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칼럼 ‘남편은 돈버는 기계인가’를 쓰면서 마음에 걸리는 게 없지 않았다.
가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 구조의 우리 가정이 부부가 동등한 위치에 서는 수평 구조로 바뀌어 가면서 억눌려 지내던 여성들이 차츰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은 바람직한 발전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도 불구, 가족부양 의무에 있어서는 여성들이 여전히 ‘조수’로 안주하는 경향이 있고, 간혹 남편의 경제적 책임을 너무 당연시하며 자신은 권리만 누리려드는 여왕벌 같은 여성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들이 지난 한 세기를 투쟁한 목표가 남녀평등인데 가정 내에서 이를 실현하려면 입에 단 권리 뿐 아니라 삼키기 쓴 책임도 남편과 동등하게 분담하려는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칼럼의 내용이었다.
그것이 타당한 지적이라고 해도 그런 지적을 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직장일과 가사의 이중멍에에 매여 일에서 헤어날 틈이 없는 이민1세 여성들의 수고를 부당하게 가볍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 염려되었다. 염려는 금방 현실로 드러났다. 여성독자들이 이의를 제기해왔다. 남편을 ‘돈 버는 기계’로 여기는 여성의 의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그 보다 먼저 아내를 ‘일하는 기계’로 여기는 남편들의 의식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돈버는 기계로 여기기엔 우리 남편은 너무 성능이 안 좋아요”라는 농담도 있었지만 몇몇 여성들은 ‘요즘 남편들의 이기주의’를 진지하게 성토했다.
LA 근교에 사는 한 40대 주부는 미국회사에서 10여년 근무하다 손목관절을 다쳐 직장을 그만 두었다. 미국서 교육받지 못한 이민1세에게 취업기회는 단순노동직으로 제한되기 마련이므로 손목을 못 쓴다는 것은 결정적 핸디캡이었다.
“풀타임 직장은 다시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집에서 쉴 형편이 못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닥치는 대로 했어요. 파트타임 일들이지만 대신 아이들을 직접 돌보며 하자니 잠시도 쉴 틈이 없지요. 풀타임 일할 때보다 몸은 더 고단한데, 남편은 (나의 수고를) 전혀 인정해주지 않아요. 돈 잘 버는 다른 집 부인들을 들먹이면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곤해요”
“남성들은 아내가 집에서 살림만 하기를 바란다”던 것도 옛말이라고 여러 주부들은 지적했다. “특히 미국에 와서 사는 한인남성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중적이다”고 그들은 말했다.
“아내가 남편을 가장으로 받들며 알뜰히 살림하기를 바랄 때는 한국식이지요. 하지만 돈이나 일에 있어서는 미국식이에요. 미국에 오면 여자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지난 25년동안 계속 일을 했다는 중서부 지역의 한 주부는 자신이 “가정부보다도 못한 것 같다”고 했다.
“퇴근하면 남편은 거실에서 TV나 신문을 보며 쉬지만 나는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요. 부랴부랴 저녁식사를 차리면 남편은 와서 먹고 다시 거실로 향해요. 혼자 남아 밥을 먹고 부엌일을 하다보면 처량한 생각이 들어요.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하면 월급이나 받지만 나는 밖에 나가 돈까지 벌어오면서 가정부 일을 다 하니까요”
그 주부는 이민1세 여성들이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일을 끌어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1세 여성들은 노동집약적인 영세 자영업을 많이 하는 데 그런 단순노동을 10년 20년씩 하다보면 지쳐서 직업적 긍지를 갖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이가 50쯤 되면 직장과 가정의 이중 노동이 힘에 부쳐서 형편 만 되면 몸을 쉬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착하디 착한 남편을 ‘돈 버는 기계’로만 여기는 못된 아내, 헌신적 아내를 ‘일하는 기계’처럼 부려먹는 나쁜 남편은 실제로 많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내 몸 좀 편할 이기심에 남편의 돈 버는 수고, 아내의 일하는 고단함을 슬며시 못 본척하는 것이 대부분 부부들의 모습일 것이다. 한 주부는 말했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남편이 따뜻하게 감싸주면 여자들은 견디지요”
남녀 모두를 ‘기계’로 만드는 것이 이민생활의 현실이라면 해결책은 한가지뿐이다. 윤활유를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고마워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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