을 자진해서 거부했다고 한들 그걸 누가 알아줄 것인가. 남의 시선이 의식되어서라도 바가지를 긁을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아내’의 심정일 것이다.
그런 별볼일 없는 남편, 만년 말단 샐러리맨이 노벨상을 탄다.
세계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노벨상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 높고 먼 상이다. 매년 이맘때면 발표되는 각 분야의 수상자들은 너무 탁월하거나, 너무 훌륭해서 감탄과 존경의 대상은 될망정 가슴에 와닿는 친근한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시장보다 마주칠 것같은, 옆집 사는 이웃같은, 여자들 모여서 남편 흉볼 때면 단골로 도마에 오를 것같은 ‘보통 사람’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박수갈채를 보낼만한 신나는 일이다.
2002년도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중 한명인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43)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 주변의 주된 평가이다. 언론이 그의 ‘평범성’에 지나치게 포커스를 맞췄는지는 몰라도 수상소식을 전해들은 직후 그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재미 있다.
우선 다나카 자신. “영어로 ‘노벨’ 어쩌고 하는 데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었다. 스웨덴에 비슷한 이름의 다른 상이 또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여우에 홀린 것같다”
가족과 회사측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동명이인 아니냐?”고 물었고 회사측은 “우리 다나카 맞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겉으로 볼 때 그는 사실이지 평범하다. 대학 나와서, 그것도 낙제해 1년 늦게 졸업해서, 일류회사 소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떨어지고, 지금의 시마즈 제작소에 입사해 전공인 전기공학과는 전혀 다른 생화학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그의 경력이다.
평범하지 않은 점을 짚는다면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다”며 승진시험을 거부해 만년 주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이번 수상은 그가 28살때인 1987년 실험중 우연히 단백질등 생체 고분자의 분석방법을 발견한 것이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은 결과이다.
그의 수상은 기쁜 일이지만 일본 사회나 시마즈 제작사는 지금 좀 당황해 있다고 한다. 노벨상을 탈 만한 재목을 못 알아보고 썩힌 데 대한 부끄러움이다. 만년 승진 못하는 그를 ‘미운 오리새끼’쯤으로 무심히 여겼는 데 알고 보니 ‘백조’였던 것 이다.
왜 아무도 그의 비범함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주임’이라는 낮은 직급이 모두의 눈을 가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드러난 ‘라벨’로 그 사람의 능력전체를 속단하는 오류이다. 그것은 자녀를 키우면서 우리가 저지르는 흔한 실수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이 성적표의 C 하나가 우리를 그렇게 열받게 하는 것, SAT 점수가 오르내릴 때마다 감정의 기후가 금방 맑았다 흐렸다 하는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나 교육열 때문만은 아니다. 한가지 측정치로 아이의 능력을 단정하는 고정관념의 결과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좀 다르게 해석해보자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기 주제를 알고 행동하라는 충고 대신 자기 안에 숨겨진 잠재적 능력, 독특한 개성, 비범함을 스스로 찾아보라는 권고로 받아들여 보자는 의견이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교수의 다중지능 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주장이다.
다중지능 이론은 인간의 지능이 전통적 수학지능, 언어·논리지능으로 국한되지 않고 음악, 운동, 공간이해, 대인관계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는 내용이다. 학교 공부는 잘 못해도 운동실력이 뛰어나거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뛰어나면 그 또한 탁월한 지능이라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같은 운동선수, 간디같은 지도자가 그래서 모두 천재로 분류된다.
자녀가 ‘얼마나 똑똑한가’ 대신 ‘어떻게 똑똑한가’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런 눈으로 보면 아마도 공부 못해 속썩이는 우리의 ‘미운 오리새끼’들중 상당수가 ‘백조’일 것이다. 만년 주임이 노벨상을 타지 않는가.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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