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富)는 소수 개인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Real wealth is in the hands of a few individuals-‘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막강한 재력과 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국내 최대의 부호(富豪) 세력은 누구며 이들의 금융자산 규모는 과연 얼마나 될까. 국내 기업들의 창업 1세대로 꼽히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 고 구인회 LG 회장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등 국내 최대 4대그룹 오너 가족들이 보유한 금융자산 평가액은 5월말 현재 총 14조2,920억원으로 국내 100대 부호 가들이 소유한 전체 금융자산 (추정금액 22조9,750억원) 규모의 절반을 넘는 6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주주 지분정보 제공 업체인 ‘에퀴터블’(www.equitable.co.kr)이 대주주들이 보유한 상장 등록 주식의 주가와 비상장 등록 주식의 평가액을 합산, 최근 발표한 ‘2002년 한국의 100대 부호’ 현황 분석 결과 드러났다.
누가 외환위기 이후 ‘재벌’이 해체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민의 정부 이후 지난 5년 동안 재벌, 즉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소유 집중과 시장 독과점 등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법적 규제가 이뤄졌지만 국내 최고 100대 부호 리스트에는 재벌 오너 가족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오히려 젊은 재벌 2·3세들의 개인재산 규모는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어 재벌간의 ‘부의 분배’는 사회에 대한 환원보다는 물보다 진한 혈연으로 이뤄진다는 가족중심의 분배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 1조 7,000억원 대로 1위
국내 최고의 부자는 역시 ‘1등 주의’ 삼성그룹의 이건희(60) 회장으로 그 재산 평가액만 자그마치 1조7,370억원 대에 이른다. 이 회장의 재산 포트폴리오 중 가장 큰 부분인 삼성전자 주식 300여만 주(2.01% 상당)는 현재 주당 37만원대에 거래되어 총 시가만도 1조1,000억원 대에 달한다. 이 회장의 입장에선 액면가 5,000원을 고려할 때 무려 7,400%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이 회장은 올 가을 새로 출범하는 삼성장학재단에 이 중 약 10%에 해당하는 주식을 출연할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현재 2세 승계작업을 진행 중으로 이 회장의 금융자산은 향후 상당부분 이재용(34·6위·7,720억원) 삼성전자 상무보에게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점을 맞고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비상장 계열사들을 통하여 삼성그룹에 대한 2세 승계 작업이 상당 부분 진전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삼성전자의 최대주주 자리는 현재 0.77%의 지분을 보유한 이 상무보에게 넘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100대 부호 리스트에는 이 회장의 직계가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부진(32·호텔신라 기획팀 부장대우)·서현(29·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윤형(23·이화여대 3년)씨 등 딸 3명 모두가 나란히 공동 87위로 각각 870억원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또 홍라희(57·호암미술관장)여사 역시 14위로 4,440억원의 금융자산을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의 2세 경영인 ‘작은거인’ 신동빈(47) 부회장의 약진도 눈부시다. 신 부회장은 이 삼성회장의 뒤를 바짝 쫓는 국내 최대부호 2위로 추정 재산액만도 1조100억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위에 대한 추격속도도 만만찮다. 신 부회장과 이 회장과의 격차는 약 7,000억 원대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특히 신 부회장은 비 상장기업인 롯데쇼핑 30만 주(21.74%, 약 4,300억원 상당)가 재산 포트폴리오 중 가장 큰 부분으로 상장될 경우 단숨에 수천억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신 부회장은 향후 신격호 회장의 다른 롯데 주식을 물려 받을 것으로 보여 조만간 국내 최고 부호의 왕좌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 패밀리로는 신격호 회장의 장남이자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인 신동주(48·9,710억원) 롯데알미늄 이사가 국내 최대부호 3위, 신회장의 딸 신영자(60·1,410억원) 롯데백화점 부사장이 45위에 각각 올랐다.
한편 신격호(80)회장은 총 8,760억원으로 국내 최대부호 5위를 지키고 있다.
국내 최고 부호의 자리 뿐 아니라 최고 패밀리의 자리를 놓고 삼성과 롯데가(家)의 경쟁은 치열하다. 비교적 가족관계가 단촐한 삼성과 롯데가는 3월 기준 추정 재산액이 각각 3조2,000억원과 2조5,000억원으로 1,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5월말 현재 그 차이는 2,000억원 대로 줄어든 상태다. 주식시장에서 롯데 주의 상대적인 선전과 롯데쇼핑의 눈부신 전년도 실적을 바탕으로 롯데 패밀리의 약진은 앞으로도 한층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LG 구씨 일가 100대 리스트 중 21명 포함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가를 보다 광의적으로 해석, 창업자의 전체 가족을 모두 포함해 그 금융재산을 분석할 경우 국내 부호가문 구도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삼성을 창업한 고 이병철 회장 일가의 추정 재산액은 4조9,000억원으로 국내 최대 부호 가문의 명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건희 회장 직계 가족 외에 고 이병철 회장의 손자 이재현(42·4,810억원) 제일제당 회장은 11위, 5녀 이명희(59·6,470억원) 신세계 회장은 7위, 사위 정재은(63·3,520억원) 신세계 명예회장은 18위, 손자 정용진(34·2,380억원) 신세계 부사장은 24위였다.
LG의 구·허 씨 일가는 삼성에 이어 두번째로 국내 최고 재벌가문으로 손꼽힌다.
LG의 고 구인회 일가는 가족수가 많고(100대 부호 리스트 중 21명) 이미 상당한 핵분열을 거듭, 각각 직계 가족 추정 재산액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 합계는 총 3조7,770억원 대로 삼성 일가에 버금간다. 또 고 이병철 회장과 고 구인회 회장은 사돈지간으로 양가는 전통적으로 국내 최대 부호가문의 양대 산맥이다. 구본무(57·5,170억원) LG그룹 회장은 국내 최대부호 8위, 구본준(51·4,010억원) LG필립스LCD·LGEI 사장 16위, 창업주인 고 허준구 LG전선 명예회장 장남인 허창수(54·3,470억원)LG건설회장 19위, 구자열(49·2,120억원) LG전선 부사장은 28위에 각각 랭크 됐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일가의 재산 추정액은 총 2조9,980억원 대였고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회장 일가는 총 2조6,000억원 대로 롯데에 이어 국내 4대 재벌가문으로 꼽혔다.
정몽구(64·9,710억원)현대자동차 회장은 4위, 정몽근(60·4,710억원)현대백화점 회장 12위, 정몽준(51·2,230억원)현대중공업 고문 27위, 정몽진(30·2,020억원) 금강고려화학 회장 30위인 것으로 각각 나타났다.
대교 강영중 회장 등 숨은 거부 많아
비상장 기업을 주요 재산 포트폴리오로 보유한 숨은 부호 중에는 추정 재산액 5,100억원으로 9위에 오른 대교그룹의 강영중(53) 회장이 가장 눈에 뛴다. ‘눈높이’ 학습 교재로 더 널리 알려진 강 회장은 30년간 교육사업 한 우물 파기로 성공한 교육 부호(Education Tycoon)로 손꼽힌다. 열성적인 한국인의 교육열을 바탕으로 우뚝 선 부호 중에는 장평순(51·2,730억원) 교원아카데미 회장 22위, 정해승(39·1,100억원) 이루넷 사장 61위, 박성훈(57·1,020억원) 재능교육 회장 68위, 변재용(46·780억원) 한솔교육 사장 98위 등이 있다.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학습교재나 학원을 바탕으로 남부럽지 않은 교육 기업을 세운 새로운 캐피탈리스트로 주목을 끈다. 국내 최대의 입시학원인 종로학원으로 유명한 정경진 회장의 2남인 정해승 이루넷 사장의 형은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사위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23위인 최진민(61·2,440억원) 귀뚜라미보일러 회장은 평생동안 보일러 하나만을 연구해 온 엔지니어로서 가정용 보일러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귀뚜라미·로케트 보일러의 주역이다. 또 최 회장은 SBS와 대구방송의 대주주(개인으로 윤세영 회장보다 지분이 많음)인 동시에 수백억원 대의 귀뚜라미문화재단의 설립자다.
또 66위의 박성수(49·1,050억원) 이랜드 회장은 최근 법정관리 중인 국제상사를 인수한 의류메이커의 신흥강자로 폴로 스타일의 의류를 저가에 공급함으로써 이랜드를 일약 세계적인 의류업체로 성장시켰다. 55위의 허영인(53·1,190억원) 태인샤니 회장은 동네마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파리크라상과 베스킨라빈스의 주인이다. 삼립식품 창업주의 2남인 허 회장은 장남인 허영선 회장이 경영하던 삼립식품이 외환위기 당시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이를 인수, 국내 제빵 업계를 장악했다. 이 외에 고려제강 홍종열 명예회장의 네 아들 중 두 아들이 모두 100위 안에 들어 저력을 과시했다. 홍영철(54·970억원) 고려제강 사장은 75위, 홍민철(51·1,100억원) 고려용접봉 사장은 61위에 올랐다. 박석훈(41·1,070억원·64위) 세안개발 사장과 이전배(57·1,020억원·68위) 리츠칼튼호텔 사장 등은 막대한 부동산을 기반으로 100대 리스트에 들었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엘리트인 이전배 사장은 사양산업인 연탄사업을 접고 부동산 개발과 카지노 사업의 진출해 성공한 기업인으로 꼽힌다.
40~50대 젊은 부호들이 주축 이뤄
100대 리스트에 선정된 부호 중에는 40·50대가 전체의 3분의 2로 주축을 이뤘다.
50대는 전체중 인원수(37.0%)나 보유금액(32.0%)비율 모두에서 가장 높았다. 40대는 인원수 30.0%, 보유금액 27.7%를 각각 차지했다. 또 최고령자는 국내 굴지의 재벌 창업주인 한진의 조중훈(82·46위) 회장과 롯데의 신격호 회장이었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차녀와 3녀인 서현·윤형씨는 20대로 각각 100위 안에 올랐다.
100명의 부호 중 여성은 8명 만이 순위에 올랐다. 업종별로는 100대 부호 40%가 전자와 금융업종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전자·화학 그룹으로 알려진 LG 오너들의 가장 큰 재산 포트폴리오가 의외로 금융업종의 주식에서 나온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는 LG카드의 상장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교육 업종으로 100위 안에 든 부호는 윤석금(57·26위) 웅진 회장을 포함 6명이었고 김택진(35·21위) 엔씨소프트 사장 등 벤처 붐을 상징하는 소프트웨어 업종에 종사하는 30·40대의 젊은 부호도 6명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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